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아,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우리 동네 흰둥이 11
떠돌이 생활이 나은가, 한평생 묶여서 지내는 것이 더 나은가...
동네에서 가끔 배회하고 있는 개들과 공장의 한 귀퉁이에 묶여있는 개들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견생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지만 꼭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질문이다. 애초에 떠돌기만 해온 삶과 사람으로부터 밥을 얻어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묶여서 살아온 삶이 있다면 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익숙해져 있을 뿐, 자유냐 빵이냐를 논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인 나의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한다 한들 무엇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일지 어찌 알겠는가.
올해 초부터 시작해서 봄과 여름이 지나고 추석 연휴 전까지 정을 주고 돌보았던 흰둥이에게 내가 해 온 일들이 과연 흰둥이의 견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린 왕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우가 말한 기다림보다 더한 기다림, 언제 찾아올지 미리 알고 기다리는 한 시간 전부터의 설렘이 아닌, 하루 종일 아니면 때로는 이틀이나 사흘 동안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그리움과 갈망을 떠안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의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고 내 차의 엔진 소리를 기억하도록 길들여진 것이 흰둥이에게 행복감보다는 실망감을 훨씬 더 많이 안겨주었을 것이라는 자책도 해봤다. 그것도 역시 인간인 나의 복잡한 생각일 뿐일 거라고,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고, 번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남의 개들에게 관심을 갖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러나 며칠 못 가서 다시 나의 발걸음은 흰둥이를 향하고 빼꼼이를 찾아가 보고 룰루와 랄라, 그리고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길목에 버티고 앉아 있는 털보까지 들여다보곤 했다.
9월 셋째 주의 어느 날 밤, 평소처럼 퇴근 후 몇 마리의 백구들을 챙겨주고 집에 들어온 남편은 흰둥이 발에서 피가 난다고 했다.
"갑자기? 왜? 발톱 다친 거야?"
"그런가 봐, 피가 묻어 있더라고..."
"일요일에 나랑 같이 봤을 때는 괜찮았잖아?"
"그랬지. 어제도 멀쩡했어."
"발톱이 빠졌나? 하긴 정기적으로 잘라주는 것도 아니고 산책 다니면서 닳는 것도 아니니 많이 자라서 부러질 수도 있겠네."
그다음 날 밤에도 남편은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지금도 피가 나고 있는 것 같은데... 시멘트 바닥에 여기저기 피가 많이 묻어있더라고."
"밝을 때 가서 자세히 봐야겠다. 지금 캄캄하고 비도 오기 시작하니까..."
며칠 동안 비가 오락가락했고 폭우처럼 쏟아지기도 했다. 주말에도 바쁜 일정 때문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다가 처음 피가 난다고 들었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남편과 나는 흰둥이를 보러 갔다. 평소엔 우리가 오는 기척에 흥분해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부터 쇠줄이 기둥에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꼬리를 흔들며 점프를 해댄다. 그런 흰둥이가 우리가 코앞에 다가가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오른쪽 뒷발을 땅에 딛지 못하고 세 발로 힘없이 절룩거리며 우리의 주변을 맴돌았다.
흰둥이의 뒷발을 확인한 나는 끔찍한 상처를 보자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가지런히 붙어있어야 할 발가락들 중 새끼발가락 바로 옆에 있는 발가락의 마디가 잘려나간 듯 짧아져 3분의 1 정도만 남아있고 발가락 뼈를 덮고 있어야 할 피부가 찢겨서 온전히 뼈가 노출되어 있었다. 바로 옆 발가락들을 덮고 있는 털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세상에 얼마나 아플까... 이 지경인데 며칠 전에 보고도 이 상태로 놔뒀다고?"
마치 남편에게 그 상처의 책임이라도 있는 듯이 나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아니,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어. 발가락에서 피가 좀 난다 싶었지..."
"아! 그날 바로 다시 확인하러 와봤어야 했어.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다쳤을까? 딱 발가락 한 개만..."
"여기 차들이 드나들면서 바퀴에 다쳤겠지, 아니면 오토바이나..."
"그게 말이 돼? 차나 오토바이면 발 전체가 아작이 났지 어떻게 딱 발가락 한 개만 떨어져 나갈 수 있겠어?"
남편의 답답함이 흰둥이 발가락 부상의 이유라도 되는 듯이 나는 화가 치밀었다.
공장 주인인지 개의 주인인지, 아니 누구든지 개의 밥을 주는 사람이 상처를 봤을 것이 아닌가! 온 바닥에 핏자국이 있고 다리를 땅에 딛지도 못하고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크게 벌어져 있는데 , 눈이 있다면 못 봤을 리가 없다.
흰둥이는 아픈 발을 든 채로 우리의 주변을 껑충거렸다. 커다란 밥그릇에 가득 담긴 빨간 김칫국과 밥은 언제 준 것인지 딱딱하게 말랐고 파리가 들끓고 있었다. 며칠 사이에 흰둥이의 몰골이 많이 초췌해져서 뱃가죽이 홀쭉하고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 잘생긴 얼굴에 함박웃음 가득하던 표정은 시무룩하고 지쳐 보였다.
우리가 준 사료와 간식껌을 먹은 흰둥이는 차츰 표정이 밝아졌고 산책을 가고 싶은지 도로 쪽으로 계속 시선을 두고 두리번거렸다.
9월 들어 주말이나 일요일에 몇 번 남편이 산책을 시켜준 적이 있었기에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늘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똥무더기가 근래에 안 보였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산책 나가서 싸려고 응가를 참고 있었을까?"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흰둥이는 낑낑대는 소리를 내며 바쁘게 앞뒤로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도로 쪽을 내다보기를 몇 번 반복했다.
발에 난 상처 때문에 흙이나 풀숲을 밟으면 안 되기에 우린 그냥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흰둥아, 너 발 아파서 흙 밟으면 안 돼. 그냥 여기서 응가해!"
우리가 손을 흔들고 돌아서자 흰둥이는 체념한 듯 똥을 눴다.
다음날인 월요일, 출퇴근 길에 내 차가 옆을 지나갈 때도 흰둥이는 등을 보인채로 꼼짝없이 누워있기만 했다. 전날 밤에 싼 똥 한 덩이가 그 옆에 그대로 있었다.
발가락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줘야 할지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공장사람들이 다 퇴근했을 저녁에, 내가 어깨의 통증 때문에 먹고 있던 소염진통제를 절반으로 잘라 가루로 으깨서 요거트에 섞어 흰둥이에게 먹이려고 가져갔다.
인적이 드물고 외국인 노동자들만 가끔 드나드는 그곳에 혼자 가기 싫었지만 걱정이 돼서 남편이 오는 밤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전날엔 출혈의 흔적만 있었던 흰둥이의 발가락에서 피가 다시 나고 있었다. 뒤쪽에서 나오는지 정면에서는 하얀 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피가 방울져서 떨어지고 하얀 시멘트 바닥 군데군데 검붉은 핏자국이 크게 번져 있었다. 발바닥 패드까지 다친 것인지 자세히 보려고 해도 흰둥이가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피해버렸다.
흰둥이의 밥그릇엔 전날 보았던 말라붙은 밥이 그대로 있었다. 얼마동안 그렇게 밥을 안 주고 있었던 것일까?
일주일 전에 함께 산책을 했었고 그때만 해도 체격이 좋은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그 이후에 계속 굶었다는 것 말고는 갈비뼈가 앙상해진 모습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심장사상충약은 내가 먹인 지 한 달쯤 된 것 같으니 설마 갑자기 심장사상충 감염 때문에 살이 빠진 것 같지는 않지만 진료는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파리와 모기들이 피가 묻어있는 바닥과 상처부위로 날아들고 있는 광경에 너무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곧 상처가 덧나고 감염이 될 것이 뻔했다. 녀석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밤에 퇴근한 남편에게 "무조건 내일은 병원에 데리고 가자, 상처에서 계속 피가 나고 파리 모기까지 몰려들고 있어."라고 말하자 회사에서 오전엔 중요한 일이 있다며 오후 반차를 쓰고 나오겠다고 했다.
화요일 오후.
하루가 길었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남편과 함께 흰둥이에게 다시 갔다. 오전에 내가 약을 먹이러 가서 봤을 때도 발가락 뒤쪽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피가 시멘트 바닥을 적시고 있었는데 오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미역국에 밥을 말아준 듯 몇 가닥의 미역이 붙은 밥그릇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고 이틀 동안 그대로 있던 똥은 치워져 있었다.
"그래도 주인이 있는 개인데 그냥 데려가지 말고 사무실에 얘기는 하고 가야 될 것 같아."
나의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쇠줄을 풀고 집에서 가져간 리드줄로 바꾸어 찬 흰둥이는 헤벌쭉 입을 벌리고 뒷발을 든 채 세 발로 껑충거렸다.
나는 처음으로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형트럭이 드나드는 셔터문 바로 옆에 있는 내 키높이의 작은 출입문을 두드려 보았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손잡이를 잡고 밀었더니 쉽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