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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브 Syb Jun 05. 2022

바르셀로나 힙스터 성지

까탈란 젊은이들의 아지트가 된 20세기 건물, MACBA

바르셀로나의 힙스터들이 모여드는 라발지구에는 커다란 창이 뻥뻥 뚫린 새하얀 건물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어느모로 보아도 리처드 마이어 건물임이 팍팍 느껴지는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 MACBA이다. 건물 앞은 스트릿패션으로 무장한 보더들이 온종일 보드를 타고 시간을 때운다. 주변으로는 힙한 구제샵과 카페테리아가 들어서있다. 보수적이고 원칙적인 모더니즘 후기 건축가의 작품과 젊은 힙스터들의 조화라니, 이질적인듯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어우러진다.


바르셀로나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까탈루냐의 언어와 문화를 고수하려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스페인 국기보다 까탈루냐 반데라인 세녜라(Señera)가 더 눈에 띈다. 어느 곳을 가든 까탈란을 먼저, 가장 진한 글씨로 표기하고 심지어는 스페인 공용어인 카스티야어(Castellano)는 영어보다 뒤에, 혹은 아예 표기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다. 그만큼 자신들의 문화에 프라이드가 강한 바르셀로나에서 MACBA는 까탈루냐 예술가들의 그 자부심과 정체성으로 똘똘 뭉친 결정체다.


아이러니하게도  점에 의해 리처드 마이어 건축의 기능주의 철학은 더욱 부각이 되는  하다. 그만큼 정체성 강한 지역의 맥락과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건물은 의연하게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아닌 프랑크푸르트나 서울에 가져다 놓아도 전혀 위화감없이 현대미술관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게 기능할 건물. 그것이 바로 기능주의 모더니즘 건축이 추구했던 '기계로써의 건축'이다.


MACBA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수직으로 트여있는 홀 공간에 감각이 집중된다. MACBA는 전에 작성한 프랑크푸르트 수공예박물관처럼 리처드 마이어 건축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온통 새하얀 벽과 장방형의 거대한 창, 그 곁에 나란히 놓인 램프와 건물 한 쪽에 곁들이듯 배치된 곡선 벽까지 완벽하게 말이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은 건물 가운데 커다란 공동(Void)와 양렬로 늘어선 거대한 기둥덕에 일견 그 스케일에 압도된다. 그 공동을 둘러싸고 배치된 수직램프와 반투평한 타일바닥의 통로 덕분에 공동은 하나의 공간으로 강력하게 연결된다. 함께 전시를 찾은 방문객들이 발걸음과 오르내림이 전체적으로 투명한 뷰를 제공하는 동선 덕분에 고요한 수선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다가도 나 이외의 방문객들과 각자 독립된 시공간을 공유하는 그 미묘한 경험을 끌어낸다.


서로 대화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아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같은 작품을 바라보고 감상함으로써 같은 시간대의 경험을 공유하는 그 독특한 관계, 미술관에 방문해보았다면 모두 느껴보았을 것이다. 리처드 마이어의 MACBA는 그 사소한 경험을 기민하게 잡아챈다.


건물의 동쪽 끝에는 전면부로 돌출된 특별 전시 공간이 있다. 얕은 물결 모양의 베일로 싸인 형태의 그 공간은 시원시원한 통창과 천창으로 풍부한 채광이 들이치는 메인 공간과는 상반되게 어두컴컴하다. 어두운 전시공간과 각 전시장을 잇는 동선의 밝은 채광은 전시 관람 중간중간 방문객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리처드 마이어식 미술관의 정수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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