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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Apr 14. 2024

지금 이 순간에 온전하게 존재하기

얼마 전 자주 보던 길 고양이를 아주 오랜만에 보아 오랜 시간 함께 있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문득 헤어질 때에 뒤돌아보던 고양이의 모습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더는 보지 못할까. 내일은 저 자리에 또 있을까." 하는 여러 가지의 아쉬움과 슬픈 것과 불안이라는 감정들이 현재의 시간을 역습해왔다. 그렇지만 뒤돌아본 고양이의 모습은 아쉬움하나가 없었다. 좀 전의 골골거리는 소리가 그치고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하나의 생명체인 고양이는 풀잎 속에서 내리비치는 햇빛에 몸을 뉘이고 그 어떤 감정의 동요 없이 그저 그 자체의 실재의 힘을 가진 생명체로써 자신의 방금 전 내게 한 역할이 하나의 단순한 현상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고요한 평화여서 미래의 결과를 붙잡고 위축되게 했던 나의 마음이 마음밖에서 그 사건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예기치 못한 목격 속에서 나는 요 며칠 진정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의 이득에 설득되어 존재로서의 자리를 포기하고 내가 숨쉬기 힘들어하는 곳에서 여전히 나인 척 나의 생각의 부유물에 덮인 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미약한 생명이자 내가 돌봐야 할 것이라고 여긴 저 고양이 한 마리는 나보다 더 태연하게 존재하기를 실행하고 있었다. 어떤 생명력이 완벽히 존재하고 있을 때 그것은 생각의 부유물보다 큰 내적힘과 그 자체의 위엄을 주위에 일으킨다.

눈앞에 일어나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그때그때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들임에도 생각이 집착을 일으키고

생각의 부유물로서 감정을 커지게 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순수한 존재하기를 방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이 때로는 생명의 근본원리를 헤쳐서 정작 생명으로서의 가치나 위엄을 허상 속에 빼앗기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이 작은 동물을 통해 나의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부유물을 뒤흔들어 존재라는 보석을 껴안았다.




그저 존재하는 영역 안에서 오고 가는 현실의 물리적 현상들을 바라보고 떠나보내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존재가 있어야 할 장소와 방향들은 저절로 공간너머에서 존재를 향해 다가오게 된다라고 예감한다. 


나는 늘 생각이 너무 많고 예민한 성정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유약한 성정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게 하던 날들이 오히려 나의 존재의 의미를 찾게 하고 더 본질적인 존재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공연한 마음으로 그저 사유에 에너지를 넘겨주기 위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걱정과 염려는 인간이 미리 만들어낸 자기 해석의 길들여지고 싶은 마음인 것을, 이제는 허상 속에서 온전히 깨어난 느낌이 들어 나의 세상은 곧 내가 원하는 고요가 전해지리라 믿었다.  

그동안 현상에 대응하는 나의 반응이 또다른 나만의 닫혀진 현실을 만들어 왔었다. 어떠한 것도 애쓰는 마음 없이 존재에 오롯이 일관하는 태도는 내가 앞으로 잘못 흘러들어 갈 수 있는 길 속에서 나를 바로 잡아줄 힘이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늘 마음너머의 공간에서 왔다. 그곳에 빛나는 나의 존재가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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