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로 홀로 있는 자유, 어떤 제한도 없는 자유를 꿈꿉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는 없습니다. 자유란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거든요. 자유가 자유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첫째, 나 외에 하나님이든 사람이든, 생물이든 좌우간 모종의 타자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지 말아야 할 영역이 있어야 합니다. 타자와 금지,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비로소 자유는 환상이나 낭만이 아닌 실재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나 홀로 자유,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홀로 누리는 자유가 과연 자유일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허락된 상태에서 누리는 자유가 과연 자유일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도 그런 상태에서는 자유를 지각하기 어렵습니다. 자유의 배고픔이나 자유를 향유한다는 느낌을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면 자유는 나와 너의 사이 공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나와 너의 사이 공간에서만 피어날 수 있듯 자유 또한 나와 너의 사이 공간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관계적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나와 너는 완전히 동등한 자유의 주체, 눈곱만큼의 차이도 있을 수 없는 자유의 주체입니다. 그런 만큼 나의 자유가 너의 자유에 의해 침해당해서도 안 되고, 너의 자유가 나의 자유에 의해 침해당해서도 안 됩니다. 나의 자유는 마땅히 너의 자유 앞에서 멈춰야 하고, 너의 자유 또한 마땅히 나의 자유 앞에서 멈춰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자유는 자유일 수 있고,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와 너 사이에 자유의 꽃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도 창세기 2장에서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인간은 무엇이든 자기 맘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의 주체다. 하지만 인간이 진정한 자유의 주체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침범하지 말아야 할 영역이 있다. 반드시 멈춰야 할 마지막 선이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바로 그 선이다. 그러니 자유를 위해 이 선 앞에서 멈춰라. 그래야 비로소 자유의 꽃을 피우며 살 수 있다.]
성경은 이처럼 자유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 다음 곧바로 아담과 하와가 금지의 선을 넘어간 이야기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그렇다면 물읍시다. 성경은 왜 이렇게 빨리 금지의 선을 넘어간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빨리 선악과 먹은 이야기로 넘어간 걸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유가 자유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금지의 선이 있어야 하기에 하나님이 금지의 선을 그어 놓았다. 그런데 자유란 본성적으로 금지를 넘어 가려 하고 결국에는 금지를 넘어가고야 마는 속성이 있다. 이것이 자유의 속성이며 자유의 필연이다. 자유의 역설이다. 인간은 자유를 갖고 자유를 파괴한다. 인간에게 자유가 있는 한 인간은 금지의 선을 넘어가고야 만다.] 창세기 2장의 선악과 이야기는 바로 이 자유의 역설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그렇습니다. 자유가 자유이려면 반드시 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금지를 넘어가지 못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금지를 넘어가지 못하는 자유가 무슨 자유이겠습니까? 금지안에 머물기만 하는 자유가 무슨 자유이겠습니까? 금지 앞에만 서면 자동으로 멈추는 자유가 무슨 자유이겠습니까? 자유란 자고로 금지를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금지 앞에 머무는 것도 자유의 힘입니다. 하지만 금지를 넘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자유의 힘인 것도 사실입니다. 자유란 어떤 면에서 저항의 힘, 부정의 힘, 금지를 넘어가는 힘이니까요.
진실로 그렇습니다. 자유의 주체는 금지의 선 앞에서 머뭇머뭇하며 번민의 시간을 보내겠지만 언젠가는 결국 그 선을 넘어가게 돼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유의 본성이자 운명이며 동시에 자유의 역설입니다. 창세기 2장이 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고요.
[자유는 결국 한계의 선, 금지의 선을 넘어가고야 만다.]
사실입니다. 나의 자유는 결국 너의 자유와 충돌합니다. 우리의 자유가 커질수록 서로의 자유는 충돌하고, 나의 자유가 커질수록 그 자유는 자유의 폭력으로 추악해집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를 파고파고 또 파보십시오. 인간의 모든 문제와 싸움의 근원에는 인간 존엄의 초석인 자유가 놓여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싸움은 사실상 자유와 자유의 충돌에 다름 아닙니다. 예. 인간의 모든 문제는 자유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자유가 최대화된 사회이면서 동시에 폭력이 최대화된 사회인 것도 바로 이런 자유의 역설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자유의 주체로 만드신 것은 실로 위험천만한 도박, 대범한 모험을 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이처럼 위험천만한 도박을 하시는 하나님, 역설로 가득한 세상을 창조하실 만큼 대범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비록 그런 하나님으로 인해 자유라고 하는 골 때리는 문제에 걸려 넘어지곤 하지만. 아직도 자유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때로는 자유의 폭력에 시달리고 때로는 자유의 폭력을 행사하는 이율배반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하나님 - 나와 우리 모두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