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향한 마음의 퍼즐
어떤 마음의 결정은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자기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나의 마음임에도 그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이고 가야 할 방향이 맞는지는 어떤 결정을 이행하고 났을 때에 확실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즉 그 결정이 나에게 이로운 결과를 줄지 아닐지를 결심 후에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직을 하게 되었을 때 지원서를 내보고 나서야 떨어져도 아쉬운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 있다.
세상의 일이 이상하게도 면접 연락이 오지 않았으면 하던 회사가 연락이 오고 면접에 통과하게 된다.
지원서를 내고 나서야 내 진실된 마음의 소리를 들었음에도 면접에 붙었다는 결과에 급급해 새로운 직장에 가게 되면 내가 기대했던 일들과는 다른 여정이 펼쳐지곤 한다.
일의 고난은 내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결과이다.
현실이 잘 흘러가는 듯해도 내 마음과 결부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그것은 곧 내가 주인공이 아닌 삶으로 흘러가게 된다.
바딤 젤란드의 '리얼리티 트렌서핑'을 현실 경험으로 너무나 잘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눈을 감고 지그시 마음이 울리는 분명한 느낌을 자각하고 그것을 행동화하는 것은 세상의 흐름 속에 현혹되는 일없이 최소한으로 나의 삶을 찾는 길인 것 같다.
한때 반복적으로 너무나 쉽게 직장을 그만두는 지인을 보며 한심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끈기나 근성이 부족하다, 다른 데 가서도 똑같지 않을까 하는 등의 무의식적인 나의 생각을 감춰야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황으로 보이는 길 속에 누군가는 스스로가 만든 감옥을 조금씩 빠져나가 자신의 내면에 가까워져 가고 있을수 있다.
어떤 눈앞의 현상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우리는 그것이 우아하게 보일지 않을지라도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혹은 유별난 방식으로 자기를 찾아가는 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의 결정이 자기 마음에 무거운 느낌을 주는지 가벼운 느낌을 주는지가 삶의 진실을 보는 핵심인 것 같다.
똑같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내가 친밀한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웃지 않거나 가까워질 수 없는 벽이 느껴지게 하는 집단이 있다. 우리는 그 현실적 단서를 통해서 자신의 영혼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수도 있다.
자신의 의사결정의 부정적 결론은 결국 자신의 길이 자신이 선택한 집단과 맞지 않은 것 뿐이었다. 한 사람의 운명앞에서 어떤 곤란의 연속이 생기는 것은 단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집단과 자신의 문제라고 여기고 눈앞의 현실의 문제에 힘을 너무 힘을 빼게 되면 현실적인 문제의 피해자가 될수 있다. 외소한 현실속 그림을 보지 말고 보다 큰 영혼의 퍼즐을 맞춰보자.
이 세계의 보수적인 집단의 규칙은 자신의 영혼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을 때로 경멸하기도 한다.
단지 길을 잘 못 들었을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 길에 들어선 곳에서 종종 겪게 되는 집단이나 개인의 도발에 걸려들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현실속의 갑과을은 사라지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을 들으려면 혼자 있는 순간의 느낌에 집중하자.
혼자 있는 일이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혼자일 때에도 그 여린 소리를 귀담아듣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딤 젤란드의 책에서 나온 '새벽별이 움직이는 소리'이다.
가장 위태롭거나 곤란하거나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마주쳤을 때도 나를 향해 집중해 있으면 또 다른 길은 생긴다. 방향을 틀고 이 조용한 곳에서 나의 소리를 들어본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의 마음에 들어오는 한순간, 한 장면 속에 뛰어들자, 미래의 나를 환영할 사람들이 이미 내 옆에 있다는 즐거운 상상으로 나의 가장 친밀한 정서를 보듬어 주자.
그러다 보면 현실의 힘은 다시 나의 손에 쥐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