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고 기분 좋았던 경험
오늘도 달리기를 시작하려 한다.
어제 달렸는데 오늘 또 달리기를 해야 하리라 생각이 들 땐 항상 망설여진다.
‘같은 코스 달리기인데 지루하면 어쩌지?’
하지만 달리고 난 이후 찾아올 쾌감을 생각하는 순간 망설임은 설렘으로 바뀐다. 차를 몰고 가서 항상 달리던 코스의 출발점 부근 주차장으로 향한다.
첫발을 내딛고 한참을 달리다가 오늘 정한 달리기 목표 거리의 반환점에 다다르면 내 컨디션을 체크한다. 보통 오늘따라 힘이 더 남아 있다 싶으면 반환점을 지나 계속 직진한다. 그러다 더 달릴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하여 뛰던 걸음의 방향을 반대로 돌린다. 예정했던 지점이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달리기 반환점을 돌고 난 직후에는 왠지 모를 힘이 솟는다. 살짝 오버 페이스로 달리며 내 몸으로 바람을 일으켜 길가에 핀 꽃들을 건드려 본다.
한참을 달렸는데 아직 출발한 지점은 먼발치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힘이 부친다는 느낌이 온다. 호흡도 가빠진다. 스마트 워치를 보니 평균 시속은 감소했는데 심박 수는 증가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택시 잡기도 애매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어본다.
드디어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더 먼 거리를 달렸더니 기진맥진이다. 땀이 다리를 타고 흘러 신발까지 젖었다. 그래도 하루키가 말했던 것처럼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차를 타고 다시 아파트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흠뻑 젖은 몸을 누가 볼세라 황급히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집으로 올라왔다. 바로 욕실로 들어가 젖은 옷을 힘겹게 벗는다. 축축해진 속옷까지 다 벗어던지고 벌거 벗은 순간, 오늘도 뭔가를 해 내었다는 자부심에 미소가 지어진다. 나에게 보상을 줄 시간이다. 샤워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캔.
‘내일은 또 언제 어디서 달리기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