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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d 채드 Feb 05. 2023

#5. 하늘색 치마  take 2

 경주라는 곳은 너무나 전형적인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신라의 천년고도에 앞서 수학여행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사실 고1 입학 이후 첫 봄에 수학여행을 간다는 것은 선생님들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 있었다. 우리들이 너무 친해져서 미처 방지하기 어려워지기 전에 그 모든 것을 해치워 버리려는 의도. 그래도 그 설렘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기에 부푼 마음은 우리들한테서 크게 터져 버리기 직전이었다.

 사실 수학여행이 설레고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즐거움과 기대만으로 채워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건 마치, 나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그 어떠한 사전 전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학교를 다니면 그냥 다니는 것이고 늘 하루도 다름없이 운이 좋으면 등굣길에 그 아이를 보는 것이고, 복도에서라도 지나치게 되면 친구들의 휘파람과 볼 발갛게 되는 내 모습, 하굣길에 막연히 기다려 보는 버스 승차장, 그리고 그날의 기억들. 이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진전 없이 너무도 똑같이 하루하루 반복되어 갔지만, 그 어떠한 전개에 대한 희망보다도 그냥 이 상황이 더 마음의 안정을 주는 아니러니도 있었다. 왜냐면 그 하루하루의 일상 혹 기대와 실망 속에는 항상 꿈꿔볼 수 있는 희망이 있었고, 깨어지지 않는 실망할 수 없는 우리의 관계가 유지되었고, 나의 일기장 속에서 계속되는 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지워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여행이나 그 어떠한 발단의 계기가 주어지는 것은, 애써 외면하던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되거나, 새로운 전환에 그간 소중히 여겨오던 나만의 일기를 더 이상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실제로 몸도 아펐지만 우리 반의 장기자랑 속 한 꼭지를 담당해 줄 바라는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결국 나의 불안함을 현실화하게 하는 등장을 하고 말았다. 기타를 들고 숙소 앞마당에 설치된 작은 무대 뒤편에서 등장하고 약간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코드를 잡고 조율을 해보는 모습은, 나에게 희열과 괴로움을 한 번에 주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그 어떠한 모습을 보고 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짧은 지나온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았고, 아무도 관심 없는 나의 심장소리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왜 이 많은 사람들 앞에 그 아이가 서있어야 하는가, 나만의, 나만 알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을 모두가 환호하며 보는 것이 너무나도 슬픔이었다.

 각인하고 각인하고 또 각인했다. 나의 눈을 통해 보이는 그 아이의 모습의 비친 상을 머릿속에, 나의 귀를 통해 들어오는 목소리와 노랫말을 마음속에, 그리고 점차 주변이 없어지며 그 아이만 남게 되는 그 집중의 순간을 평생의 기억 속에 담아보고자 했다. 불과 한 달 전 버스에 올라타 그 아이를 따라 내려서 몇 마디 안 되는 말은 건네고 주고받으며, 둘이서만 얘기를 나눈, 그 아이가 맞는 걸까, 나는 그날 이후 왜 다시 그 아이를 일기장 속으로 다시 보낸 것일까, 왜 지금과 같이 계속 바라보는 것 밖에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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