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은퇴는 당신을 구원할지니
많은 이들이 은퇴를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은퇴 앞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은퇴 앞에서,
과거와 달리 은퇴 이후의 시간이 길어진 현실 앞에서,
많은 이들이 은퇴를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 두려워 호기롭게 영원한 현역을 꿈꾸고,
백세 시대의 재무 설계로 골머리를 앓을 만큼.
솔직히 ‘은퇴 이후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늙은이의 소일 문제, 돈이나 건강 문제를 넘어 존재와 삶의 문제다.
하여, 60대 중반인 나도 날마다 묻는다.
은퇴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데 깊이 고민하되 두려워할 건 없지 싶다.
은퇴는 삶의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이니까.
새로운 학습과 성장을 향한 은총의 기회이니까.
그래도 은퇴하는 게 반갑지 않다면,
은퇴하는 게 두려워 은퇴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까지 업무에 짓눌려 살 텐가?
언제까지 일에 묶여 살 텐가?
언제까지 돈 주변을 어슬렁거릴 텐가?
언제까지 세상의 하수인으로 살 텐가?
언제까지 성공의 파랑새를 좇을 텐가?
언제까지 먹고사는 일에 코 박을 텐가?
언제까지 마당발을 자랑하며 사회적 자아로만 살 텐가?
언제까지 구멍 숭숭 뚫린 삶을 반복할 텐가?
언제까지 의무감에 짓눌린 삶을 지탱할 텐가?
언제까지 나 아닌 나로 살 텐가?
만일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하고 싶다면, 좋다, 은퇴하지 마시라.
그러나 이 질문에 NO라면 답하고 싶다면, 은퇴를 두려워하지 마시라.
두려워하지 말고 은퇴하시라.
은퇴가 당신을 구원하고 또 구원할 것이니.
은퇴가 당신을 무거운 짐 진 것에서 해방하고 또 해방할 것이니.
은퇴가 그리도 소망했던 자유를 깊이 호흡하고 또 호흡하게 할 것이니.
은퇴는 흔히들 생각하듯 인생의 중심에서 인생의 변두리로 내쫓기는 게 아니다.
숨 막히듯 전개되는 삶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다.
은퇴는 나 아닌 나로 사는 것에서 나로서, 나답게,
한 걸음 더 나아가 나 없이 사는 것으로 삶의 문법 전체를 대전환하는 것이다.
즉 은퇴는 당신의 지나온 삶의 문법을 대전환하라는 지엄한 명령인 셈이다.
동시에 열심히 살아온 당신에게 온 세상이 베푸는 최상의 은총이요 선물이기도 하고.
그러니 은퇴를 두려워하거나 저항하지 않으면 좋겠다.
염려와 두려움이 밀려오는 거야 어찌할 수 없지만
“은퇴”를 삶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과 사람과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온갖 역할과 직위로 가려졌던 나를 깊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
이전과 다른 삶의 폭과 깊이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
생존경쟁이 아닌 삶 자체를 향유하며 삶 자체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면 좀 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마음으로 은퇴를 맞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대니얼 클라인은 책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에서
‘은퇴 이후야말로 인생을 살펴보기에 가장 완벽한 시간’이라고 했다.
어떤 이에게는 인생 2막이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인생 3막이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인생 4막이 되겠지만,
은퇴 이후야말로 인생 최고의 장임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하여, 나는 감히 소망한다.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학교라는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는 어린아이처럼,
학교의 울타리를 떠나 사회라는 새로운 장으로 돌진하는 청년처럼,
자녀의 울타리를 넘어 부부라는 새로운 장으로 첫발을 내딛는 신혼부부처럼,
은퇴 이후의 장을 기쁨과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