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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아는 나무

선악에 대한 이해의 오류


보통의 그리스도인을 보면 선악의 문제로 그리 고민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대충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1. [하나님은 선하시다.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실 리 없다. 그러므로 선악의 문제는 전적으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발생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된 것도 선악과를 먹어서이고, 악이 세상에 들어온 것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서이다.]

보통의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선악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아담에게 돌립니다. 세상이 온통 죄로 가득하게 된 것은 아담의 원죄 때문이고, 우리가 죄인이 된 것도 아담의 원죄를 뒤집어썼기 때문이며, 아담의 원죄를 해결한 분은 예수님이시니 우리는 예수님만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보통의 그리스도인 신앙을 보면 나는 없고 아담과 예수만 있습니다.   


2. [선과 악은 흑과 백, 물과 기름처럼 서로 다르다. 이 세상은 선의 신과 악의 신의 싸움터이며 둘은 항상 대적하며 싸운다. 당연히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이 선한 신이시고 다른 신은 악한 신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선에 속한 자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저 사람들은 다 악에 속한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 악의 세력을 멸해야 한다. 악의 세력을 멸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보통의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선악을 완전히 다른 두 세력이라고 봅니다. 선악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철저한 선악 이분법, 선악 이원론에 확고히 서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보통의 그리스도인을 보면 선악을 잘 가르고, 매우 호전적이며, 교회 울타리 밖을 죄와 어둠의 세력이라고 쉬 규정합니다.  


교회가 그동안 선악과 이야기를 통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반복해왔기 때문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큰 고민 없이 이게 절대 진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3.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이것이 과연 창세기 2장이 말하는 바일까요? 한 번 성서를 섬세하게 읽고 생각해봅시다.

우선 첫 번째 보통의 생각에 대해 성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아는 나무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서술을 가볍게 스치듯 지나쳤습니다. 다 아는 내용이라 생각하고 머물러 묵상하지 않은 채 스치듯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이 서술엔 선악과 관련해 통찰해야 할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4.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아는 나무가 있었다는 서술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읽습니다. [선악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 속에 처음부터 있었다.]

물론 성서는 선악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는 선악의 기원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2장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부터 선악을 아는 나무가 있었다]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서술이며, 이 서술 속에는 두 가지 의외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선악의 문제가 아담 때문에 불거진 게 아니라는 것. 또 하나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서 선악을 알게 된 게 아니라 선악과를 먹기 전에도 선악을 알았다는 것.  


5.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적어도 네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 진실을 확인하는 데는 가정법이 의외의 효과가 있습니다. 하여,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선악이 뭔지, 죽음이 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었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이 왜 먹지 말라고 하는지, “먹지 말라”는 금령에 내포된 위험성이 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은 일말의 대화도 아닌 하나님 혼자만의 독백이 돼버렸겠지요. 그리고 사태가 그러하다면 아담이 선악과 먹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혼자 독백해놓고, 아무 것도 모르고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알다시피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 먹은 책임을 추궁했습니다. 그것도 억울한 추궁이 아니라 정당한 추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선악이 뭔지, 죽음이 뭔지를 알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 이번에는 보통의 그리스도인이 믿고 있듯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선악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선악을 아는 것이 뭐가 될 것 같습니까? 선악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됩니다. 그리고 선악을 아는 것이 죄라면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을 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9)라고 기도한 것이 이상야릇하게 됩니다. 또 히브리서 기자가 ‘장성한 자는 선악을 분별하는 자’(히5:14)라고 말한 것, 바울이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12:9)고 권면한 것도 해석이 안 됩니다. 적어도 선악을 아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해야만, 아니 선악을 아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야만 비로소 솔로몬이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한 것, 바울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권면한 것이 이해되고 해석됩니다.


ƒ 또 아담이 선악을 알지 못하는데 그런 아담을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이요 자유의 주체라고 떠벌린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과연 말이 될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악을 알지 못하는 존재를 하나님의 형상이요 자유의 주체라 하는 것은 과대포장도 지나친 과대포장이라 생각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자유의 주체라는 서술에 부합하는 존재이려면 적어도 선악을 아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 마지막으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아는 나무가 엄연히 있는데도 아담이 선악을 알지 못했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과연 말이 될까요? 저는 이것 또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 아담은 순결했고, 순결한 아담은 선악을 몰랐으며, 순결한 아담이 선악에 눈뜬 것은 전적으로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억지스런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6. 좀 더 꼼꼼하게 찾아보면 이 외에도 연결지점이 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네 가지 정도의 배경만 따져 봐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아는 나무가 있었다]는 서술이 새롭게 읽힙니다. [선악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서 생긴 게 아니라 맨 처음부터 그냥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선악이 거기에 있는 이상 선악과를 먹기 전에도 선악을 알았을 것이며, 선악을 아는 것이 죄일 수 없다]라는 메시지로 새롭게 읽힙니다. 이렇게 읽는 것이 성서 전체의 맥락과 더 잘 어울리는 해석일 수 있다는 겸허한 담대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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