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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May 10. 2024

예술은 어려워

최악의 실패경험에 대하여

 수업 시간이 아직 10분 넘게 남았는데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수업이 아닌 연구수업이었다. 모둠으로 앉아 있던 열여덟 살 발랄한 학생들은 당황스러운 내 표정과 아랑곳없이 자기네들끼리 재잘거렸다. 교실 뒤편에는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같은 과학 교과의 선생님들이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서 수업의 다음 과정을 진행해!’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2012년도 과학 연구수업은 완전히 망했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해마다 각 교과에서 연구수업 행사를 진행하였다. 연구수업은 효율적인 학습지도법 연구 또는 교육효과의 측정을 목적으로 연구적이며 실험적으로 실시하는 수업이다. 평상시 대충(?)하는 수업에 비해 더 많은 수업 계획과 연구가 필요하므로 대부분의 교사들은 연구수업 진행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특정 교과의 교사들이 순번을 정하여 몇 해에 한 번씩만 연구수업을 진행한다.

 오랫동안 기간제 교사를 하다가 임용 시험에 합격하여 부임하게 된 첫 학교에서 난 그해 과학교과 연구수업 진행을 선 듯 자청하였다. 여러 해 동안 고등학교에서 화학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직전 학교에서의 연구수업에서도 동료 교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수업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문과 계열을 진학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학창 시절에 원소 주기율표를 한 번쯤은 보셨으리라 짐작한다. 학교 교실에서 키가 큰 학생들이 교실 뒤쪽에 앉는 것처럼 주기율표에 배치되어 있는 원소들도 나름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같은 가로줄 및 세로줄에 존재하는 원소들은 같은 줄끼리 화학적인 공통점도 가지지만 같은 줄에서 몇 번째에 존재하는가에 따라 화학적 성질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내가 진행할 연구수업의 주제가 바로 원소 주기율표에서 같은 세로줄에 존재하는 원소들 간의 화학적 성질 알아보기였다.

같은 가로 줄을 '주기", 같은 세로 줄을 '족'이라 한다. 예를 들어 원자번호 6번 C(탄소)는 2주기 14족 원소이다.

 연구수업 일주일 전부터 수업 지도안을 작성하며 수업을 어떻게 구상할지 연구하였다. 보통 연구수업을 준비할 때에는 여러 명의 교사들이 함께 수업 지도안을 구상하고 수업 중 학생 참여활동의 종류도 함께 논의한다. 하지만 화학 수업을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물리, 생물 선생님들과 굳이 수업 진행방향을 논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다른 학교에서 준비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연구수업 준비의 모든 과정을 나 혼자 진행하였다.


 드디어 D-day. 50분간의 연구수업이 시작되었다. 이전 수업에서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상기하게 하고 이번 시간에 무엇을 학습할지를 교사가 안내하는 수업 초반 과정은 무난히 넘어갔다. 그다음은 교사의 시범 실험 순서였다. 염기성 물질에 떨어뜨리면 붉게 변하는 페놀프탈레인 용액을 수조 속 물에 몇 방울 떨어뜨린 후, 알칼리 금속 조각을 물에 떨어뜨리니 ‘펑’ 소리가 나며 용액이 붉게 변하였다.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이제 학생들 차례였다. 4명씩 짝을 지어 앉은 실험 모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몇 가지 금속 화합물들이 어떤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금속 화합물은 주기율표 첫 번째 세로줄(1족) 또는 두 번째 세로줄(2족)에 존재하는 특정 양이온과 주기율표 열일곱 번째 세로줄(17족)에 존재하는 특정 음이온의 결합으로 형성된다. 특정 양이온에 불이 붙으면 고유의 색을 발산하는데 이를 ‘금속의 불꽃반응’이라 한다. 밤하늘에 터지는 형형색색의 불꽃도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17족 음이온들을 물에 녹인 투명한 수용액에 소금물을 떨어뜨리면 특정 색깔의 고체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앙금생성 반응’이라 한다. 연구수업 중반, 모둠별로 금속의 불꽃반응 및 앙금생성 반응을 이용하여 자기 앞에 있는 물질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학생들이 알아내도록 유도하는 것이 내가 계획한 수업의도였다.

 그러나 그 어떤 모둠에서도 자체 실험진행이 시작되질 않았다. 학생들은 이미 중학교 과학시간에 불꽃반응과 앙금생성이 무엇인지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응용 조합하여 미지 물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실험 설계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과학 실험을 해 본 적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몇몇 학생들이 했던 실험도 교사가 모두 계획해 놓고 학생이 결론만 확인하는 간단한 것들이었다. 학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멀뚱 거리기만 하였다.

 평상시 수업이라도 어떤 변수가 생기든지 수업에서 정한 학습목표 내용은 학생들에게 인지시켜야 한다. 하물며 연구수업에서 마냥 학생들이 알아서 하길 기다리며 시간을 지체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학생들 스스로 알아냈어야 할 해답을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내가 대신 제시하였다. 평상시 강의식 수업을 하던 때처럼 수업의 결론과 다음 차시 수업 목표까지 끝까지 제시하였다. 수업 계획단계에서 최소한 15분 이상 할애되리라 생각했던 학생 실험 과정을 건너뛰다시피 하였으니 10분 이상의 시간이 남는 것은 당연할 터.

꼬이기 시작한 부분. 왼쪽은 교사의 계획, 오른쪽은 학생 예상 반응이다.  애들 반응을 어찌 안다고 ㅋㅋ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 공백의 10분간 어떤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학생들이 했어야 할 과정을 한 번 더 말하거나, 이미 앞선 과정에서 언급한 것을 리바이벌하는 것들이었으리라. 예상대로 연구수업 이후 수업 평가회에서 난도질을 당하였다.

  굽신거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당시 교장은 나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교장실에서 진행된 평가회에서 교장은 내 수업이 왜 별로인지를 조목조목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이전 다른 연구수업에서 국어교사 A가 얼마나 수업을 잘했는지 아느냐? 당신은 그거 반도 안되더라.” 면박을 주었다.

 평가회 이후 교장실에 함께 있었던 다른 교사들이 다가와서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교장선생님 말이 좀 심했어요. 그렇게 못한 것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요 선생님.”

 교장의 말투 자체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날 비판한 내용들은 뼈아팠다. 사실 연구수업 이전까지는 내가 그렇게 까지 준비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 컸다. 난 원래 수업을 잘하는 사람이니 수업 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알아서 잘 해결해 나가겠지 라는 마음도 있었다.

 15년, 16년 전에 몇몇 학생들이 익명으로 했던 교원평가에서 “선생님은 너무 생각나는 대로 수업을 진행하시는 경향이 있으세요.”라고 이미 지적했건만 다수의 학생들이 별 문제없다는 시각을 보였기에 내 수업 방식에 정말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연극배우가 연극을 그렇게 즉흥적으로 했다 생각해 보자. 대본을 다 외우지도 않고 시작하면서 ‘연기하다가 대본 까먹으면 뭐 즉흥적으로 어찌하면 되겠지?’ 이딴 생각을 했다면 성공적인 연극을 몇 편이나 할 수 있을까?

 난 적어도 학생들에게 연구수업에서 진행할 실험과 유사한 실험을 그 이전에 한 번이라도 해봤어야 했다. 그리고 비록 같은 화학교사들은 아니지만 과학 전공자인 선생님들에게 연구 수업 진행 계획을 브리핑해 주는 수고정도는 했어야 했다.


연구수업 이후 내가 진행하는 수업의 약점을 알았지만 획기적으로 고쳐나가지는 못하였다. 해가 반복되어도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수업은 좀처럼 경험하지를 못하였다. 점차 수업 이후에 지쳐가면서 수업이 두려워지는 날 발견하였다.


 그러다 2016년 9월. 서울 충정로 벙커 1에서 열린 ‘칼 세이건 살롱’에서 코스모스를 번역한 홍승수 박사님을 만났다. 박사님의 강연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난 내가 가졌던 수업에 대한 회의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박사님께 질문하였다. 구체적이지만 다분히 추상적이었던 질문에 대해 박사님은 명료한 답변을 해 주셨다.


 “교육은 예술입니다. 가르치는 교사부터 수업 내용을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있다면 그건 학생들에 반드시 전염됩니다.”

오프라인에서 딱 한번 뵈었지만 진정한 스승님. 먼곳에서 편히 영면하소서.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 같은 임팩트는 아니었지만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가르쳐 주는 말씀이었다.

 ‘수업은 예술행위이다.’는 말을 교사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예술이란 또 무엇인가를 논한다면 다양한 의견들이 오갈 수 있다. 그러나 예술행위를 하는 예술인은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 가에는 큰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나부터 이 행위를 하는 게 즐거워야 날 보는 대중이 함께 즐거워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수업을 즐겁게 하기. 그렇게 하려면 수업에서 즐거운 요소가 무엇인지를 나부터 똑바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근데 또 그게 다가 아니다.

 잠자리 함께 한 그녀는 전혀 흥분 안하는데 나 혼자 배설의 쾌감에 끝을 낸다면 그게 온전한 섹스일까? 수업도 교사 혼자만의 '쌩 쑈'로 끝나선 안된다.

 그래서 공부가 더 많이 필요하다. 공감능력도 절실히 요구된다.


 아직 난 한참 멀었다.


ps.

https://youtu.be/qtS8CKAR9g4?si=ZJ674cdkn145T_3F

1:15:50 이후부터 제 질문과 홍승수박사님 답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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