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을 먹은 경험에 대하여…
2018년 4월 어느 날. 월요일 2교시에 과학 수업을 진행하려고 1학년 교실에 들어갔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수업 시작한 지 5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정신줄이 돌아온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학생들에게 외쳤다.
“자. 다들 운동장으로 나갑시다. 재미있는 거 보여 줄게요.”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며 운동장 한쪽 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난 재빨리 과학실에 들어가 금속 나트륨 통과 페놀프탈레인 지시약, 그리고 수조를 챙겨서 다시 운동장으로 나왔다. 한 학생에게 수조에 물을 채워올 것을 부탁하면서 난 내가 보여줄 시범 실험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오늘 여러분에게 보여 줄 것은 알칼리 금속을 물에 넣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나는 금속 나트륨 통으로부터 엿가락 크기의 나트륨 덩어리를 꺼내어 철제 가위로 그 나트륨 덩어리를 손가락 한 마디 크기만큼 잘랐다.
“순수한 금속은 무른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처럼 가위질을 해도 잘 잘린답니다.”
잠시 후, 학생이 물을 채워온 수조에 페놀프탈레인 지시약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이미 잘랐던 나트륨 덩어리를 물에 떨어뜨렸다. 나트륨 덩어리는 물에 닿자마자 ‘치익’하는 소리를 내면서 연기를 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략 3초의 시간이 흘렀다.
“펑! 펑! 펑!”
나트륨 덩어리는 굉음을 내며 격렬히 터졌고 수조 속의 물은 붉은빛으로 변하였다.
“우와! 선생님 대단해요.”
예상대로 학생들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잠 따윈 다 달아나고 없었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울음 섞인 고성을 지르며 어찌할 바 몰라하는 것이었다.
“으앙. 선생님. 이상한 덩어리가 제 머리카락에 붙었어요. 어떡해요.”
물 표면에서 폭발한 금속 나트륨 덩어리 파편 중 일부가 그 여학생의 머리카락 끄트머리에 붙어버린 것이다. 쌀알 크기만 한 나트륨 알갱이였지만 물이 묻어 있는 상태에서는 계속 격렬한 반응을 했기 때문에 작은 나트륨 조각은 여학생의 머리카락에 붙어서 연신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금속 나트륨 실험을 여러 번 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난 황급히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 금속 나트륨이 묻은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가위로 잘라내었다. 그리고 수업 마칠 때까지는 물론이고 그날 하루 종일 그 여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백번 정도 하였다.
금속 나트륨 파편이 그 여학생에게 들어갔다면 어찌 될 뻔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 뒤로 3년간, 나는 학생들 앞에서 금속 나트륨 반응 시범실험은 일절 하지 않았다.
https://youtu.be/Nj1m_whEgtM?si=Ps8IMd6kKKJZ0aTX
나트륨 덩어리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매우 위험하다.
TV를 통해 우리는 종종 알칼리성 이온 음료 광고를 보곤 한다. 나트륨이 바로 대표적인 알칼리성 물질이다. 알칼리(Alkai)라는 말은 본래 아랍어로 식물을 태운 재라는 뜻이다. 식물을 태운 재를 물에 녹인 양잿물은 단백질을 녹이는 성질이 있고 몇 가지 화학 물질을 만나면 특유의 반응을 보이는데, 양잿물의 이러한 성질을 염기성(Basicity)이라 한다.
한편, 세상을 이루는 작은 입자인 원자(Atom)(사실 이보다 더 작은 단위로 나뉘는데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한다.)는 태양을 중심으로 여러 행성이 공전을 하는 것처럼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원자핵이 지난 양성자의 수에 따라 다양한 원소들이 존재하고 이 종류들을 나타낸 것이 원소 주기율표이다. 원소 주기율표의 가장 왼쪽 세로줄에 있는 원소들 중에서 수소(H)를 제외한 리튬(Li), 나트륨(Na), 칼륨(K), 루비듐(Rb), 세슘(Cs)등의 원소들은 원자핵 주변을 도는 전자들 중에서 핵과의 거리가 가장 먼 전자(최외각 전자)들이 자발적으로 떨어져 나가며 안정화를 이루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전자를 잃어버리려는 경향이 강한 원소들을 화학에서는 금속(Metal)이라 정의한다.
그런데 리튬(Li), 나트륨(Na), 칼륨(K), 루비듐(Rb), 세슘(Cs)등의 금속 원소들은 물과 만나게 되면 최외각 전자가 떨어져 나가는 반응이 격렬하고도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소 기체가 생성되고 반응 시 방출된 열로 인해 수소 기체의 폭발이 발생하는 것이다. 2018년 4월에 내가 보였던 금속 나트륨과 물 사이의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물이 이 금속 원소들과 반응하게 되면 염기성을 띠게 되고 페놀프탈레인 지시약과 만나서 붉게 변하는 성질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리튬(Li), 나트륨(Na), 칼륨(K), 루비듐(Rb), 세슘(Cs)등의 물질을 알칼리 금속(Alkai metal)이라 한다. 알칼리 금속이 물과 반응하는 정도는 원자번호 큰 순서에 따라 세슘(Cs), 루비듐(Rb), 칼륨(K), 나트륨(Na), 리튬(Li) 순으로 증가한다. 만약 그날 실험에서 나트륨을 리튬으로 대체했다면 그 난리는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음식이 맛을 내기 위해 첨가하는 소금을 화학식으로 나타내면 염화나트륨(NaCl)이라 표기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염화나트륨의 나트륨과 순수한 금속 나트륨을 서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금속은 자발적으로 전자를 잃어버리려 한다. 그런데 알칼리 금속들은 특별히 최외각 전자 1개를 잃어버리려는 경향을 가진다. 원자핵 속에서 +성질을 띠고 있는 양성자와 원자핵 주변에서 –성질을 띠며 돌고 있는 전자는 그 수가 서로 동일하다. 만약 어떤 원자가 전자를 잃어버리게 되면 양성자의 수가 전자의 수보다 더 많은 상황이 되어 원자 전체가 +성질을 지니게 된다.(“+로 대전되었다”라고도 한다.) 이렇게 양성자의 수가 전자의 수 보다 더 많게 된 원자를 화학에서는 ‘양이온’이라 정의하고 그 수의 차이가 1개이면 1가, 2개이면 2가라는 식으로 말을 덧붙인다. 따라서 알칼리 금속들은 자발적으로 +1가 양이온이 되기 쉽다.
소금을 이루는 염화나트륨의 나트륨은 금속 나트륨이 전자를 한 개 잃어버린 이후 만들어진 +1가 양이온 상태임을 의미한다. 이온 상태가 아닌 중성원자 상태의 나트륨은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놀이에 사용되기도 한다. 국이 싱거울 때 소금을 넣으면 간을 맞출 수 있지만 금속 나트륨을 국물에 넣어버리면 국을 맛보기도 전에 밥상에서 폭죽의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순수한 금속 나트륨 덩어리는 매우 위험하다.
2018년의 그 사건 이후 얼마 동안은 실험실의 금속 나트륨 근처에 가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식당에 있는 소금마저도 쳐다보기 싫었다. N과 A라는 글자가 함께 들어간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학생들 앞에서 화학 물질을 다루는 시범을 보이기가 두려웠다. 그날 실험을 하기 전,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학생들과 화학 물질 사이의 거리를 떨어뜨렸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나트륨 알갱이를 맞은 그 여학생은 머리카락이 약간 잘린 것 외에 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 학생이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맡은 동아리 활동을 위해 학생들이 흥미를 보일만한 과학 키트들을 준비하여 동아리 시간에 학생들이 즐겁게 실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실험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옅어져 갈 수 있었다. 역시나 학생들은 자기가 직접 참여하는 활동은 교과를 가리지 않고 재미있어했다.
2023년 6월의 어느 과학탐구실험 수업 시간. 1학년 몇 반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불러 모았다. 수업 주제는 ‘알칼리 금속의 성질 알아보기’였다. 운동장 가운데에 물이 채워진 커다란 수조를 놔두었고 학생들은 수조로부터 30미터 넘게 떨어져 있도록 지시하였다. 나는 금속 나트륨 덩어리를 엄지손가락 마디 크기만큼 잘라 내어 수조 속에 떨어뜨린 다음 학생들 속으로 전력 질주하며 외쳤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관찰해요. 수조와의 거리는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수조 속에서 폭발과 함께 붉은색 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우와. 대박이에요!”
경탄하는 학생들에게 질문하였다.
“자. 국물이 싱겁다 해서 나트륨 덩어리를 그대로 넣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