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저녁나절에 산책을 나간 게 오랜만이었다. 멀리 보이는 표선 해수욕장의 불빛들이 맞은편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바라다 보였다.
낮과 밤의 경계사이에서 시차를 잃는 생각들이 유일하게 자유로워지는 시간이었다.
낮 뒤에 오는 밤은 낮의 경직되고 질서 있는 생각들이 또 다른 시간을 만나
자신의 관념 속에서 자유로워고 싶어 하는 인간본성의 두 가지 모습 같았다.
낮의 사물이 저녁이 되면 전혀 다른 관점이 된다
홀가분하면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인간의 본성들이 꿈틀대며 저녁이라는 대기 속에 새롭게 뻗어나간다.
멀리 보이는 반짝이는 불빛들 어딘가에서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기적을 품 안에 보듬기도 한다.
상상의 날씨들이 미래를 잊고 잠시 현재로 뛰어들어오는 경계를 밤이라고 명명해 보았다.
눈앞에 가깝게만 있는 현실들이 자신의 경계너머 더 넓은 공간 속에서 사라지는 듯 보일 때
낮이라는 중압감에서 해방된 내면의 카타르시스가 피어낸 순간들은 또 다른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 오랫동안 보듬고 있던 생각의 시간은 소중했다.
무엇이든 익숙해진 상상력은 어두운 심연 안에서 윤곽을 틔운다.
낮과 밤을 돌아 상상 속에서 품었던 기적들은 다시 나의 세상으로 날아간다.
모든 사람들의 낮이, 모든 사람들의 밤이 나만의 세상으로 가 설레는 일이 될 때에
무언가 일어날 것 만 같은 벅찬 기운들은 미래의 수많은 일의 감동을 향해 날아간다.
나는 어떤 가능성으로 그곳에 있었다.
낮과 밤을 통과한 기적들이 내 삶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었으므로...
때로는 사람으로, 물리적 현상으로, 따뜻한 햇빛을 등에 지닌 채 드는 사유의 한 조각 속에서 말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저녁을 걷는 내내 삶 속의 수많은 나를 거쳐온 나의 기억이 현재의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이상하게 가슴 설레는 감정을 지켜보았다.
가능성의 어떤 시간 속에서 도착한 내가, 지금 나의 세상에 도착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