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고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잘 되면 조상 탓, 못 되면 내 탓"이 맞을지 모른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성공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노력도 노력이지만 재능이 너무 떨어질 경우 암만 노력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능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고 조상에게서 받는 것이다. 따라서 재능은 있는데 노력 부족으로 성공을 못한 것이라면 이는 분명 자기 탓임에 틀림없다.
대개 열심히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지만 남이 잘 때까지 불을 켜놓고 노력한다면 남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재능이 비슷하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몇 배로 노력을 해도 재능이 뛰어난 이를 이기긴 어렵다. 또한 만일 남보다 최소 한배 반 혹은 두 배씩 노력을 해야 겨우 살아남는다고 한다면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게 삶 전체로 본다면 나을지 모른다. 그것보다는 재능 있는 분야로 노력을 집중시키는 게 평생 여유라곤 없이 소처럼 일만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 되면 자기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란 말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일까? 자신이 별로 재능은 없지만 남들이 유망하다고 하는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재미를 보지 못한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일 수 있다. 설령 현실적으로 유망하지 않을지라도 조상이 물려준 재능으로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면 그 재능을 살리는 게 성공을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만일 조상에게서 받은 재능이란 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설령 그렇다 해도 조상을 원망한다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다. 따라서 설령 그럴 경우에도 한탄만 하기보다 묵묵히 노력하며 사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서양은 기독교주의에 따라 하느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았다면 동양은 유교주의에 따라 하느님 자리에 조상을 올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조물주 대신 하느님, 예수 대신 예수님이라고 부르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조상의 이름은 김 ×× 내지 박 ××라 부를 경우 쌍것이라고 하며 김자 ×자 ×자로 부르게 하였다. 그러한 전통 속에서 절대적인 조상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걸어온 발자취를 놓고 조상들이 보여준 모습은 과연 어떠했던가? 나라보다 자기 파벌의 이익을 우선하며 싸움질이나 하다 결국 나라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또한 해방 후에도 좌우 대립만 하다 전쟁을 겪었고 그 폐허위에서 후손들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허리끈을 조이고 노력한 결과 과거 꿈도 꾸지 못하던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 조상이 기여한 부분은 극히 미미하기만 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요즈음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여기저기서 적신호가 들어온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계속 추락만 거듭한다면 후손들로부터 손 까락 질 받을 일만 남을지 모른다.
전 세대의 위업을 다음 세대는 계승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캄보디아란 국가는 한때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크메르) 제국이었다. 12세기 초반 수리아바르만 2세와 자야바르만 7세 때 서쪽으로 미얀마, 동쪽으로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부 아시아와 중국의 남부까지 손에 넣고 호령을 했던 강대국이었건만 현재의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와트 유적 외에 그러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실을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현재도 과거 좌우익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명백히 잘못한 걸 놓고도 이런저런 핑계와 함께 궤변만 내세운다. 잘된 건 자기 탓이고 못된 건 조상 탓으로 돌리는 누를 더 이상 범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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