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을 사 볼까?

by 엘 리브로

거실창 밖으로 멀리 놀이터가 보인다. 놀이터 옆의 공터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서로 뒤엉켜 물결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초점을 모아 집중해서 봤다. 시력이 점점 더 나빠져서 멀리 있는 것이 흐릿하게 보인다. 분명 사람들이 모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뭐지 저게? 나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부리나케 현관의 슬리퍼에 발을 집어넣으며 동시에 현관문을 열었다.

날듯이 계단을 뛰어내려 가 단숨에 놀이터까지 갔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무리 한가운데에 커다란 상자들이 놓여 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달려들어 무언가를 가져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에서 주민들에게 공짜로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뭔가 하고 봤더니 꼬막이며 바지락이나 키조개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어? 왜 난 방송을 듣지 못했지? 아깝다, 알았으면 담아갈 것을 가져오는 건데...'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대로 몇 개라도 집어보려고 했으나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빈 박스들만 어지럽혀져 있었다. 사람들은 망태기 같은 것에 조개들을 잔뜩 담아가거나 장바구니 같은 것에 담아서 들고 가거나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이 집으로 들어오는데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방송 상태가 안 좋아서 뭐라고 하는지 잘 못 알아들었으나 뭔가를 가져가라는 얘기였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우르르 아까의 놀이터 옆 장소로 달려 나가는 것이 거실창으로 보이자 나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이번에는 대중목욕탕의 온탕만큼이나 커다란 수족관이 있었고 커다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것은 스테인리스 양푼이었다. '아니, 이렇게 작은 걸 들고 나오다니...' 속으로 투덜거리며 뭐라도 건져보려고 물속에 양푼을 담갔다. 수족관의 물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팔닥거리며 요리조리 사람들의 손을 피해 다녔다.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다. 내가 양푼으로 커다란 물고기를 건져 올리려는 그 순간 시커먼 해초가 손에 감겨 따라 올라왔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내 왼 손에 딱 들러붙어서 손가락들을 조이면서 살갗을 파고들었다.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물속에 양푼을 떨어뜨리고 그 해초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간신히 그 징그럽고 끈적거리는 검은 해초를 떼어내 물속에 던져버리는 동안 나의 양푼은 어디로 휩쓸려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 많던 물고기도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너무나 속이 상했다. 공짜로 물고기를 얻기는커녕 멀쩡한 그릇만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어디에 갔다 온 건지 갑자기 나타난 딸아이에게 양푼 그릇을 함께 찾자고 말하며 돌아서자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빈 공터의 흙바닥이다. 그 수족관은 언제 치워져 버린 것이지?

그때 갑자기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을 할 때 나오는 "딩동댕" 하는 알림음이 울려 퍼진다.

계속 반복되는 딩동댕 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점점 더 선명해지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


휴대폰의 알람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불 위를 더듬어 휴대폰을 찾아 버튼을 누르고는 몸을 돌려 누웠다.

기분이 정말 나빴다. 파도처럼 넘실대던 수족관의 짙푸른 물결과 팔뚝만 한 물고기들의 팔딱거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살갗을 파고들던 검은 해초의 끈적이는 감촉도, 양푼에 가득 담겼던 물과 물고기의 묵직함도, 갑자기 텅 비어버린 황량한 놀이터의 공허함도...

늦잠을 자면 늘 이렇듯 선명하면서도 기분 나쁜 꿈을 꾸며 잠에서 깬다.


전날밤 늦도록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다 늦게 잠들어 일어나기 힘들었으나 새벽에 일어나 전기밥솥의 스위치를 누르고 강아지의 소변판을 비우고 다시 잠깐 잠을 잤다. 밥이 다 되었다는 밥솥의 알림음에 몸을 일으켜 비틀비틀 주방으로 걸어가 새로 지은 찰밥을 그릇에 담고 멸치와 도시락 김과 갓김치를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

"나 잠이 너무 부족해. 오늘 출근 안 하니까 다시 잘게. 밥 먹고 가고 나갈 때 식탁에 불 꺼줘~"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고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유튜브의 동영상을 틀고 잠을 청했었다.

알람 소리에 잠이 깨었지만 어질어질하고도 묵지근한 머리와 나른한 몸, 꿈과 연결된 불쾌한 기분 등이 뒤엉켜 영 개운하지가 않다. 이래서 자리에 오래 누워있는 것이 싫다.

우유를 데워 가루 커피를 타서 저으면서 생각해 봤다. 물꿈이 좋다고 했는데... 파도처럼 넘실대는 물속에 팔을 집어넣었던 감촉이 생생했는데 길몽일까? 로또 복권을 사볼까? 아님, 연금 복권을?아니다, 언제 꿈 덕을 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관두자.


흔히 사람들은 돼지꿈이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일생동안 꿈속에 돼지가 등장한 것이 두어 번쯤 있었으나 난 그 돼지들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정신없었다. 강아지라면 백 번이라도 끌어안았을 나지만 째진 눈으로 째려보며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멧돼지의 송곳니가 무서워 걸음아 나 살려라 냅다 뛰기 바빴다.

아무리 돼지꿈이 좋다고 한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는 그 상황 속에서 두 팔 벌려 "내게 오라!"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개를 끌어안아 봤자 개꿈일 뿐이다. 물론 개꿈의 '개'가 멍멍이 '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개 꿈은 '개꿈'이 될 수밖에 없고 돼지 꿈도 다 '돼지꿈'은 아니듯 물속에서 팔팔 날뛰는 대어를 봤어도 놓치고 말았으니 복권은 물 건너간 것이 아닐까?

사실 복권 당첨 운 같은 것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자리 좋다는 복권상점이 너무 멀어서 갈 일이 까마득하니 개꿈이라고 생각해야지. 내 복에 무슨...


아침엔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잠이라도 맛나게 자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면 피로 회복과 뇌의 휴식을 위해 아침잠을 자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와는 먼 얘기일 뿐이다.


그나저나, 미련이 조금(아주 쪼끔) 남는걸...

좋은 꿈도 소문내면 좋은 기운 다 날아가버린다는데...

흠... 저게 좋은 꿈 맞나?

혹시 모르니 꿈 얘기 하기 전에 로또 한 번 사볼까?(는 무슨!)


에라, 모르겠다.

그냥 글 발행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