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무 글 대잔치

by 선우

나는 가난한가?

‘가난’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니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그 시절은 학교에 육성회비를 납부해야 했다. 가난했으니 단 한 번도 제때 내본 적이 없었고, 칠판 오른쪽 아래쪽에 육성회비 안내 사람 명단에 내 이름 석자가 적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엄마는 늘 돈에 쪼들리는 삶을 살았고, 그런 삶에 대한 푸념으로 우리의 가난은 더욱 명징하게 마음과 몸에 새겨졌다.
친구들의 집을 다니다 보니 ‘가난’과 ‘부자’의 차이가 넓은 집이나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처럼 물질적인 것보다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아껴주며 사랑해 주는 엄마의 미소에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엔 그 모든 것이 없었다. 좁디 좁은 집에서 인상 쓰고 자주 화를 내고 욕을 하며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표정으로 불안함만 가득한 집. 그래서 ‘가난’이 싫었다. 친구들과 나의 차이가 그저 ‘가난’ 한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의 차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 그 어느 날부터 엄마가 미웠다. 모든 친구들이 나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비슷하게 가난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다가도 무언가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더더욱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질적인 가난보다 마음의 가난이 더 심각했던 엄마와의 생활은 자라나는 내 마음에 자주 생채기를 냈고, 여기 저기 흉터를 남겼다.


그렇게 나는 ‘가난’한 집을 일찍 떠났다. 그 정도로 가난하게 살진 않으리라는 기대로 시작한 결혼생활은 내 경험 그 안에서 그저 조금 덜 ‘가난’한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자란 환경처럼 마음이 가난하면 안 된다는 강박 아닌 강박에 딱 엄마처럼만 안 하면 된다는 나만의 기준으로 열심히 꾸려갔다. 하지만 삶은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왜 돈이 없으면 인상을 쓰게 되고 자주 화를 내게 되는지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조금은 알 듯했다.
가난하지 않을거라 믿고 있던 남편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었다. 가족을 아껴주지도, 미소로 품어주지도 않는 메마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게 된다. 별 다르지 않으니 가정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고, 어려운 과정들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일테니 말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 호되게 야단을 맞고 많은 것을 배우며 맘속엔 여전히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라는 말을 되뇌며 ‘가난’과의 사투를 벌였다. 통장에 잔고가 0원 되었고, 결국 개인파산을 확정받고, 여기가 바닥인지 아니면 더 내려갈 곳이 있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바닥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나와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는 내가 무수히 부딪히고 싸우던 그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개인파산으로 집에 처박혀 나 자신에 대한 부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두려워하던 내게 다가온 책 한 권.

그 책을 시작으로 책들과 함께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독하게 읽고 또 읽었다.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문장을 마주한 순간, 내가 걸어온 삶이 그대로 투영되며 사는 대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후로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넓은 집,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과 사랑과 미소가 가득한 엄마가 있는 그런 집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누릴 수 있을 만큼의 크기의 집, 적당한 가구,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 그리고 사랑을 품고 미소가 가득한 내가 무척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나는 가난한가? 아니, 나는 가난하지 않다.




요즘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아무말이라도 자꾸 쓰고 지우기를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시작.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지 않게 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