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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Jul 03. 2023

니네 집 계란장사 하냐?

옛날 도시락 먹고 싶네


“야 니네 집 혹시 계란장사하냐?”
“아니, 아닌데.. 그런데 그건 왜 물어?”
“아니었어? 난 또.. 니 도시락에 매일 계란만 올려져 있길래, 계란장사하는 줄 알았지.”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니 급한 마음에 분주한 손길로 도시락들을 책상 위로 꺼내어 펼치면서도 굳이 내 도시락을 쳐다보며 물어봤던 걸로 기억되는 장면이다. 그랬다. 그 친구의 말처럼 벌써 며칠째 인지 모르게 도시락 뚜껑을 열면 보란 듯이 계란프라이가 있었다.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계란프라이가 특별한 맛이 있을 것도 아닌 데다 다른 친구의 반찬도 같이 나눠 먹고 해야 하는데 내 도시락엔 마땅하게 먹을 만한 반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땐 계란만 따로 파는 가게가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차라리 친구의 말처럼 진짜 ‘계란장사’를 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계란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을 테니 참 좋겠다는 생각했었던 것도 같다.


그런 기분으로 점심시간 내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엄마가 왜 매일 계란프라이를 밥에 올려주는지 알고 있었고, 그 계란은 내가 심부름을 가서 사 왔던 계란이었으며, 내일도 엄마는 똑같은 도시락을 싸거나 변변치 않은 도시락을 싸줄 것을 알기에 오히려 더 속상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날은 도시락을 떠올리면 항상 기억나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로도 내 도시락 반찬이 딱히 좋아질리는 없었고, 김치국물이 새서 냄새가 나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좋지 않은 반찬 때문에 같이 점심 먹는 친구들 눈치를 살펴야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래도 운동회를 한다거나 소풍을 갈 때에 싸가는 도시락은 친구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다. 엄마가 싸주는 김밥은 정말 맛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재료를 넣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김밥을 조금만 더 싸 달라고 졸라댔고, 친구들과 함께 먹으려고 꺼내놓으면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근 어깨 힘이 들어가기도 했더랬다. 소풍도시락으로 김밥을 싸면 맛으로만 승부를 봐도 되기 때문에 평소 도시락 반찬으로 주눅 들어 있던 나에게 까만 김이 옹기종기 모인 재료들을 감싸주듯이 김밥이 다가와 내 마음을 감싸 안아 위로해 주는 것 만 같았다.


이런 추억이 담긴 도시락을 만났던 날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일반 식당 메뉴판에서 적혀 있던 '옛날 도시락'을 보며 무척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맛일지 궁금해 주문을 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뚜껑을 여니 ‘계란장사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며 겉으로 표현은 못하고 밥 먹으며 맘속으로만 입을 삐죽거렸던 그 도시락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직사각형 양은 도시락에 지져놓은 김치와 볶음 멸치가 한쪽에 조금씩 놓여있고 밥 위에는 계란프라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리고 맛있기도 했고 서럽기도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집에서 똑같은 메뉴를 차려놓고 먹는다고 해도 '양은 도시락'에 담기지 않으면 그 맛이 나지 않는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양은 도시락이 아닌 어린 시절 학교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눠먹던 그 시간들이 전해주는 맛이 따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만간 계란프라이를 얹은 옛날도시락을 파는 곳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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