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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Nov 09. 2023

행동 경제학 1

우리 모두는 ‘이콘‘이 아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40년 동안, 나는 경제학 모형의 가상적인 존재와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껴왔다. 그런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그저 똑같은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다. 여기에서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활용하는 모형, 즉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이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 , 내가 종종 줄여서 말하는 '이콘'이라는 가상적 존재를 가정하는 모형이다.


이콘이 사는 가상 세계와 비교할 때, 인간은 많은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다. 이는 곧 경제학 이론이 학생들을 기분나쁘게 하는 것보 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즉 부적절한 예측을 내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어떤 경제학자도 2007~2008년 금융 위기가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많은 이들이 금융 위기와 그에 따른 후폭풍이 결코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행동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에 기반을 둔 형식적인 모형이, 경제학이 여러 사회과학 중 가장 강력한 학문이 되도록 한 요소였다. 그 강력함은 두 가지 특성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는 명백한 사실로, 사회과학자 중 경제학자들이 공공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정책 자문에서 실질적인 독점권을 갖고 있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분야의 사회과학자들은 정책 관련 회의 석상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고, 설령 초대를 받았다 하더라도 가족회의에 참석한 아이들 정도로밖에 대우받지 못했다.


두 번째 특성은, 경제학은 학문적인 차원에서도 가장 견고한 분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의견고함은 거의 모든 다른 학문이 파생된 핵심적인 통합 이론을 보유한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경제학 이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한다.  다른 어떤 사회과학에서도 그런 유사한 기반을 발견할수 없다. 다른 사회과학분야의 이론은 특정 환경하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경제학자들은 그들의 학문을 종종 물리학에 비유하곤 한다. 이는 물리학처럼 경제학 역시 몇몇 핵심적인 가정을 기반으 로 구축되어 있다는 뜻이다.(29-31 쪽)

‘경제학의 역사’ 읽기를 잠시 미루고, 우리에게 보다 유용한 경제적 선택으로 유도하는  ’ 행동경제학‘을 소개하기로 한 이유는 브런치에 시간을 투자하는 독자에 대한 조금 더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된다.


‘넛지’라는 책의 공동저자로서 더 유명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 1945-) 교수의 본격적인 ‘행동 경제학’ 저서의 부제는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힘‘이다.


‘넛지’의 부제가 ‘독특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라면, 이 책은 보다 벙대한 사례와 정보를 담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고전 경제학자들이 전제하고 있는경제활동의 합리적 선택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외의 요인들을 찾아내고자 하는 현대 경제학이다..


탈러가 주장하는 이론들의 토대는 마치 과거 근대 말 서구 합리론의 완성자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 즉 역사와 인간은 합리적으로 진보한다는 전제를 거꾸로 뒤집은 쇼펜하우어나 니체와 같은 비합리주의자들의 철학적 탐구와도 비슷하다.


행동경제학자들은 다수의 경제적 주체들이 경제적 선택을 할 때 반드시 합리적 이유, 즉 투자나 구매의 동기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일부 중독자를 제외하고 정상적인 경제 행위는 소득 대비 지출 혹은 수요 대비 생산이다.


그러나 탈러가 부르는 이콘 즉 호모이코노무스, 경제적 인간은 효율적으로 자산을 관리하고 증식하는데 자신의 이성이나 지성을 동원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이콘이 그런 한 우리는 이콘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제학 이론에서 핵심적인 가정은 사람들이 최적화 작업을 거쳐 선택한다는 것이다. 한 가구는 그들이 구매 가능한 모든 제품과 서비스 중 최고의 조합을 선택한다. 또 이콘의 선택 기반을 이루는 믿음은 편향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합리적 기대 rational expectaton'에 따라 선택한다. 이콘은 결코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다.


제한된 예산 내에서 최적의 조합을 선택한다는 '제약적 최적화constralined optimizaton'의 가정은 경제학 이론의 또 다른 핵심적인 가정, 즉 균형 equilibrium '이라는 개념과 결합된다. 가격이 자유롭게 변동되는 경쟁 시장에서 재화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따라 오르내린다. 간단히 말해 '경제학=최적화+균형'이다. 이 방정식은 다른 사회과학 분야가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조합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경제학 이론이 기반으로 삼은 가정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첫째, 일반적인 사람들이 직면하는 최적화 문제는 종종 해결하기 쉽지 않거나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예를 들어 그리 크지 않은 식료품점에 들어설 때. 우리는 예산 내에서 구매 가능한 수백만 가지 제품 조합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최고의 조합을 선택할 수 있을까? 직장이나 대출 상품,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그렇다.


둘째,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때 기반으로 삼는 믿음은 사실 편향되어 있다. 경제학자의 사전에 지나친 낙관주의라는 말은 없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런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다양한 편향을 밝혀내고 있다. 셋째 최적화 모형은 많은 요소를 빠뜨리고 있다. 이콘의 세상에서는 그런 다양한 요소를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이콘이라면 아마 쇼핑을 하는 일요일에 배고픔을 느꼈다고 해서 화요일 저녁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미리 잔뜩 사두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분과 나는 우리가 이콘의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스미스는 자신의 대표작 ‘국부론’을 쓰기 전에, 경제학 논문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용어인 인간의 '열정‘을 주제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콘에게는  뜨거운 열정이 없다. 그들은 최적의 선택만 추구하는 냉혈한이다.


그럼에도 이콘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전제로 하는 경제학적 행동 모형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제학자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지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간 제기된 비판에 대해 경제학자는 어설픈 변명과 미심쩍은 해명으로 얼버무린다.하지만 조금씩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여러 연구 성과가 그런 비판에 대해 하나씩 해답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퇴직연금이나 대출 상품. 주식 투자 같은 중요한 영역에서 사람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이제 변명은 그만한 때가 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재와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제학적 연구에 대한 활발한 접근이다.


다행스러운 소식은 경제와 시장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않던 모든 이야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다. 즉 이콘의 존재를 가정으로 삼는 모든 이론을 폐기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이론들은 보다 현실적인 모형을 위한 출반점으로서 가치가 있다.


삶에서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물론 아침 메뉴처럼사소한 문제까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경제학자는 인간 행동에 관한 좀 더 정확한 설명을 바탕으로 이론을 수립하라는 요구를 오랫동안 끈질기게 외면해 왔다.


그러나 최근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고 전통적 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고자 하는 창조적인 젊은 경제학자들이 등장했고, 풍요로운 경제학 이론을 향한 꿈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오늘날 이런 노력을 추구하는 분 야는 '행동경제학‘이라 발린다. 행동경제학은 전통경제학과 완전히 다른 학문이 아니다. 여전히 경제학의 범주에 속하며, 다만 심리학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과학을 폭넓게 받아들인다.


경제학 이론에 '인간'이라는 요소를 추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런 이론을 기반으로 내놓는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인간을 조합에 포합시킴으로써 또 다른 이익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행동경제학이 전통 경제학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는 사실이다.


행동경제학은 실로 유쾌한 과학이다. 행동경제학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경제학의 한 분야이며, 현재 전 세계 유수 대학에서 이 분야에 몸담은 학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최근에는 행동경제학자와 행동과학자가 정책 수립 과정에 일반적으로 참여하고 있기도하다.


기업 역시 이런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고 있으며, 인간 행동에 대 한 깊이 있는 이해는 재무제표와 경영을 이해하는 것만큼 성공적인 비즈니스 운영에 필수 요소라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 결국 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인간이고, 직원과 소비자 모두 인간인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행동경제학이 발아한 그 반가운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요한 조언을 하나 한다면, 더 이상 재미가 느껴지지 않을 때 이 책을 덮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잘못된 행동'일 것이다. (32-38 쪽)

호노사피엔스가 최상위 포식자로 성공한 이유는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최적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혹은 전통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구매력을 결정하는 것이 소득 수준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수많은 요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제 경제학은 새로운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전반부터 시작된 행동경제학은 기존의 경제원리에 보다 심층적인 인간 행동의 요인들(행동심리학의 결과보다 더 다양한 연구들)을 다른 학문의 성과와 결합해 좀 더 비이콘적 인간을 이콘적 인간으로 유도하려는 학문이다.


앞으로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사례와 연구 결과가 우리의 실 생활 전반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다음 글에서 2장의 내용들을 간략히 소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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