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8일부터 21일까지 3박 4일로 아들과 막내딸을 포함한 4인 가족이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다녀왔다. 취업한 지 2년이 된 아들은 연말 보너스로 호텔 숙박과 항공권 일체를, 그리고 나는 나머지를 부담했는데 나의 몫은 체면치례에 불과한 정도였기에 자식 키운 보람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공항은 불황에도 연말이라 그런지 수속시간이 길어져 출국심사를 마치고 탑승구를 향할 때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확인전화까지 받고는 출발시간인 19:45분 가까이 되어 탑승하는 기이한 경험까지 하였다. 비행기가 예상보다 30여분 늦게 이륙해 5시간 20분 후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다.
첫째 날에는 호텔 조식 후 근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한적하다는 마누칸섬으로 이동을 하였다. 푸른 하늘과 구름 그리고 맑고 투명한 바닷물과 흰모래는 고생해서 찾아온 보람을 느끼게 하였다. 물속으로 들어가서 발아래를 지나가는 물고기도 보고 그늘에서 쉬며 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돌아와 야시장을 들렀다. 열대과일과 생선 그리고 건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시내의 시푸드 식당에 가서 양념된 생선과 게 그리고 오징어튀김과 볶음밥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는 주변 맥도널드를 들렀는데 주문 화면을 통해 음료수와 햄버거 이외에 밥으로 된 메뉴까지 있음을 확인했다. 같은 맥도널드라도 나라마다 취급하는 것들은 다른 것이었다. 35년 전 유럽 배낭여행 때 베를린의 맥도널드에서는 햄버거와 작은 컵의 맥주를 함께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1달러도 안 되던 저렴한 가격의 맥주였지만 그 맛은 지금껏 마셔본 여느 맥주와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둘째 날에는 아침을 먹고 호텔 수영장과 헬스시설에서 운동을 하며 쉬다 택시를 타고 일몰경치로 유명한 탄중아루해변으로 가서 붉게 노을 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마구 찍었다. 해변에는 일몰구경객 이외에 구명조끼를 입고 카누를 타기 위해 줄을 서있던 사람들도 보였다. 어둑해질 때 칵테일바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마지막날에는 호텔에서 짐을 싸서 로비에 두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피도 마시며 얘기를 나눈 후 중국식당에서 만두를 먹었다. 그리고는 짐을 차에 싣고는 50여분 이동을 해서 '반딧불 투어' 관광지로 향했다. 17시경 도착해서 물가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는 어둑해지자 물가에 띄운 큰 뗏목 같은 배에 28명이 앉아 캄캄한 물 위를 이동하며 양쪽 숲에서 빛을 발하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았다. 그리고는 공항으로 향했다.
12월 중순의 대한민국은 겨울이지만 여행지는 30도 내외의 기온이라 건물 밖에 나가면 땀이 나고 안은 에어컨 바람이 아니면 지내기 어려웠다.
더위를 특히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에는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만 한 나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란 일상생활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새로운 곳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평생을 함께 지내는 가족과 떠나는 여행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17년 전 여름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호남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담양, 보성, 구례, 남원에서 함께 먹고 자고 즐기다 서울로 올라와 몇 밤을 보내자 장모의 눈 속 흰자위가 갑자기 노래지셨다. 동네병원에 갔더니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검사결과는 '담관암'이었고 장모는 그다음 해 3월 27일 눈을 감으셨다. 가족이 함께 떠났던 여행이 장모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몰랐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허전한 마음속에 자그마한 위안거리로 남아있다.
인간은 사는 동안 영원할 수 없는 기억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며 목적도 정처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일지 모른다. 빛바랜 사진과 같은 기억의 티끌일지언정 어떨 때는 반짝이는 별도 되고 또 어떨 때는 추억이란 이름의 작품이 되어 마음속 구석구석에 전시되기도 한다. 이번에 다녀온 코타키나발루 가족여행도 언젠가 서로 이별하게 될 때 그리움과 쓸쓸함을 달래주는 자그마한 위안거리가 되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