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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궁무진화 Nov 10. 2024

자기취향은 자기확신이 되고
마침내 일상이 변하더라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시집이 던진 자기취향의 힘

내가 좋아했던 것들,

그리고 하고 싶어 져만 가는 것들 잃었다.


자꾸만 잊고 사는 것들이 많아진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에 존재미를 자꾸만 국한시킨다

본체는 사실 생각하고 꿈꾸는 마음인데, 앞에 보이는 물질에서 자신을 읽는다


그렇게 무뎌진 일상은 척박하다

그러던 어느 아침 출근준비 중에

한 곳에 꽂아둔 시집이 눈에 들었다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언제 읽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던 작은 시집

가볍게 가방에 챙겨 지하철 출근길에 읽었다.


가정법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보다
가진 게 희망뿐이어서 어디서든 온몸 던지는 씨앗을
곁에 둔다
봄이 오니 언 연못 녹았다는 문장보다
언 연못 녹으니 봄이 왔다는 문장을
곁에 둔다

절망으로 데려가는 한나절의 희망보다
희망으로 데려가는 반나절의 절망을
곁에 둔다

물을 마시는 사람보다 파도를 마시는 사람을
걸어온 길을 신발이 말해 주는 사람의 마음을
곁에 둔다

응달에 숨어 겨울을 나는 눈보다
심장에 닿아 흔적 없이 녹는 눈을
곁에 둔다

웃는 근육이 퇴화된 돌보다
그 돌에 부딪쳐 노래하는 어린 강을
곁에 둔다

가정법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보다
가진 게 희망뿐이어서 어디서든 온몸 던지는 씨앗을
곁에 둔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보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곁에 둔다

- 곁에 둔다(류시화)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뭇잎의 집합이 나뭇잎들이 아니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방울의 집합이 파도이고
파도의 집합이 바다라고 믿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길의 집합이 길들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발견한 사람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벽의 집합이 벽돌이 아니라
감옥임을 깨달은 사람
하지만 문은 벽에 산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날개의 집합이 날개들이 아니라
비상임을 믿는 사람
그리움의 집합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

- 내가 좋아하는 사람(류시화)

- 오래간만에 회색빛 일상에 균열이 갔다

- 물밀듯 느껴지는 설익은 감정들

- 시인이 가진 명확한 자기취향의 고백

- 그리고 자기확신의 힘


잃어버린 나의 취향과 대조된 생기였다

하여 그 감동이 일으킨 동파에 마음에 낀 이끼를 걷어내고 세워둔 비석들을 정돈하고 세워본다.

일종의 체크리스트로서, 자기확신을 찾기 위해.




긴 평일이 끝나는 날엔 땀을 흘린 뒤 분위기 좋은 재즈바에 가서

죽이는 연주에 가벼운 좋은 술 한 잔을 즐기고 싶다

그리고 친우와 함께 노래와 일상, 삶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에 취하고 싶다


동창 녀석들과 도봉산을 오르며 가을의 정취를 함께 나누고 싶다


일상에 지친 나에게 웃으며 다가와 그래도 지금 함께라 행복하지 않냐는 사람과 사랑을 키우고 싶다

동시에, 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내색 없이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싶다


매일에 의미를 부여해 선물을 주는 활력이 되고 싶다


인사와 인연 가까워 연결의 기회가 많은 감사한 인간 되고 싶다


미소가 은은히 늘 풍기는 암석이고 싶다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 말을 이루어냈는 그 마음을 항시 직시하는 인간이 되고 싶


"고마워요. 우리 얼굴 또 봐요" 라며 가볍게 언제나 연결되었음을 알려주는 사람이고 싶다


문제가 생기거나, 병이 생기면 바로 고치기 위한 행동력을 가진 인간이 되고 싶다


자연과 운명의 흔들림에 파도를  결국 늘 자신의 손으로 스로를 결정함을 잊지


먼저 손을 내밀곤 "잘 지냈지? 좋은 날이야" 라며 하루 밑으로 흐르는 생기를 들추어 하는 힘사람이고프다


책임없이 고요한 한가로운 연못이 아닌, 책임과 의무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기어코 항해하는 선주가 되고프다.




적다 보니 이렇게 자기취향을 솔직히 드러 놓은 적이 언제였나 싶다.

그리고 재밌는 건, 적힌 취향 하나씩 눈에 들어오고, 머리에 남아 하나씩 행동하게끔 움직인다.

그래서 시는, 글은, 다짐과, 문학은 솔직할수록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일으키는 촉진제임을 되짚는다.


글을 쓰곤 선물에 가벼워지고, 재즈바를 찾는 행동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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