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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 Mar 02. 2024

빈털털이된 호주 워킹홀리데이, 후회하냐고요?

녜니오..

갑작스럽게 호주 살이는 종료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제 호주살이에 적응도 해가고 있었고 통장도 두둑해지는 시기였다. 그런데 돈에 눈이 멀어 주 7일을 일하다 결국 건강문제가 생겼다.아프다고 바로 귀국행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벌어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간이었지만 호주의 그 자유로움과 대자연이 주는 힐링을 어찌 하루아침에 접을 수 있을까. 


하혈을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 탓에 호주 응급실도 두어 번 갔었고 딱 1 개월 전 보험도 만료되어 보험 없이 응급실을 찾아 응급실 비용만 하루 1000불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아프면서도 한국에 가야겠다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호주 의료시스템에 무너졌다. 이렇게 사후관리까지 안 되는 나라에 있다가는 내 몸에 남은 피를 다 쏟아내고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때까지도 한국에서 치료만 받고 오자고 생각했었다. 며칠만 가자고 생각해서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그대로 떠났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약발(호르몬제)이 떨어지는 바람에 다시 하혈.집도 가지 못하고 그대로 한국 응급실을 갔다. 그래도 이 주간 입원을 했고 한국 의료의 정성스러운 치료에 몸이 다 회복된 것 같았다.


몸은 회복된 것 같은데 하혈하는 트라우마로 마음이 아주 약해져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호주에 다시 가야 되겠다 생각했다. 퇴원 후 2주가 더 지난 시점이었다. 가족들, 친구들은 걱정 어린 마음에 반대를 하는데도 나는 짐 핑계를 대며 호주에서 다시 일을 구하고 살아갈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간 모았던 돈은 비행기값으로 동이 나버렸다. 겨우 한 달 생활비를 가지고 다시 호주로 돌아갔다. 몸도 회복했고 이제 다시 일을 구하며 살면 되는 일인데 이상하게 호주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두려운 곳이 된 것이다. 사랑한 호주가 사랑'했던' 호주가 되면서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길을 가다 갑자기 피를 쏟을 것 같았고 다시 응급실로 실려가는 상상을 하고, 그 와중에 의료비 걱정을 하느라 스트레스는 심해져 갔다. 


엎친데 덮친 격, 돈은 떨어져 가는데 마침 연말이라 일자리 채용은 얼어붙었다.(호주인들은 연말을 제대로 쉬는 문화가 있다. 부러울 따름이다) 거기다 호주산불로 아름다운 시드니가 매연으로 가득 차버린 것이다. 마음도 성치 않은데 자꾸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어찌어찌 일자리는 구했지만 일하면서도 몇 번이나 피를 쏟아내는 상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2주를 더 버티다 결국 한국귀국을 선택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호주생활을 할 수 없었다. 급 귀국 후에는 갑작스러운 우울이 찾아왔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우울감이라 마음 위에는 돌덩이가 앉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공한 워홀러들처럼 돈도 여행도 영어도 제대로 못 얻고 병만 가지고 돌아온 기분에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졌다.


뭐 하나 없이 돌아온 것도 모자라 주변에는 모두 취업을 하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 취업 대신 호주행을 택했을 땐 내가 2년 차인 직장인이 되었다 가정했을 때 통장에 있음 직한 돈을 모아 오는 게 목적이기도 했다. 그래야 취업대신 호주살이를 택한 것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끝은 통장은 비어있었고 머릿속엔 트라우마가 가득했고 자신감 대신 우울감으로 가득찼으니 호주살이는 완벽히 실패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때가 와도 다시 호주살이를 택했을 것 같다. 여전히 지금껏 살아온 인생 중 후회하지 않는 덕목은 호주살이이며 그런 값진 경험은 돈주고도 못할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돈 하나 못 모았고 대단한 여행지를 가보지도 못했으며 대단한 영어실력을 가지지도 못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내 힘으로 해외살이를 하는 게 어디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있는 일일까.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과 만날때면 아직도 키득대며 호주살이 에피소드를 나열해대곤 한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때 그 추억들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이야기하며 하하 호호할 수 있을 것만 같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으니까. 매일 같은 일상이 지겨울 때 한 번씩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곤 한다. 어느새 나는 미소를 짓고 있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결코 호주살이를 후회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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