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땀을 쥔 경험
10회 말 롯데자이언츠가 삼성라이온즈에 한 점 지고 있는 상황, 투 아웃에 주자 1,3루.
타석에는 조성환. 상대는 삼성의 특급 마무리 오승환이다. 볼 카운트는 투 스트라이크 원 볼. 스트라이크 하나면 삼성의 승리, 적시타 하나면 동점이다. 챔피언스 데이를 맞이하여 롯데 선수들은 1984년도 유니폼인 스머프복을 입었고 나 역시 등에 ‘이대호’가 적혀 있는 스머프복을 입은 채 사직야구장 중앙 지정석에서 손에 땀을 쥐고 우주의 기운이 조성환에게 머무르길 기도하고 있었다. 드디어 4구째,
“딱!”
가운데로 몰린 오승환의 슬라이더를 조성환이 그대로 받아쳐 좌중간을 뚫었다. 체공 시간 동안 3루 주자는 홈인. 담장을 맞고 튀어나오는 공을 중견수가 한 번에 잡지 못하고 글러브를 더듬는다. 그 사이 1루 주자는 3루를 통과하고 있다. 사직야구장 관중들의 함성 때문에 옆에서 뭐라고 떠드는 친구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기어이 1루 주자가 홈인 하며 그대로 게임 끝. 흥분하며 고함을 지르던 난 실신하고 말았다.
2008년도 이전까지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구단은 한국 프로야구(이하 KBO) 리그에서 별 볼일 없는 팀이었다. 42년 역사의 KBO 원년 팀으로서 우승은 딱 두 번 했다.
‘8888577’ 롯데 팬들에게는 금기어인 이 번호는 2008년 이전 7년 간 롯데 자이언츠의 정규리그 최종 순위를 나열한 것이다. KBO가 8개 구단으로 운영되던 시절, 롯데자이언츠는 최 하위권에 머문 시기가 워낙 많아서 다른 팀의 팬들이 ‘꼴데’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렇게 롯데 팬들의 야구 자존감이 바닥으로 치닫던 2007년 말, 제리 로이스터라는 외국인이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 시합에서 선수들이 대기하는 곳인 덕 아웃에도 칠판에 ‘No fear’라는 글귀를 적어두고 선수들이 두려움을 떨친 채 시합에 임하도록 권하였다. 아웃을 당한다 하더라도 배트는 힘차게 돌리며 베이스 러닝은 과감히 하도록 타자들에게 말하였고 투수들에게는 자신 있게 결정구를 던지라 주문하였다. 오늘 지더라도 내일 이길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는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전체는 물론 이를 지켜보던 팬들에게도 함께 전이되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는 3년간 정규리그에서 4위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고 포스트시즌에도 모두 진출하였다. 비록 롯데 자이언츠가 포스트 시즌에서 상대팀을 제압하여 상위 게임으로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자신이 감독으로 머무는 기간 동안 롯데 자이언츠 구단의 팀 컬러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지만 못한다 못한다 하면 더 못하는 게 사람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불리는 자성예언의 힘은 이미 역사적으로 숱하게 증명되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누군가의 지도자가 되거나 선생, 특히 부모가 되면 마냥 잘한다고만 말하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로이스터처럼 되긴 쉽지 않다.
좀 있으면 만 5세가 되는 아들이 이제 한글을 익힐 때가 온 것 같아 가르치려 하면 매번 내 인내심의 한계를 확인한다. 아들에게 글자 책을 들이밀면서 ㄱ과 ㄴ을 써보라 하면 아들은 글자 쓰는 칸에 색연필로 낙서질을 한다. 이마저도 곧 싫증을 느끼고 뒤로 발라당 누우면서 아들은 한 마디 한다.
“아빠. 너무 피곤해요.”
‘어휴’
한숨을 쉬며 이런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하며 화내고 싶지만 꾹 참고 말한다.
“이것 제대로 못 쓰면 유치원에서 놀림받는데 그래도 좋아?”
하지만 아이들은 나중에 닥칠 일 따윈 생각 안 한다. 당장 좋은 것이 좋은 거다.
“아이. 몰라요. 어려워요.”
“기역부터 시옷까지만 쓰면 핫도그 데워 줄게. 아빠가 도와줄 테니 한번 해보자.”
어제도 겨우 이런 식으로 조금이나마 아들의 한글 학습을 심폐소생 하였다.
내가 진행하는 화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기초적인 원소기호도 모르면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아들을 볼 때면 답답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왜일까?
내 아이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할 것이라 생각하면 두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살기로 한지 오래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 ‘아이가 못하는 것은 곧 내가 못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문제다.
아이에게 ‘그래 못 할 수도 있지. 괜찮아.’라는 말을 못 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아직도 그리 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기 이전에 내가 나에게 진심으로 자성예언을 하는 연습을 먼저 했어야 했다.
로이스터가 감독으로 부임한 2008년 이후 대략 5년간 나는 시간만 되면 사직 야구장을 방문했다. 야구를 보기 위해 학교 근무 일정도 조절했고 소개팅을 미루기도 하였다. 갑갑한 일상을 벗어나 야구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초록색 잔디가 주는 싱그러움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치킨과 맥주는 야구장에서 먹는 게 짱이란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결국은 승리를 따 내는 것을 보는 건 너무나 큰 희열이었다. 괜찮은 프로야구 감독 한 명은 한 야구 구단뿐만 아니라 그 구단을 좋아하는 팬도 변화시켰다.
이제 내 남은 인생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바꿔 놓았던 로이스터 같은 존재가 내 인생에 나타나, 나에게 손에 땀을 쥘 만할 스릴을 안길 수 있을 확률은 거의 제로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어제보다 오늘 더욱 진정 행복하기 위해 살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나갈 최소한의 날개 짓뿐. 그게 싫으면 그냥 어제처럼 사는 거고.
내 아들에게 ‘No fear’라고 말하기 전에 나부터 그리 살고 있는지 체크해 본다.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행위. 생각해 보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일단은 해 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거다. 쓰다 보니 내가 바뀌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읽는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글을 쓰는 경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다른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