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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Jun 16. 2024

데닛의 12가지 생각도구 1

실수하기

이 시리즈는 미국의 언어심리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저서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란 책의 1부, ‘열두 개의 일반적 생각도구’를 요약, 정리, 해설한 것이다. 책의 부제는  <대니얼 데닛의 77가지 생각도구>인데, 한 번에 보기엔 너무 많아서 그 기초가 되는 1부만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대니얼 데닛이란 철학자에 대하여 잠시 알아보기로 하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1942-2024)은 미국 보스턴에서 출생하여, 하버드 대학 철학과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 철학계는 통상 영미권의 언어분석철학과 유럽 대륙의 현상학-해석학적 존재론/구조주의-포스트모던철학과 사회주의-신마르크스주의 철학이란 세 가지 조류로 형성되어 있다.


현대 철학자들 중에 가장 활동이 활발한 대중적인 철학자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1949-)이다. 한국에서도 그의 책은 거의 번역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라깡 그리고 헤겔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현란한 그의 글은 사실상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접근하기에 만만한 책들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푸코 그리고 데리다의 글들은 더하다.


반면에 언어분석이란 정밀한 작업을 학부시절부터 익힌 영미권의 철학자들의 저서들은 초급 수학 혹은 논리학을 이해할 정도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한국인 독자들은 북마케팅의 영향력에 취약하다. 들뢰즈, 지젝, 푸코 이런 사람이 거명되면 퍽 가버린다. 전공자 이외에는 거의 가독이 불가능하기에 책을 구입해놓고는, 그냥 '난 이런 책을 서고에 진열했어' 정도에 만족하고 만다.


철학이나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나는 어려운 유럽 대륙의 현대 철학자들 대신에 미국의 철학자 존 호스퍼스의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라는 책의 일독을 권한다. 논술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나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이 책을 반드시 읽고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이나 대학원으로 가면 적응이 훨씬 빠를 것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핵심은 필자의 경험 상 <글이 어렵다고 심오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이제 1부의 첫 주제인 <실수하기>를 정리해보자. 윌리엄 제임스의 [신앙론]과 리차드 파인만의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에서 오류를 겁내지말라는 내용의 글을 먼저 인용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과학자가 철학자에게 던지는 핵심적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왜 철학자들이 철학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데 공을 들이느냐고 곧잘 묻는다....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철학사의 상당 부분은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아주 솔깃한 실수를 저지른 역사이며 그 역사를 모르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아마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 유학시절 그 대학교의 과학자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오랫동안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화학자 데이비드 도이치의 다음 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철학의 교육 과정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이론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원문을 읽고 논평하는 데 굉장한 무게를 둔다. 역사에 이런 무게를 집중하였다는 것은 기묘하며, 다른 학문 분야와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 대학에서 수강한 모든 물리학 과정에는 과거의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논문이나 저서를 연구하거나 혹은 그것들이 필독 목록에 포함된 예가 단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아주 최근의 발견을 다루는 과목일 경우에만 발견자의 저서를 읽었을 뿐이다..왜일까? 직접적인 이유는 과학 이론들의 원본들이 결코 좋은 출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에 대한 이런 평가 절하에 대하여 데닛은 다음과 같이 받아친다. "과학자들이 철학에 콧방귀 뀌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철학과 무관한 과학, 즉 근본적인 철학적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연구되는 생짜 과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똑똑하거나 운 좋은 과학자들은 그런 위험을 솜씨 좋게 피하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은 드문 예이다."


데닛은 "실수는 발전의 열쇠다.'라고 시작한다. 이어서 "우리 철학자는 실수 전문가다." 왜 그는 이런 말을 던지고 있을까? 우선 철학은 그 시작부터 [철학은 무전제의 학문]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철학자들은 신화를 비판하였으며, 종교를 비판하였고, 정치를 비판하였다. 철학은 독일의 철학자/사회학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주장하듯이 근본적으로 [비판 이론]이다. 아니 [비판 활동]이다.   


"우리 철학자는 매사를 엉망으로 뒤섞어서 무엇이 정답인지는 고사하고 무엇인 올바른 '질문'인지도 알 수 없도록 하는 데 전문가다...깔끔하게 설계되고 압축되고 소제되고 대답하기 좋게 다듬어진 기성품 질문만 다루고 싶어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물리학이나 수학이나 역사학이나 생물학을 하면 된다. 할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이 책의 한 가지 목표는 모든 이들의 길을 밝혀줄 '좋은' 실수를 여러분이 저지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론을 확립했으면 그 다음은 연습이다. 중요한 사실은 실수야말로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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