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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브 Syb Feb 12. 2022

박물관은 살아있다, 슈타델 미술관

고전 회화 갤러리 아래에 엉큼하게 숨겨진 현대 미술 공간

프랑크푸르트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슈타델 미술관(Städel Museum)은 정말이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영화처럼 밤이 되면 박물관의 기사 갑옷 따위가 살아 움직이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슈타델 미술관은 2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제 보금자리인 프랑크푸르트와 온갖 풍파를 함께 겪으며 때론 파괴되고, 회복하고, 성장하며 발전해왔다.


움직이지 않는 건축물이 어쩜 이렇게 생기 넘쳐 보일 수 있을까. 슈타델 미술관을 방문하면, 이 장소가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족들끼리 단란하게 교양 나들이를 나와 각자만의 감상 시간을 갖는 모습, 친구들끼리 찾아와 목소릴 낮춰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모습들이 미술관을 활기로 가득 채운다.


슈타델 미술관의 규모는 그 명성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다. 이곳의 매력은 마치 개미굴처럼 얽혀있는 전시 공간이다. 계속해서 확장되는 방대한 컬렉션에 비해 작고 오래된 건물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가벽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비교적 좁은 편이지만 가벽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요철을 굽이굽이 살피며 매 길목마다 작품과 마주치는 순간이 즐거워진다.


'박물관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라는 설립자 요한 프리드리히 슈타델의 지론에 걸맞게 슈타델 미술관은 성장을 거듭한다. 덕분에 마치 성장하는 아이에게 새 옷을 지어주듯 미술관 주변은 항상 공사가 이뤄지는 중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2008년 공모를 통해 2012년에 완공된 현대 미술 전시관이다.


박물관 영역의 지하를 활용한 이 확장은 미술관이 위치한 도시 프랑크푸르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무소 슈나이더+슈마허(Schneider + Schumacher)의 설계안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 확장은 슈타델 미술관의 '개미굴스러움'을 z축 방향으로 한결 증폭시킨다.


이 길이 맞는지 아리송한 불확신을 가지고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위층의 고전 회화 컬렉션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아주 트렌디한 현대 미술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슈타델 미술관의 반전 매력이다. (트렌디하다 함은 전시 기획이 세련되고 작품의 메시지가 시사적이란 뜻이다.)

지하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유백색 대리석이 건물의 고전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 듯하면서도 이음새 없이 매끄러운 커팅과 조형 등이 어딘지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준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비로소 광활한 메인 갤러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 메인 갤러리의 천장 설계가 바로 슈나이더+슈마허 디자인의 핵심이다. 파라메트릭 곡면을 띄고 있는 이 천장은 박물관 중심의 정원과 맞닿아 정원으로 들이치는 자연광을 한 아름 끌고 들어온다. 특별히 고안된 195개의 원형 패널이 전시에 가장 적합한 광량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단열 소재와 지열 말뚝을 적용시켜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다.

비정형 곡면 천장 아래에서 송송 뚫린 원형 조명 패널을 바라보고 있자면, 머리 위에 UFO라도 착륙 중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금방이라도 정체불명의 빛을 쏘아 나를 외계로 데려갈 것 같은 천장 디자인처럼, 이 조명 패널들이 제공하는 환상적인 조도의 채광은 사용자를 온전히 작품 세계로 이끈다.

반면 위에서, 그러니까 건물 외부 정원에서 바라보는 천장 슬래브는 그저 봉긋 솟아오른 둔덕, 잘 쳐줘야 자그마한 동산처럼 보일 뿐이다. 여기저기 뚫린 원형 패널이 언뜻 토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완만한 곡선은 당장이라도 타고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동심을 자극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라도 타고 놀 수 있을 친근한 언덕배기는 누구나 예술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뛰어놀 수 있게 고안된 너른 동산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슈타델 미술관의 마음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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