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이 울린다. “출근 잘하고 있어?” “응 지금 지하철 갈아탔어. 너는 어디야?” 동갑내기 친구 J 에게서 연락이 온다. J는 매일 이렇게 하루에도 몇 차례 씩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봉사활동을 통해 알게 된 친구 J. 그와의 처음 만남은 봉사현장에서였다. 내가 봉사활동 총무를 보고 있었고 J는 회원들 중에서도 무척 친절하고 봉사현장에서도 솔선수범하던 꽤나 인상 깊은 친구였다.
그러던 중 지역만남이 있었고, 성격상 둘 다 만나는 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었지만 이야기는 편안하고 어색함이 없었다. 평소 총무일을 보던 나의 모습을 보며 호감이 있었고 궁금하기도 했다며 반가워하는 J와 수다시간을 보냈다. 온 우주가 돕기라도 한 듯 함께 만나기로 한 두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을 갖으며 나와 티키타카가 이렇게 잘 맞는 친구가 있다니 반갑기도 했다. 그날 난 속으로 ‘이런 우연도 있네. 이 친구하고 인연인가.’ 하며 혼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나눌수록 사람이 참 진국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년 전쯤 아내가 투병생활을 하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는 바람에 맘고생도 많이 했고, 아이 둘을 어머니와 함께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내가 없다는 말에 우선은 덜 부담스러웠고, 오히려 더 진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늘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을까?” J는 무척 달가워하는 말투였다. 나 역시 “그러게 말이야. 약속 못 지킨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는걸.” 하며 맞장구를 쳤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한 달에 한 번 지역 장애우들을 돌보는 곳으로 찾아가 대청소를 하고 점심식사를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했지만 마치고 돌아 나오는 모두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함으로 숙연해지며 오히려 큰 마음을 얻는 시간들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나는 귀한 인연까지 얻게 되었다. 꼭 J를 만나기 위한 시간이었던 것처럼.
차분하고 진중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J가 참 고마웠다. 서두르지 않고 내 상황에 맞춰주어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았다. J는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용기 있다고 말했다. 나의 고단함과 애씀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고맙고 든든했다. J와 어떤 대화를 나눴었는지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대화를 나누던 분위기와 J의 눈빛만은 잊히지 않는다. 늘 나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귀담아듣고 기억하는 세심함과 모든 일에 있어서 내 의사를 먼저 묻는 모습에서 내가 존중받는다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정에 어색하기도 했다.
함께 걸을 때에도 내 걸음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춰 걸었고, 나의 존재 자체로 자신의 삶의 활력이 된다며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으면 그 작은 눈이 더 작아지며 스마일 눈이 되곤 했다. 만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퇴근길, 쑥스러워하며 내 손을 잡지도 못하고 긴장한 듯 땀이 흥건한 손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을 본 난 무척 설레었고 그가 사랑스러웠다. 그런 순수한 모습이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던 것 같다. 솔직하고 진실해 보였고 괜한 센 척도 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늘 아쉽고 부족한 데이트는 긴 출퇴근 시간으로 대신했다. 총 세 시간을 함께 할 때 우리는 비좁은 지하철 덕분에 충분히 달달했고 특별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주 가까운 곳으로 달리며 내게 힐링의 시간을 주기도 했다. 우리의 수다는 잠시도 쉬지 않았고 참 잘 맞았다. 정치성향이며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삶을 마주하는 가치관까지 이렇게 잘 맞기 쉽지 않는다며, 나와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나눠도 절대 지루하지 않다며, 시간 가는 줄 몰라 너무나 행복하다며, 빙구미한 미소로 눈빛을 반짝이던 J가 나는 너무 좋았다. 함께 보내는 휴일 하루가 너무나 짧았다. 짧지만 진하게 서로에게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만날 여유가 없을 거라 생각했을 때에,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나에게 사랑이 올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J덕분에 나는 살아가는데 큰 용기와 사랑의 힘을 얻으며 지냈다. 가끔 너무 행복한 순간에는 아이들이 떠올라 미안하기도 했고, 이렇게 좋은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면 재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현실의 벽이 높아 쉽게 생각할 수도 없었고, 아이들을 두고 내가 이렇게 행복함에 젖어들어도 되나, 재혼을 생각해도 되나 하며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기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도 J가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좋은 아빠가 되어줄 수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함께 살게 되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섣불리 말할 수 없었고, J에게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선뜻 묻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J덕분에 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으며, 계속 사랑받고 싶다고, 엄마이지만 여자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지낸 나는 더 씩씩해졌고 덕분에 아이들에게도 더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나를 보며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며 J와 함께 했다.
우리는 3년 정도 뜨겁게 연애를 했다. J는 여전히 내겐 큰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으로 남아있다. 헤어져야만 했던 수많은 이유들이 두 사람사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멀어졌고 결국 헤어졌지만, 결코 그때의 사랑은 잊을 수가 없다. 모든 면에서 나를 그렇게 존중해 준 사람은 그 이후로는 없었다. 나를 사랑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상한선을 알게 해주었는데 그때는 그 가치를 몰랐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무척이나 사랑받았던 그때의 나와 이제는 스스로를 무척 사랑하게 된 지금의 내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