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당일 여행을 다녀오는 날이다.
당일 여행의 목적은 ‘작은 운동회’. 주최는 3년간 함께해 온 일요일 새벽 책모임에서 회원들과 함께 하기로 한 운동회가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가 시작할 무렵 함께하기 시작한 책모임이므로 그동안 직접 만남 없이 줌으로만 책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왔고, 중간에 잠시 코로나가 잦아들 즈음 서울역에서 모임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리더부부가 직접 회원들을 만나며 책모임을 지금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지만 기차역에 도착할 때까지 다리가 후덜덜 거리는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다리힘 쫘악 빠지는 이야기는 따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기차역에 도착하고 기차는 도착지를 향해 출발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회원들과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은 작은 긴장감과 설렘 그리고 3년여 동안 줌을 통해 나눈 시간들로 인한 편안함까지 두루 갖춘 심정이었다.
대전역에 제일 먼저 도착하니 30여분의 시간이 남아있다. 곧바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사들고 대합실 아무 곳에나 자리 잡고 앉아 책을 펼친다. 어떤 장소에서든 커피 한잔과 책 한 권이면 기다리는 시간은 오히려 꿀맛처럼 달디달아진다.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한 명씩 도착 전화가 온다. 창원분인 열정맘님을 시작으로 서울 쁘띠님, 부산분인 그레이씨님과 9살의 혜린이까지 도착하고 곧바로 리더부부인 흑장미님과 흑기사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춘천에서 차로 이동한 회원인 초심님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에게 반가운 마음과 오늘 운동회 종목인 ‘10킬로 마라톤’에 대해 나름의 걱정과 운동 후 모든 스케줄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리기로 한 전철역도 잘못 내리며 잊지 못할 ‘월평역 해프닝’도 탄생시킨다.
처음 운동회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20킬로 마라톤이었더랬다. 3월에 이미 서울에서 리더부부와 춘천, 서울 회원만으로 한번, 거제에서는 부산과 창원분들과 리더부부가 또 한 번의 10킬로 마라톤 대회를 참여한 경험이 있었고, 모두가 모여 함께 달리기를 하는 기회를 갖고자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되어지던 마라톤은 대회참여가 아닌 그냥 우리끼리 모여 달리기를 하자는 이야기로 바뀌게 되었다. 어른들끼리만 달리면 아마도 20킬로 목표로 달렸을 터인데, 두 회원이 자녀 한 명씩을 데리고 오게 되었고, 그렇다면 아이들이 20킬로를 달리기에는 무리가 되겠다 싶어 10킬로 달리기로 ‘급’ 변경을 한 상황이었다. 미리 운동회 날짜를 투표로 정할 때에만 해도 ‘구름 약간’의 일기예보였는데, 이틀사이로 ‘당일 종일 비내림’으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도중 충북지점을 지날 때 즈음에 기차창밖의 빗물과 비에 흠뻑 젖은 풍경을 보며 짐짓 걱정이 되어 대전지역 날씨를 물어보니 다행히도 비가 오지 않는단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날씨로 하늘은 짙은 회색빛 구름으로 가득한 채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날씨임에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을 한다. ‘ 달리기에 적당한 날이다’, ‘뜨거운 볕이 있다면 달리기 어려울 텐데 다행이다.’,’선선하니 달리기 딱 좋다.’ 등등 모두들 긍정적인 마음 가득하다.
총 여덟 명이 모여 달리기 시작 전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르신이 지나가면서 묻는다.
“언제 어디서 하는 거예요??”
“아니 그냥 저희끼리 함께 운동하는 겁니다.”
“아주 보기가 좋네요. 무척 보기가 좋아.”
“감사합니다.”
모두들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있으니 좋아 보였던가 보다.
기분 좋은 어르신의 칭찬을 들으며 달리기 하기에 좋은 ‘유성천’으로 걸어내려갔다.
요즘은 어느 동네나 개천이 흐르는 곳은 달리고 걷기에 딱 좋은 공원을 만들어놓곤 하는데 이곳 대전에도 유성구청 바로 옆으로 조성되어 있는 공원이 있었다.
이제 곧 달리기를 시작한다. 기본 운동 후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
마라톤 시합이 아닌 회원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주변도 둘러보며 달렸다. 왼쪽에 펼쳐진 들꽃들과 오른쪽으로는 강물을 품고 달리니 발걸음이야 무거울지언정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는 듯했다. 달리는 내내 달리기를 잘하는 회원 두 분 중 한 분인 흑기사님이 함께 달려주었다. 달리는 요령을 알려주며 함께 달려주는 분이 있으니 힘이 되었으며 평소 아침마다 2~3킬로씩 달리기 연습 겸 운동을 하는 노하우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참 5킬로 반환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3킬로 지점을 조금 넘을 때부터 빗방울이 ‘툭툭, 두둑’ 하며 땅에 떨어지며 머리에도 몸에도 빗방울 닿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멈춰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며 500여 미터를 더 달렸을 때, 함께 달리던 흑기사님이 그만 멈추기로 했다. 어른들만 달리는 것이라면 비 맞으며 달려도 괜찮다고 하겠지만 어린 혜린이가 자칫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겠기에 빠른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멈춰 서서 뒤이어 따라오는 흑장미님과 열정맘님 그리고 초심님을 기다렸다가 3.5킬로 지점에서 반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며 마음이 바빠졌지만 이미 달려온 3.5킬로를 단숨에 제자리로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레이씨님과 혜린이 그리고 쁘띠님이 제일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기에 초심님이 전화를 해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갈 것을 알리고 모두 서둘러 오던 길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되돌아 달리는 동안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목표한 거리만큼 달리지 못했지만, 비를 맞으며 되돌아가고 있었지만 모두의 얼굴은 즐거움과 행복함으로 너무나도 밝은 표정들이었다.
“비 덕분에 7킬로만 달렸네.. 3킬로를 벌었어 ㅎㅎㅎ.”
“이만큼이라도 달린 게 어디예요 ㅎㅎㅎ.”
“아~ 비만 아니면 10킬로 뛰는 건데~!! ㅋㅋㅋ.”
“그럼 혼자 다녀오실래요??”
“아니 괜찮아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뭐… ㅎㅎㅎ.”
“우리 식사 예약시간이 좀 남았는데 공원을 조금 더 걸을까요?”
“네네 그럴까요?”
“아 그래요 너무 좋겠는데요.”
점심식사를 가기 전까지 유성천 주변 작은 공원을 걸을 때엔 비도 잦아든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주어 날씨로 고생하지도 않아 좋았다. ‘좋았다, 좋다’라는 말이 아닌 무엇으로 그 기분을 표현할 수 있을까. 잠시 쏟아진 비로 옷은 젖어있었지만 마음속 한편에 더욱더 견고해지는 믿음의 바람이 스며들었다.
곧바로 식당으로 움직이기 위해 주차장에 도착해서 작은 정자에 모여 준비한 음료를 마시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며 제대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얼마나 기가 막힌 타이밍인지 모르겠다며 모두의 웃음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