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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손내밥 Jun 04. 2024

아직은 고구마를 먹을 수 없는 중입니다.

별이야 잘 지내고 있니?

고구마를 안 먹은 지 일 년이 넘었다. 

시장에서 파는 고구마를 보면 눈길이 가다가도 이내 돌려버린다. 


나는 고구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박스로 사다 놓고 먹었다. 

고구마 밥, 고구마 수프, 고구마 카레, 고구마 샐러드, 고구마 조림, 고구마 범벅, 고구마 말랭이, 고구마 빠스  등 고구마로 할 수 있는 많은 요리를 해 먹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고구마는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는 것이 가장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고구마를 남편과 딸아이는 안 먹었다. 

나는 고구마 파트너인 별이와 둘이서 고구마를 먹었다. 내가 고구마를 먹을 때면 별이가 항상 곁에 있었다.


‘별이’는 2013년부터 우리 가족으로 살다가 작년에 우리 곁을 떠난 반려견이다.


별이는 나처럼 고구마를 좋아했다. 아니 나보다 더 고구마를 좋아했다. 

내가 고구마를 먹으려 하면 별이는 반드시 나타났다. 아무리 조용히 먹어도 별이는 알았다. 새벽이건 밤이던 낮이던 고구마만 먹을라치면 별이는 자고 있다가도 뛰어나왔다. 


‘고구마’란 단어를 들으면 별이는 팔딱거리며 좋아했다. 

'고구마'는 별이가 반응하는 몇 안 되는 단어 중에 비중있는 단어였다. 


별이는 순둥이였다. 말썽도 부리지 않고 낑낑거리지도 않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얌전히 기다렸다. 다만 자기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람에게 턱을 댔다. 

고구마 말랭이를 만드는 날이면 별이는 내 옆으로 와서 내 몸 어딘가에 자신의 턱을 대고 움직이지 않았다. 주지 않으면 줄 때까지 그대로 기다렸다. (말랭이 작업은 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건조기에 올리는 과정이다.) 

결국 고구마 조각을 별이 입에 넣어 줄 수 밖에 없었다. 별이는 말랭이 작업이 끝날 때 까지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별이는 2.8키로의 작은 말티즈였는데 고구마는 꽤나 많이 먹었다. (고구마를 먹은 날은 변을 엄청 많이 봤다는...)


별이가 떠나던 날도 별이는 고구마를 먹었다. 

그래서 별이가 떠난 뒤에 나는 고구마를 먹을 수가 없다. 


전에는 고구마를 보면 에어프라이에 구워진 노오란 속살이 생각났다. 

이제는 세상 행복한 얼굴로 고구마를 먹던 별이가 생각난다.



별이야,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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