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슨생 Sep 04. 2024

다시는 보지 맙시다.

빌런의 은퇴

  지난 금요일. 나를 싫어하는 세 번째 교장이 퇴임하였다.


  


  사악했던 A 교장, 어리석었던 B 교장, 그리고 이번에 작별한 어리석고 사악했던 C 교장. 

  그들은 약간은 다른 인간들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만 옳다는 신념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아예 몰랐다. 권위적으로 다른 사람을 눌러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참을성이 없다는 것도 똑같았다.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습한 날 숲 속에서 앵앵거리는 산모기를 대하듯  경멸했다. 그런 캐릭터의 인간이 어느 직급에 있든 무작정 굽신거리는 인내심 따윈 내게 없었다.

  그들로부터 긴 시간 동안 많은 미움을 받았다.




  A 교장은 처음에 나를 좋게 보았다. 임용 성적이 높아 마음에 드는 새 인물을 잘 만 키우면 자기 말 잘 듣는 똑똑이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내가 교육청에 계획서를 올리고 통과되어 프로젝트 진행비로 받아 온 예산을 전적으로 학생과 교사들만을 위해 사용하면서 나는 그에게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교육청과 학교 사이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에 따른 투명한 학교 회계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이었던 2010년대 초엔 교육청에서 따온 학교 예산을 제 개인 용도로 쓰는 사립학교 관리자들이 꽤나 많았다. A교장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그가 퇴임하고 나서야 알았다.

  A 교장은 사악하면서도 머리가 비상하였다.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공금을 티가 나지 않게 제 주머니에 넣는 법을 잘 알았고 그 과정에서 공범을 만들어 신고 가능성을 최소화하였다. 물론 이는 소문에 의한 추측이기에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에게 공금을 바치지 않아 미움을 받았을 가능성을 빼고 A 교장이 나를 싫어했을 법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몇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받아놓고 자기에게는 예의상으로라도 얼마 쥐어 주지 않은 채 나 몰라라 하는 새파랗게 젊은 선생 놈이 그에게는 여간 괘씸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A 교장은 사사건건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한 날은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쩔 땐 수업을 왜 그 따위로 하느냐고, 어떤 날은 내가 담임을 맡은 반이 더럽다는 이유를 대며 나를 교장실에 불러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나무랐다. 동료 교사 수업 연구 평가회 때는 그 교사의 수업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고 뜬금없이 내 업무 처리능력이 형편없다 말하면서 나를 무자비하게 비난하기도 하였다.  A 교장은 자기 주변 평교사들에게 고장 난 축음기 마냥 나에 대한 비방을 반복 재생 해대며 나를 안 좋은 사람으로 몰았다. 나보다 어린 교사들에게는 나랑 친해지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협박도 심심찮게 늘어놓으며 자기 눈 밖에 벗어나면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지를 똑똑히 보여 주다가 퇴직하였다.



  B 교장은 평교사 시절부터 A 교장의 충견 역할을 하였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퇴근 이후에도 A 교장의 수족 역할을 하며 그의 이쁨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A 교장은 퇴임 이후에 재단 이사가 되었고 B 교장이 학교장이 되는데 큰 도움을 행사하였다. B 교장은 A 교장에 대해 고마움의 마음을 넘어 그를 인생의 멘토로 설정한 듯 교장이 되고 나선 그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듯한 말과 행동을 이어 갔다. 그리고 A 교장이 나를 미워하던 마음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직원 모임 시간에 B 교장이 갑자기 3 공화국(오타가 아니다.)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며 재단 이사장이 살아생전 공화당 국회의원과 친분이 있을 정도로 훌륭했다는 시답잖은 소릴 30분간이나 지껄인 어느 날이었다. 나를 교장실로 부른 B 교장은 예고에 없던 사항을 내게 얘기했다.

“내년부터 우리 학교에서 영재 학급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 의대 진학에 큰 도움이 된다 생각해서요.”

  그러면서 날 더러 영재 학급 운영 책임을 맡아 달라 하였다. 필시 근처 교장들 모임에서 뭔 얘기를 듣고 온 것이 뻔했다. ‘너네 학교에서는 영재 학급도 운영 안 하냐?’라는 류의 이야기를 듣고 자존심 상했겠지. 그러나 B 교장이 뭔 생각으로 제안을 했든 난 절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우리 쌍둥이들은 갓 돌이 지나서 와이프와 나의 케어가 많이 필요했고 주말에 집 밖을 벗어나는 건 꿈도 꾸지 못할 때였다. 그런데 방과 후는 물론이고 공휴일과 방학에도 학생들에게 매달려야 하는 영재 학급 책임자를 하라니. 하기도 싫었고 도저히 시간도 나질 않았다.

“교장 선생님. 아시다시피 쌍둥이 육아 때문에 저는 도저히 그 역할을 맡을 수 없습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무조건 내가 받아들일 것이라는 자기 생각에 굳게 갇혀 있던 B 교장은 나의 거절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하였다.

“지금 학교는 똥이 되든 밥이 되든 무시해도 된다는 겁니까?”

  어이가 없었다. 구성원들 동의 없이 자기 고집으로 밀어붙이려 하는 사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말하는데 그게 학교를 말아먹는 행위라 매도하다니.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교장 선생님. 제가 영재 학급 담당을 하지 않는다고 학교가 망하기라도 합니까? 언제 제가 수업을 빼먹기라도 했습니까? 우리 학교에서 10년이 넘도록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영재 학급을 의대 진학 수단으로 삼으려 하는 발상은 대한민국 영재 교육 취지를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발로’라고 말하려 했으나 B 교장은 더 이상 내가 입을 열 틈을 주지 않았다. 

  책상을 꽝 꽝 내리치며 일전에 내게 뱉었던 말을 재생하였다.

“그러고도 교사라 할 수 있습니까? 학교가 있으니까 우리가 있는 겁니다.”

8시간 근무시간을 보장한다 해 놓고는 약속을 어겼을 때도, 기숙사 감독을 남녀 교사 모두 공평하게 하게 한다 해 놓고 약속을 어겼을 때도 난 교장실에 찾아가 항의했지만 그때도 B 교장은 방금 그 말을 하며 나를 윽박질렀다. B 교장에게 학교란 자신이었고 자기가 곧 학교였다.

  A 교장에게 워낙에 많은 갈굼을 받았던 나는 화가 난 교장의 언성을 듣는 것에 면역이 생겼었다. 그래서 B 교장을 대할 땐 그저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가능한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바뀌지 않는 인간을 내가 억지로 바꾸려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교장이라 해서 무턱대고 교직원들에게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는 것, 자기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지시를 받게 되는 직원의 기분은 매우 나쁘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어필은 B 교장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나를 제 혼자 삐딱선을 타는 미운 오리로만 보았다. 나 말고는 대부분의 내 또래 교사들이 B 교장의 말에 고분고분하였으니 나만 별종으로 볼 수밖에.

  행정실, 교무실 가릴 것 없이 공공연한 자리에서 B 교장은 건방진(?) 나를 욕하고 다녔고, 그 주변인들은 그가 뻘쭘하지 않도록 성실하게 내 험담을 거들어 주었다. 빈 교실이 없어 별관 과학실에서 하루 종일 수업하고 있던 나를 향해 ‘교무실 오지 않고 엉뚱한데 짱 박혀 노닥거리는 인간’이라 B 교장이 욕할 때에도 그의 충견들은 그의 말에 격하게 공감해 주었다. 그중 한 명이 당시 교감이었던 C 교장이었다.



  C 교장 역시 B 교장과 함께 평교사였던 시절부터 A 교장의 눈에 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차기 대권(?)을 노리던 하이에나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엉뚱한 사람이 교감이 되는 바람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고 크게 상심하여 별관에 박힌 이후 몇 년간 교무실 출입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학교에 큰 공사가 있어 서울에 있던 학교 재단 이사들이 자주 학교로 방문하는 찬스가 왔고 그들에 대한 지극한 헌신(?)과 억센 운빨이 겹치게 되어 C 교장은 꽤 오랫동안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C 교장은 B 교장과 달리 A 교장의 철학을 이어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C 교장은 어떻게 하면 교장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던 사람이었기에 교장이 된 이후의 일 처리가 어두웠고 그로 인해 학교 구성원들도 수년간 짙은 어둠에서 해메여야만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C 교장이 학생의 편의나 교직원의 복지를 고려하여 의사 결정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자기만큼 어리석고 자기처럼 윗사람에게 굽신거릴 줄 알면서도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데는 정평이 난 교사들을 앞세워 교장인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일에 몰두하였다. C 교장에게는 자기 말 잘 듣는 사람 외에는 모두가 다 적이었다. 당연히 나도 그의 주적이었다. B 교장이 남긴 유지(?)에 따라 C 교장 역시 교원 평가에서 나를 깎아내렸고 부장 교사 자리에서 날 배제시켰다. 인터넷 게시판에 누군가 익명으로 우리 학교에 대한 비방글을 올린 것을 보고는 근거도 없이 나라고 지목하여 내 욕을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나중에 나도 그 글을 읽어 보았는데 누가 봐도 재학생이 쓴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C 교장이 어리석다 말하는 것이다.

  사악하다는 것과 어리석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호 배타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C 교장은 어리석으면서도 사악하였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지만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려는 기간제 교사에게 “이렇게 나가면 당신 다른 학교에 절대 취업 못하게 하겠다.”라며 엄포를 놓기도 하였다. 내가 교무실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과학실에 짱 박혀 놀고 있다며 B 교장에게 허위 사실을 제공한 인물도 알고 보니 C 교장이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학생이 의도치 않게 찬 공 때문에 C 교장의 차 유리가 파손된 적이 있었다. 학교 안전공제회를 통해 보상받으면 되는 문제였지만 C 교장은 굳이 그 학생을 호출하여 학생의 부모와 담임교사에게까지 본인에게 용서를 구할 것을 강요하였다.

C 교장을 떠올리다 보니 또 다를 누군가가 떠오른다. 기분 탓?

  



  나는 B 교장과 C 교장 모두 자신의 많은 부분을 걸고 교장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관리자가 되고 싶어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확고한 교육 철학이 있어서 교장이라는 자리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었음이 증명되었다면 지금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교장이 되어서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땐 항상 옆 학교는 어찌하는지 눈치부터 살피던 그들의 모습을 보고 짐작해 보겠다. 아마 교사가 되어 나이 들어서도 관리자 한번 되어 보지 못하고 퇴임하게 되면 남 보기 부끄럽다는 생각 때문에 교장이 되고 싶다 마음먹은 게 크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과 다른 사람의 판단만을 의식하고 살아온 인간에게는 노예로서의 도덕에 따르는 삶이 그저 편하다. 책임을 진 자가 가져야 할 언행의 도 같은 것을 그들에게 기대하기란 어렵다. 어떤 인간이 노예의 도덕을 충실히 따른다 해서 그를 마냥 욕할 수는 없다. 유전적 또는 문화적 우연으로 인한 것이니 그도 어쩌면 불가항력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한 집단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 역할을 했다는 게 큰 문제다. 

  B 교장, C 교장 모두 교장 역할을 하는 동안 발생한 상황을 직시하고 사건의 경중을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신속한 행동력으로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교직원들에게 보여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성추행, 시험문제 표절,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그저 남 탓만 하기만 바빴다.


  A, B, C 교장 모두 교직원들에게 자주 화를 내었다. 자기는 학교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왕이므로 직원들에게 하대하며 언제든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학교에서의 직급은 단지 그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구별하는 수단으로 붙여진 것뿐임을 알지 못했다. 교장이라는 직급을 무기 삼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도 학교 있을 때나 교장이지, 퇴임하고 나이가 들면 흙으로 돌아갈 시기를 기다리는 평범한 노인에 지나지 않음을 왜 몰랐을까? 아마도 교장이라는 타이틀을 지우고 난 이후,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기 자신을 바라볼 용기가 없어서 그 자리에 대한 집착이 생긴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자신의 직급이 달라진다 해서 낮았던 자존감이 갑작스레 올라가는 법은 없다. 교장이 되었다 한들, 없던 자존감이 갑자기 생겼을 리 없었을 것이다. 본인이 노예처럼 사는데 감히 주인처럼 살고자 하는 아랫것(?)들이 나타나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학생은 교사보다 덜 진화한 존재이고 반(半) 인간이라 믿으며 내 말과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몰랐던 시기가 있었다. 퇴임하는 순간까지 다수의 교직원들에게 욕을 먹었던 C 교장을 보며 ‘저런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라 생각하면서도 그와 비슷했던 내 과거가 떠올라 섬뜩하였다. 나와 작별했던 과거의 숱한 학생들에게 나 역시 몹쓸 짓거리를 많이 하였다.

  인간은 권위에 쉽사리 굴복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권위를 내세우려 애쓰는 본능도 강하다.



 공부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폭력일지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