나는 나를 정말 잘 알고 있을까?
미드를 안 본 지 꽤 된 것 같다. 이전에 브런치에 "굿플레이스"에 관해 한 번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지난 학기에 친구 추천으로 "MO"를 몰아서보고 미드를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주말에 잠깐잠깐씩 영화 보면서 같이 하하 호호거리다가 친구들 덕에 알게 된 Ali Wong이랑 워낙 한국에서 유명한 Steven Yeun이 한 작품에 같이 출연한다길래 리뷰를 볼 것도 없이 냅다 그냥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완-벽-
진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드라마였다. 학기가 너무 바빠서 자기 전에 하루에 한 편씩 정도 보다가 8화부터는 끊지 못하고 새벽 3시까지 버티면서 봤다.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글을 쓰는 지금 바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엮어보려 한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다들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독 예민해지는 시기가 있다. 오늘 친구랑 얘기하면서도 느꼈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행복하기만 하던 팀이 하루아침에 끔찍해지는 시기가 오기도 한다.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상황이 나빠질수록 예민해지고 절대로 나빠질 수 없을 것 같던 굳건한 관계도 결국엔 바닥을 찍을 수도 있다.
그런 시기에 나는 정말 예민했다. 그냥 좋게 넘겨도 될만한 일들에 괜히 표정이 굳어져 자리를 떠야 한다든가 감정이 컨트롤 되지 않는다 싶으면 동기들을 불러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화를 삭여야 하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처럼 차를 몰다가 괜히 심보가 뒤틀려서, 화가 가라앉혀지지 않아서 에이미가 성을 내다가 결국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던 것처럼 괜히 나도 그러지 않아도 될 분노를 표출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 분명 지금 나의 상태는 많이 평온해졌다. 물론 돈을 버는 입장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공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크게 분노할 일이 많지 않다. 대학원 생활이라는 것이 나의 돈을 써서 내 시간을 마음껏 꾸미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장애물이 있다한들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하지만 직장을 다닐 때는 나의 기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다 외부에서 왔던 것 같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나의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뭐 하나가 나를 건드리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고 분노를 내뿜어야 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찾았던 탈출구는 그저 술을 마시면서 털어내기, 그뿐이었던 것 같다. 동기들이랑 술 진탕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면서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에 겨우 살아나서 오후 업무를 하다가 그렇게 퇴근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당연히 그런 방법은 일시적으로 응어리를 해소할 뿐 근본적으로 나의 분노가 사그라든다든가 삶이 더 행복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BEEF>에서는 그 해결법을 대니와 에이미를 통해 알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 독이 든 앨더베리를 먹고서 누가 누구인지 경계가 허물어졌을 때, 누구의 이야긴지도 모를 만큼 서로가 닮아있을 때 그제서야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분노에서 이해로, 더 나아가 사랑으로 바뀐다. 어쩌면 서양식 정신과 상담이 동양인에게 맞지 않았던 게 아니라 세상에 단 한 사람, 나를 제대로 이해해 주는 그 '한 사람'만 있으면 평생을 괴롭혔던 문제가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 대니와 에이미의 어렸을 때 모습을 후반부에 시간을 거슬러가는 형태로 잠시 보여준다. 에이미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가지면서 거울에서 본 마녀의 모습은 결국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렸을 때 들었던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됐다.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을 가진 조지와 결혼을 한다. 나아가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을 가진 조지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다면 희망을 보지 않을까라는 방식으로 나름의 해결법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도 못했고 심지어 아버지의 바람을 목격하게 된 과거로 인해 '사랑'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 없이 남들이 말하는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왔던 인생이어서 더 비참하고 힘들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에 '왜 이럴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대신에 자신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앞만 보고 해결책을 찾던 에이미에게 정작 행복을 찾아준 사람은 나와 똑같이 분노에 휩싸여 죽일 듯 덤비던 대니였다. 한국식 가부장제,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교육받아 '나'라는 존재를 모른채, 동생과 부모님부터 챙겨야 했던 대니의 삶을 공유하며 결국 서로가 닮아있음을, 그 닮음이 나에게 있어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드라마가 그린 '분노'-'이해'-'사랑'의 상관관계가 과연 나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나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조건 없는 사랑을 갈구하며 이해받길 강요하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시간을 내주고 돈을 받았던 직장 생활과 달리 온전히 시간을 나에게 쓰면서 나를 찾아가는 대학원의 여정이 이렇게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찾아가는 것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새로운 환경에 놓여서 새로운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해 보면서 나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찾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렇게 나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의 방식을 하나씩 넓혀가고 있는 것 같다. <BEEF>는 그렇게 다들 자신에 대해 하나씩 깨치기 시작하고 공감하고 닮아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나 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사회에 만연한 분노가 사그라들지도 모른다고,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곳에는 더 이상 분노가 남아있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