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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Jul 16. 2023

사랑이 담긴 보양식 한 그릇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도


대단한 글을 써내겠다는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도 체력도 없다며 하루를 미루고 다시 이틀, 사흘이 그냥 지나갔다. 자꾸 멈칫하는 나를 두고 조금씩 좌절하는 마음도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시간은 이게 아닌데 왜 이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얀 백지 위에 무엇을 써 내려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책상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얹어보지만 멍한 시간 앞에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나의 시간인데 모두가 들여다보고 있는 투명하게 드러난 자리 같아 버거웠다. 어서 뭐라도 쓰라며 스스로를 들볶지만 마음속은 복잡하고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으니 무척 난감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벌여 놓아 그런 건지도 모른다고 잠시를 자책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시작되어 있어 멈출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냥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일주일간 책만 읽었다. 쓸 수 없다면, 쓰기로 했지만 첫 글자도 시작하지 못했다면 그냥 이전처럼 읽기라도 하자며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타 다다닥 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 보양식으로 가장 좋은 음식은 삼계탕이다. 닭요리는 뭐라도 상관없이 모두 다 좋아하지만 한 여름 땀을 흘리며 먹는 삼계탕은  흘리는 땀마저도 건강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주 먹는 편이다. 거기에 ‘복날’이 다가오면 당연히 닭요리를 먹어줘야만 이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올해 초복인 7월 11일엔 회사 지하식당에서 간단하게 닭곰탕을 먹었더랬다. 그리고 21일 중복인데 우리 집 냉장고엔 복날 끓여 먹으라고 동생이 보내준 선물보따리가 있다. 바로 ‘해신탕’이다. 평일에는 끓여 먹기 쉽지 않아 이번 주말에 끓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그 ‘해신탕’ 재료를 꺼내어 닭부터 손질을 하고 마늘과 대추 은행, 인삼 그리고 여러 가지 한방재료가 들어있는 티백을 모두 압력솥에 넣고 가스레인지를 점화하고 나머지 재료들을 꺼내어 손질해 놓는다.



삼계탕은 그동안 숫자를 세어보지 못할 만큼 끓여 먹고 사 먹어 봤지만 ‘해신탕’은 처음이었다. 처음 끓여 먹으려니 어떻게 끓여야 하는지 궁금했다. 당연히 이런 순간엔 검색이 답, 검색해 보니 닭을 끓이는 동안  손질을 해놓고 닭이 다 끓으면 닭을 건져내고 그 육수에 전복부터 넣고 낙지와 새우를 넣어주어 5분여를 끓이라고 알려준다. 닭을 끓여 김을 모두 빼고 꺼내려면 20여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재료를  모두 손질해  냉장고에 다시 넣어놓고 잠시 앉아 읽고 있던 책을 펼친다. 이렇게 잠시 짬을 내어 읽는 책은 그 읽는 맛이 남다르기에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



요즘은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하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던 27년 된 압력솥 압력추는 전기밥솥 그것보다 거침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거침없이 움직이는 소리와 닭이 익어가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니 반갑기도 하고 예전이 그립기도 하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주말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다녀오는 딸이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준비하며 음식 준비가 다 되어갈 즈음 딸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곧 도착한다고 한다.

서둘러 닭을 끓인 육수를 옮겨 담고 대파를 잔뜩 썰어 넣고 전복부터 넣기 시작한다. 그리고 낙지와 새우 그리고 함께 포장되어 있던 조개도 넣어 끓여준다. 해산물은 오래 끓일 필요가 없으니 익는 순서대로 꺼내어 놓고 먹기 좋게 잘라 그릇에 옮겨놓고 나니 딸아이가 도착했고 이제 먹을 준비가 완료되었다.



귀한 재료가 많이 들어간 만큼 그 맛은 일품이었다. 보내준 동생의 마음도 함께 느껴져 그 맛이 배로 느껴졌다. 딸도 진한 국물에 가득한 영양가 덕분에 피로도 풀리고 힘도 얻었다며 이모에게 인사를 보냈다. 나는 한동안 더운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여러 날들, 기력보충을 해야 하나 걱정했던 시간들 모두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은 맛있는 한 끼 덕분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사는 게 참 별거 없는데 자꾸 끙끙 거리며 생각정리를 못하고는 머뭇거린다. 그동안 조금은 지쳤을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으니 이제 예전처럼 쓰다 보면 다시 ‘나’를 만나게 되겠지 하며 여유를 가져본다. 지치면 이렇게 쉬어가고 또 사랑이 담긴 보양식 한 그릇에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하며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글을 썼던 사람, 쓰는 사람, 앞으로 쓸 사람 모두 걱정하고 고민한다. 계획처럼 안 될 때 좌절하고,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막막해서 좌절하고, 글자 하나 눈에 안 들어오는 날 좌절한다. 근데 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안 써질 때는 안 쓰는 수밖에. p266

마감을 앞둔 원고는 아주 잠시 미루기로 한다. ‘나’라는 주어에 힘을 빼기 위해서. p267

- 홍승은 작가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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