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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저항하는 인간


1.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은 주인공 ‘요조’가 남긴 3편의 짧은 수기로 구성돼 있다. 그의 수기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는 예감에 호기심이 작동한다.   

   

2. 예상한 대로 요조는 독특하다 못해 기이하다. 가족들과 밥 먹는 시간을 가장 괴로워하고, 누구 하고도 자기 마음속 진실을 나누지 못할 만큼 관심사가 남다르고,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그 이면에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하다는 걸 간파하고, 인간은 신뢰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걸 꿰뚫고 두려워한다. 요조는 사람들과 자기의 간극이 너무 크고 깊은 것에 놀라며 두려워하다가 익살로 이 간극을 극복한다.   

   

3. 그러니까 요조는 주변 사람들과도, 눈앞의 현실과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 것이다. 정면으로 마주하기에는 간극이 너무 컸는지 차마 마주하지 못한 채 두려워 떨다가 익살로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넘어간 것이다.      


4. 일차적 생존 욕구에 충실한 사람들, 그로 인해 일그러진 현실을 간파하는 데는 탁월한 감각이 있으나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는 못한다. 고작 익살, 술, 마약, 여자의 품에 의지해 살아갈 뿐.      


5. 한 마디로 ‘NO’를 못한다. ‘아니요’를 못한다. 어린 시절 하녀와 머슴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폐결핵으로 혈담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술에 저항하지 못한 채 모르핀에 의존한다. 심지어 양자택일조차 못 한다. 솔직히 이런 게 가능한가 싶기도 한데, 요조는 한 번도 자기 의지로 뭘 선택하거나 결정한 적이 없다. 그저 상황에 밀려 살고, 술과 모르핀과 여자에 의존해 산다. 

  다시 말해 사람과 현실을 끝없이 회피하고 외면하기만 한다. 주체로서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데 요조는 맞설 힘과 용기가 없다. 병든 인간, 부조리한 현실을 꿰뚫어 보기만 할 뿐 맞서거나 저항할 힘은 없다.      


6.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에 의해(거짓에 속아)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정신병원에 있는 자신을 보며, 요조는 ‘이 병원에 들어온 자는 미친 자, 들어오지 않은 자는 정상’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생각하며, 또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지 못한 채 기생적 삶을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신에게 묻는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그리고 자조하듯 내뱉는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7. 요조는 자기 스스로를 향해 ‘인간 실격’이라고 선언한다. ‘무저항은 죄입니까?’라는 뼈아픈 물음과 함께.      

8. 요조는 한 마디로 ‘무저항의 인간’이었다. 탁월한 통찰과 깊은 눈을 가졌음에도 비루한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만 할 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 무저항의 죄를 범했다. 요조는 그런 자신을 향해 ‘인간 실격’이라고 선언한다.      


9. 나는 요조의 선언을 듣고 생각한다. 그렇담, ‘인간 실격’이라고 파문당하지 않을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요조는 실패한 자신의 인생을 통해 ‘저항하는 인간’이야말로 참된 인간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닐까?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저항. 저항. 저항..... 저항하는 존재!!!

곱씹어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간은 단지 생각하는 존재를 넘어 저항하는 존재임을. 

성서도 에덴동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저항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음을.     

저항하는 존재이기에 심히 문제적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저항하는 존재만이 주체이고, 주체만이 인간임을. 


10. 나는 저항하지 못하는 인간 요조를 통해 저항하지 못하는 인간의 비루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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