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좋아하는 내가 새벽에 일어난 이유.
나는 아이 둘의 아빠이자 남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퇴근 후나 주말 낮시간에 아무때나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가 있을 수가 없다.
육아,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운동하는 시간은 항상 이른 오전이 아니면 늦은 저녁시간이다. 이른 오전시간에도 늦어도 9시 전에는 집에 돌아오려고 하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새벽 시간에 운동해야 적절하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원래 나는 아침잠이 매우 많은 편이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 편이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로 한 나와의 약속이 정해진 날에는 새벽 5시에도 눈이 떠질 수 있다. 예전같으면 상상할수도 없던 일이다.
2021년 1월 어느 날은 지독히 겨울이었다. 서울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지속되었고, 눈도 많이 왔었다. 나는 그날도 운동 기록 겸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연예인 션의 인스타그램에서 정인이를 추모하기 위한 러닝을 뛴 것을 보고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정인이라는 아이는 부모의 학대 때문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션은 정인이가 떠난 날인 10월 13일을 기억하기 위해 10.13Km을 달렸고 다른 러너들도 동참하였다.
예전 같으면 운동을 하기 위해서 새벽시간에 일어난 다는 것은 정말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눈이 가득 내린 겨울 영하 17도의 한파에서 러닝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휴대폰 알람이 울렸고 날씨를 확인해보니 영하 17도다. 아주 잠시 오늘은 뛰지 말까? 하는 마음이 든 찰나, 션의 인스타그램이 생각났다. 오늘은 정인이를 추모하기 위해 뛰기로 한 날이잖아, 난 따뜻한 방구석에서 뭐하고 있는거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밖에 눈보라가 치던, 비바람에 내리던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무조건 나가는 거다.
다행히 전날 잠들기 전에 한파 러닝을 위해서 복장과 장비들을 미리 세팅 해두었다. 일어나자마자 옷과 장비를 챙기고 백운호수로 출발했다. 백운호수를 도는 길은 관리하시는 분들이 눈을 치워두셔서 크게 미끄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온몸에 솜털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었지만 1Km 정도 뛰어보니 바로 몸에서 열이 난다. 두꺼운 방한 장갑을 낀 손이 한파 때문에 시려웠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뛰면 뛸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온몸이 개운해지는 좋은 느낌이 들었다. 10.13Km를 뛰고 나니 어두컴컴했던 백운호수 위로 해가 떠오르면서 새하얀 눈이 쌓인 아름다운 호수와 설산이 펼쳐졌다.
혹한기 새벽에 러닝을 뛰고 오니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추운 겨울이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 좋은 러닝 중에 하나였다.
새벽러닝은 아침을 활기찬 운동으로 여는 성취감이 있다. 아침운동으로 약간 몸이 피곤할 수도 있지만 마음은 아침에 활기찬 에너지로 하루 종일 좋은 느낌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여전히 새벽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항상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와 강력한 동기부여가 설정되어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먹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