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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Apr 16. 2024

자연교향곡

'이번에 이사를 간 곳은 표선이야.'라는 말에 

'거기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옛 동료가 말했다. 

'아무것도 없어서 가는 건데.' 

아무것도 없어서 이제는 나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곳으로 놓여있을 때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내 안의 거품들이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날씨가 따뜻해져서 아주 오래간만에 표선해수욕장을 갔다.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는 느낌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일중에 하나이다. 모래 위에서 나는 내 영혼이 하려는 일이 어떤 것들인지 분명하게 직시할 때가 있다. 


어떤 나의 일상들은 왜  실재와는 먼 환상처럼 계속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고 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해변 앞에 서면 겪는 이런 실재의 느낌의 충만함을 왜 나는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떤 이유로든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의 끝에는 더 이상 속일 수 없는 지점이 드러난다. 

무기력해지거나, 의욕이 안 난다거나, 내 자신의 총체적인 의심들은 내가 좀 더 나일수 있는 행위와 에너지로 둘러싸인 곳에 놓여있지 않은 감정의 상처들이다. 내가 나에게 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은 진정한 나를 향한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식적으로 붙잡아온 일상들은 어느 날 문득 어떤 미세한 틈으로 나를 쉽게 무너트릴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을 이 삶의 방식이 맞다고 스스로 속이고 있음을 모를 때 우리는 홀연히 자연 앞에 내던지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그때에 어떤 생활의 틀에서 작아진 사고 속을 유영하느라 자연 속에 비친 큰 나를 보지 못했던 나는

자연의 거대한 광장 안에서 반사적으로 부딪치며 일어나는 사고작용을 체험하게 된다. 

무엇이 나의 본질과 다른 생활방식이었나... 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오로지 나 자신이기만을 꿈꾸는 시간이 된다. 


자연은 인간에게 인간 자신을 향한 길을 보여주는 우리 자신 속의 힘이다.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사유와 사색들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에 내가 나의 겉에 머무른 삶을 살고 있는지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향키가 된다. 자연 안에서 나다운  길을 향해 걸어갈 것을 꿈꾸고 새로이 결심한다면 현실은 나다운 길들을 흘려보낸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게 했던 결심에서 시작한다. 그 결심을 하고도 어떤 현실적 이득에 따라서 내 자신에게 가식적이거나 나 자신이지 못한 결과를 습관적으로 끌어당긴다면 나의 본질적인 부분은 영원히 소외될 것이다. 


영혼이 더 잘 안다. 자신의 에너지가 커지는 곳이 어디인지,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을 공간들과 나아갈곳이 어디인지, 그 진실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자연이고 그 자연의 힘은 우리안의 있는 힘을 불러일으켜 바르게 살아갈수 있는 사유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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