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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Jun 17. 2024

데닛의 12가지 생각도구 2

"추론을 패러디하여"; 귀류법 써먹기

데닛은 2번째 장에서 귀류법(歸謬法)이란 일반인들이 듣기에는 다소 생소한 반증법(反證法: 어떤 사례를 반대로 입증하는 법) 즉 일종의 간접증명법을 소개한다. 위키백과에는 귀류법이 어떤 주장에 대해 그 함의하는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이치에 닿지 않는 내용 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서 그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보이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우선 예를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데닛이 든 영어식 표현은 한국인에게는 다소 어렵다. 우리식으로 이런 귀류법을 예시해 보자. 불교에서 말하는 핵심 메시지는 모든 인간에게는 본래부터 불성(佛性)이라는 일종의 신성(神聖, Divinity)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경우 그 신성(神聖)은 일종의 무지(無知) 혹은 무명(無明)이라는 근본적인 어두움에 영향을 받아 연기법(緣起法)을 따라 윤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처음 불교의 가정을 그대로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반증이 나온다. 신성 혹은 불성이란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자존성(自存性, Aseity, 스스로 존재함)을 말하는데, 무명이라는 다른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신성이 아님에 분명하다. 아니면 근본 무명이 신성보다 더 큰 힘이라면 소위 말하는 해탈 즉 자각(自覺)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서구식 반증논리에 불가하다. 불교 논리는 이런 차원을 뛰어넘는 여러 차원의 다양한 논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서구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불교에 입문할 때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원래 자존자였다면(천상천하유아독존), 왜 내가 번뇌의 바다에 빠지게 되었는가? 한국의 정치인들이 하는 이야기는 너무 반증이 쉽기에 아예 예를 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데닛은 귀류법을 라틴어 공식, 즉 "레둑티오 아드 아브수르둠(reductio ad absurdum)", 풀이하면 <논증을 불합리로 전락시킨다>는 뜻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귀류법의 예를 MIT에서 열린 인지과학 세미나에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와 예일 대학 인공지능연구소장 로저 생크의 논쟁을 들고 있다.


촘스키가 누구인가? 그는 현대 최고의 언어학자 아닌가? 그는 생크의 이론을 반박하며 그를 바보 천지로 만들었다. 데닛은 생크의 연구에 대하여 잘 이해했기에 촘스키에게 그가 생크의 미묘한 입장을 일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던졌다. 그러자 촘스키는 싱긋 웃으며 수긍하지 않고 "천만에요, 이게 바로 생크가 주장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하면 반박을 계속하였다.


몇 분 후에 데닛은 손을 들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께서 비판하는 견해(생크의 주장)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자 촘스키는 동의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데닛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왜 그런 쓰레기를 비판하는 데 선생과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고 계시느냐는 겁니다." 그는 제대로 세미나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데 성공했다. 아래는 촘스키의 사진.

다음에 든 예는 <의식과 뇌의 관계>에 관한 논쟁으로서 독자들이 이해하기엔 좀 더 전문적이다. 하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데닛은 베니스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신경과학자 존 에클스와 철학자 칼 포퍼를 상대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그와 그의 진영은 유물론자(마음이 곧 뇌라고 주장하는 학자)였으며, 에클스와 포퍼는 이원론자(마음이 뇌와 같은 물질이 아니라 뇌와 상호작용하는 제2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학자)였다.


에클스는 글루타민 분자와 그 밖의 신경전달물질 및 신경조절물질이 하루에 수조 번씩 왕래하는 현미경적 공간인 시냅스를 발견한 공로로 일찍이 노벨상을 받은 학자였다. 그는 뇌가 성능이 좋은 파이프 오르간을 닮았으며 수조 개의 시냅스가 키보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비물질적 마음(불멸의 영혼)이 글루타민을 양자 수준에서 자극하여 시냅스를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에클스는 "신경망이니 하는 이론적 논의는 다 집어치우시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이니까. 마음은 글루타민 속에 있소!"라고 단언했다. 그러자 데닛은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마음이 글루타민 안에 있다면, 내가 글루타민 한 박스를 하수구에 버리는 것은 살인행위가 아닌가요?" 에클스는 꽤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대답하기 무척 곤란한 질문이군요."


학자들의 논쟁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결론을 따라가면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자. 성장과 분배에 관한 오랜 경제학적 논쟁 역시 한쪽의 주장만을 그대로 따라가면 바로 모순에 빠진다. 자유와 평등에 관한 오랜 정치철학적 논쟁 역시 이와 비슷하다. 새는 두 날개로 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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