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물러남과 나아감
우연히 본 것, 우연히 마주친 곳들이 더 인상 깊게 다가오는 날이 있다.
철저히 계획해서 간 곳에서 마주치는 풍경의 아름다움보다 낯선 곳에서 본 바람을 실은 나무가 모든 봄을 불러오는 것처럼 여겨지는 때가 있다.
사람이 스스로 하는 통제는 행복해질수 있다는 착각이다.
인간의 통제밖에 밀려나 있던 세계가 불쑥 얼굴을 내밀 때 익숙해온 세계는 균열을 일으키며 질서 있는 세계 속에서 무디어진 깊숙한 상상력이 건드려진다.
어찌 보면 인간의 공통된 한 측면은 자신의 세계를 일관되게 유지하려고 평생 애쓰는 듯하다.
계획대로 안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한 친구는 불평보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안된다'라며 웃고 넘어가곤 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자신의 고집을 꽉 잡고 있지 않겠다는 그 사람만의 마음의 놓아버림의 방식 같았다.
마음의 한편을 자신의 고집으로 견고하게 둘러 세우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물리적 현상밖으로 숨 쉴 수 있게 잠시 내어주는 틈.
그것이 다시 세상의 흐름과 균형을 이루기 위한 조정의 시간 같았다.
끌어당김이든, 우연의 방식이든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얻은 자각이든, 현실밖의 현상에, 보이지 않는 신에게 맡긴다는 태도는 곧 실패해도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기본기 같았다.
어떤 일의 변수는 그날의 날씨 같은 것이다.
반드시 맑은 날씨여야 한다는 나의 계획안에서 생긴 고집은 세상과 나사이의 부조화를 만든다.
어떤 것에 지나치게 목숨 거는 순간,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좌절될 때 인간은 반드시 감정적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무기력이든, 좌절이든, 허탈감이든, 그것들이 더해진 증오나 미움의 감정은 너무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꼭 그래야만 한다는 좁은 세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세상과의 조화는 내 마음의 열림이고 마음 한 편에서 생길 어떤 변수마저 허용하는 것이다.
기대 없이 어떤 일이 오면 그것과 조화를 이루고 어떤 것이 물러나는 현상에 대해 애쓰지 않는 것을 훈련하는 일은 내 자신의 행위가 만물의 흐름속에 무리함이 없겠다는 일이다.
며칠 동안 생각한 목적지에서보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우연한 장소에서 더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 일자체에 뜻밖의 것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 탓이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들른 곳이 나의 내면을 다독이게 하는 풍경을 비추었다.
뜻하지 않는 시간의 선물이 쏟아진것 같았다.
마음이 텅 비어진다라는 것은 균형과 같다.
원하는 것이 있지만 억지로 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평생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적용하고 싶은
현실 감각이었다.
나는 나의 목표를 나 스스로 가두지 않고 세상에 열어 보인다. 견고하게 세워놓은 벽이 아니라
점점 더 조화로운 곳이 되기 위해서 그 속에서 어떤 사건의 틈을 과감히 허용해 보기로 한다.
세상의 질서는 마음의 일상심에 있다. 마음의 일상심안에는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순간들이 모두
기적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