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앱에 목표는 7.5킬로를 등록했다. 마음은 10킬로 달리는 거지만 목표보다 좀 더 달리면 마음에 만족도가 더 높을 것 같다. 아침 8시 출발, 10시 집도착을 목표로 현관문을 나섰다. 집에서 2킬로가 조금 넘는 곳에 달리기에 딱 좋은 곳인 안양천을 향해 워밍업 겸 걷다 뛰 다를 반복하며 갔다. 일요일 오전, 다행히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다.
초록색 나무들과 파아란 하늘은 나를 반겨주는 듯하다. 뛰기에 좋게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달리기 앱 시작 버튼을 누르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목표는 출발지점에서 2.5킬로를 달려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그리고 반대방향으로 2.5킬로를 달려갔다가 원점으로 돌아올 마음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한참을 달렸다고 생각하고 거리를 보니 이제 겨우 1킬로를 달렸단다. 이런.. 생각보다 2.5킬로는 멀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달리면서 목표를 수정했다. 자꾸 거리를 확인하며 뛰다 보니 달려야 할 거리가 너무 많이 남아있는 듯이 느껴졌다. 매일 아침 2~3킬로 달리며 거리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던 습관이 달리는 내 다리를 붙잡는 듯 느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거리확인을 하지 않고 그냥 달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얼마 전 책모임에서 10킬로 달리기를 함께 하는 분이 알려준 팁이었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조금 천천히 뛰더라도 멈추지 않고 5킬로 이상을 달려야 해요. 몸이 그걸 기억하도록 해주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뛰어주고 나서 대회에 출전하면 많은 사람들과 달리는 환경에 들어가면 몸이 알아서 속도를 더 내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평소에 천천히 오래 달리는 연습을 해주세요.”
달리는 내내 이 이야기를 머릿속에 되새기며 내가 달릴 수 있겠다 싶을 때까지 멈추지 말자 다짐하며 달렸다. 속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달리다 보니 오히려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에는 안양천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들꽃들과 나무들이 서로서로 자기 자리에서 그들의 생명력을 눈부시게 발산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푸른 하늘과 가끔씩 보이는 구름들도 모두 제 할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들을 느끼며 달리기로 한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도 그 자리에서 내 몫을 다해 달리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달려 더 이상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에 보이는 다리까지만 달리자며 마지막 힘을 냈다. 멈추고 거리를 확인하니 총 달린 거리는 4.6킬로였다. 처음으로 혼자 달려본 거리가 이 정도라니 스스로가 대견스러웠고, 자신감이 생기며 앞으로 조금씩 거리를 늘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오기 위해 멈춘 광명의 어느 교각 아래. 그곳에서 활짝 피어난 들꽃을 보았다. 목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들꽃을 사진에 담았다. 너무나 예쁘고 제 몫을 다하는 꽃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잘했다고, 지금처럼 달리면 된다고,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잘 달려왔지 않았느냐고, 그러니 앞으로 10킬로, 20킬로도 같은 맘으로 달리면 된다고 말이다.
안양천을 바라보았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가늘디 가는 물길은 흘러 흘러 강으로 갈 것이다.
그들이 가려는 곳이 강이지만 그곳에까지 다다르지 않는다 한들 물길이 아닌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그 물길이 멈추려 하지도 않을 것임을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삶도 목표한 방향을 향해 걷고, 가끔은 달리고 또 어느 날은 잠시 멈추는 듯도 하겠지만 결코 완전히 멈춰 서지는 않을 것임을, 강물처럼 살아가보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주는 시간이었다.
물가에 수많은 생명들을 바라보며 어느 날엔가 다시 만나러 올 것을 약속하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3~4분 남짓 쉬고 다시 달리는데 몸도 마음도 다리도 가벼웠다. 달려야만 하는 이유를, 되돌아가기 위해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 놓으니 머릿속엔 그저 달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 딴생각이 자리 잡을 틈이 없었다. 순간 아 그래 이렇게 내가 해야만 하는 이유 그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뒤도 돌아볼 필요 없이 그저 가기로 한 방향을 향해 몸도 마음도 다리마저도 가볍게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구나. 이래서 자꾸 달리기를 하고 싶었구나.’ 요즘 도대체 왜 자꾸 달리기에 집착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 요즘이었다. 계속 달리고 달려도 맘에 차지 않고 못마땅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싶었다. 달리기를 통해 얻고 싶은 게 있었던 것이었나 보다. 매일 뛰겠다 마음만 먹고 2킬로, 3킬로만 달리고 말아 버리면서 모든 게 마뜩잖았던 내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글이 쓰고 싶은데, 책도 읽고 싶은데, 맘이 시끄러워 멈칫거리고 있던 내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냥 글 쓰는 환경 속으로 들어가 버리라고, 누굴 위해서도 아닌 내 자신을 위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해 보라고 말이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하기로 했던 일들을 천천히 달리기 하듯 거리 재느라 주춤거리지 말고, 보채지도 말고 달려보기로 단단히 마음먹는다. 그리고는 자꾸 주춤거리던 내 자신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