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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올뺌씨 Apr 13. 2022

작고 아담한데 마귀같은 공중전화기

무계획 무대책 도쿄여행기 3

기대했던 상상 속 로맨스는 허무하게 사라지고 정말 조용하게 두 시간의 비행 끝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 작고 아담했다.


이때는 모르고 있었지만, 김포, 나리타 공항을 이용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리타 공항은 우리나라의 인천 공항처럼 시내와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

예약해놓은 민박집에 도착했음을 알리고 어떻게 찾아가면 좋은지 물어야 했기에 공항 근처에서 공중전화를 찾았다.


일본은 뭐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많다고 하던데, 공중전화까지 아담하고 둥글둥글한 게 내가 외국에 왔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10엔 50엔짜리 동전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당장 가진 게 100엔짜리 동전들밖에 없어서 급한 대로 100엔짜리 

동전을 넣고 한인 민박으로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거리는 벨 울리는 소리가 지나고 나서 사람 목소리가 나왔는데,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이것이 뭣이여?


왜 한인 민박인데 일본어로 솰라솰라 하는 것인가?


계속 듣다 보니 자동응답 메시지였다.


우리나라도 그런 거 있잖는가, 삐~ 소리가 울리면 요금이 부과되오니 뭐 이런 거……


대충 듣다 보니 이런 내용일 것이라고 추측이 들어서 삐~ 소리가 들리기 전에 전화를 종료하려 했는데 한발 

늦었는지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10엔이 사라졌다.


남은 잔액을 표시해주는 공중전화기 화면에는 잔액이 90엔으로 바뀌어있었다.


10엔이면 이때의 환율로는 우리나라 돈으로 거진 150원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이미 사라진 150원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다시 전화해야지 하고 수화기를 내렸다 다시 올렸다.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려는 정말 단순한 행동이었다.


또다시 ‘철커덩~’ 거리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화면에 남은 잔액이라고 표시되던 90엔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


뭐지?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수화기를 내렸다 드는 그 1초라는 짧디짧은 순간에 내 황금 같은 90엔 (1,300원가량)의 돈을 꿀꺽 한 것인가?


아까까지 귀엽고 아기자기해 보였던 동글동글한 공중전화기는 사악한 본색을 드러낸 마귀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마치 동화속 귀여운 토토로의 모습이 저렇게 바뀌어 버린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어쩌겠는가, 무지는 죄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미리 프린트해놓은 약도를 들고 밤늦게나마 신오쿠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차분히 다음날 어디를 돌아다닐지 가이드북을 체크하기 시작했는데. 일본 여행시 알아야 할 주의 사항에 적힌 글이 마치 클로즈업 되듯이 눈으로 파고들었다.


- 일본의 공중전화기는 잔액을 거슬러주지 않으니 항상 10엔 동전을 가지고 다닐 것! -


- 일본의 공중전화기는 잔액을 거슬러주지 않으니 항상 10엔 동전을 가지고 다닐 것! -


일본의 공중전화기는 잔액을 거슬러주지 않으니 항상 10엔 동전을 가지고 다닐 것! -

......

...

.


아~,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이때 몸으로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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