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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May 21. 2023

꼭꼭 지켜내야지

내 마음속 몽그르르한 설렘도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도착할 곳을 등록하고 안내 시작~~
‘차르르르’ 시동이 걸리면 내 마음도 자동차처럼 ‘몽그르르’ 설레임의 시동이 걸린다.
곧 만날 사람들을 향한 마음은 오른발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부웅~’ 속도를 낸다. 휴일 아침 한산한 도로 덕분에 40여 분 만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가면서부터 만나는 사람들도 책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척하면 척’ 알아들어주고 상대가 말하면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너무나 잘 알겠기에 몇 시간을 앉아 이야기해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간 때문에 시계를 보고는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고??’ 하며 화들짝 놀란다.


어쩜 좋아하는 빵도 비슷하게 고르는지 그래서 더 신이 나서 빵도 고르고 커피를 주문한다.
사진을 찍을 만도 한데 사진도 됐다며 커피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마시는 커피는 혼자 마시는 커피와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책모임이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다 보면 속엣말이 술술 풀려나온다. 내가 못났었던 이야기이든 잘 나갔었던 이야기이든 솔직하게 눈을 마주 보고 손짓 몸짓을 하며 온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며 그래서 더욱더 귀하고 고마운 시간이다. 긴 수다에 슬슬 배가 고파온다.


오늘의 메뉴는 그동안 먹어보지 못했던 떡볶이 되시겠다. 떡볶이집까지 걷는데 산산한 바람에 기분이 다 살랑해져 날씨가 도와주는 날이니 입이 귀에 걸린다.
국물 떡볶이와 로제 떡볶이 두 종류를 시키고 유부초밥도 하나를 시킨다.
각자 그릇에 떡볶이를 덜어놓고 먹기 시작하는데 탄성이 절로 난다.

“와~!! 너무 맛있어요~ 로제가 메뉴에 있으면 꼭 시켜 먹어봐야 한다니까요. ㅎㅎ”
“로제는 저도 처음 먹어보는데.. 너무 맛있는데요.. 이 로제 떡볶이 먹으러 또 올 거 같은데요.. 저는 ㅎㅎㅎ.”
“떡에 로제 맛과 간이 잘 배어서 정말 맛있네요. ㅎㅎ”

세 여자가 떡볶이를 먹으며 책 리뷰하듯 한 마디씩 읊어대니 그 맛이 배로 느껴지는 듯하다.
로제 떡볶이를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었으니 다음 순서는 국물 떡볶이~.

“매콤한데요..”
“역시 국물이 개운해요.. 로제 먹고 나서 먹으니 더욱 깔끔한 마무리~ 너무 좋아요.”
“저는 이 떡볶이만 먹으려고 여길 올 때가 있다니까요~ 정말 맛있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국물 떡볶이도 국물까지 모두 사라진 빈 그릇만 남겨놓는다.
거기에 나는 직접 조리한 듯 덜 달아 맛이 좋은 유부 초밥을 먹으며 마지막 환호성을 질렀다.

“ 와~ 너무 배불러요~~!! ㅎㅎㅎㅎ”
“진짜로 배불러요~ ㅎㅎㅎ”
“우리 그럼 이제 좀 걸을까요??”


맛있게 점심을 먹고 배도 부르고 시간도 여유 있기에 천천히 걷기로 한다. 다행히도 근처에 걸어서 10분 이내 야트막한 산이 있으니 그곳으로 향한다. 한창 나뭇잎이 초록을 향하고 있어 그 싱그러움을 느끼며 산속으로 들어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배가 불러 숨이 차오르지만 코끝으로 들어오는 나무향, 흙향, 꽃향기가 정신을 맑게 해 준다. 나무도 보고 나뭇가지 사이 하늘도 보며 잔잔하게 이야기는 또 이어진다.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도 많이 겪고 수없이 좌절을 겪어내지만 그래도 결국엔 스스로 마음을 잘 다스리자고 말하며, 힘들 때에 이런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와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님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시 구절을 떠올리며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게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는 이야기에 모두 공감하며 걷는 길에 마주한 찔레꽃을 사진에 담아본다. 그 순간, 그 시간이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해진다.


숲 속길 걷기를 30~40여분. 배가 부르다고 소리친 지 한 시간도 안 되었지만 그사이 배가 꺼진 느낌에 가볍게 커피 한잔을 더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마도 그냥 헤어지기에는 아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스프레소 한잔씩을 마시고는 각자 집으로 출발한다. 매번 헤어질 때마다 아쉽지만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행복한 미소 가득한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오늘 같은 만남은 예전에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질 때 느꼈던 아쉬움과는 차원이 다름을 안다. 헤어진 후 느껴지는 허전함, 그 몹쓸 쓸쓸함은 나를 너무나 지치게 만들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맑은 웃음과 가식 없는 편안함으로 마음속이 풍성하고 따뜻해짐을 느낀다. 무언가를 지켜내야 한다면 바로 이런 관계를,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왜 나에겐 이런 사람들만 자꾸 꼬이는지 모르겠다며 세상을 원망하던 예전의 나는 이제 잊어내려 한다. 분명 내가 좋은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흔하디 흔한 그 말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온 마음으로 느끼며 꼭꼭 지켜내겠다고,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한다.


집에 도착해 시동은 껐지만 설레임은 멈추지 않고 여전히 ‘몽그르르’ 내 마음속을 흔든다.





내가 무언가를 지켜내며 사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삶은 늘 무언가를 잊는 일들로 가득해서, 사실 무엇 하나 지켜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지켰다고 믿으며,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p140 정지우 작가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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