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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Jun 23. 2024

데닛의 12가지 생각 도구 5

오캄의 면도날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오컴의 윌리엄 (William of Ockham)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 원리는 오랜 신학적 논쟁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필요에서 등장하였다. 서양의 기독교 신학사는 <논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첫째, 기독교 초기 계시 신앙에 고대 헬라 철학을 이성적으로 도입하여 신학을 구성하였기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둘째로 현대 성서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신구약 성서의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여러가지 신앙 고백적 문장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통일된 개념적 교리나 체계적 신조로 만들었기 때문에, 성서를 보는 시각에 따라 끊없는 논쟁을 야기시켰다.


세번째 이유는 로마 황제의 지시에 따라 소위 어용 신학자들이 그런 과제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성서의 본문에 나타난 역설적 표현 혹은 논리적 모순들로 인하여 권력과 밀착한 신학의 태동기 초기부터 논쟁이 끝없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마치 한국의 조선시대 후반에 성리학 논쟁이 붕당정치와 관련된 일종의 성리학 내 이단 논쟁의 결과를 이용된 것과 유사하다. 결국 이념 논쟁 배후에 권력 투쟁이 있듯이, 학술적 논쟁이 정치적 권력을 주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반대 세력을 배척하기 위한 일종의 <숙청의 논리>로 변질된 것과 유사하다.   


오컴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로 논쟁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 많은 것들을 필요 없이 가정해서는 안된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2)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 데닛은 이 생각 도구를 <절약의 법칙, lex parsimoniee>으로 부른다.

데닛에 의하면 19세기 영국의 심리학자 콘위 로이드 모건(Conwy Lloyd Morgan, 1852-1936)은 오캄의 면도날을 동물의 정신능력에 까지 확장하였다. 로이드 모건의 절약의 법칙은 곤충, 어류, 심지어 돌고래나 개와 고양이 등의 행동을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이들에게 마음이 있다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혼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식물과 동물의 혼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데닛 역시 이 논리를 남용하면 모든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까지도 뇌는 있되 마음은 없는 존재로 취급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반대로 이 법칙을 적용하면 신을 우주의 창조자로 가정하는 것이 다른 어떤 가설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데닛은 이러한 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캄의 면도날을 형이상학적 원리나 합리성의 근본 요건으로 둔갑시켜 신의 존재를 단번에 입증하거나 반증하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바보짓이다.'


물론 아인슈타인 역시 오캄의 면도날을 사용하여, <어떤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 현상을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 사실을 나타낸다>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이 복잡한 세계의 기원을 최초의 원동자인 형이상학적 신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그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만물의 목록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데닛의 학생 하나가 그의 사상에 대하여 이런 답을 써냈다고 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하나분인데, 나는 그것이 아니다고 말한 사람이다.'

사실 파르메니데스는 그 학생이 말한 것처럼 단순한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존재자의 근원에 존재라는 동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사유하였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파르메니데스나 헤라클레이토스가 사유했던 존재는 플라톤 이후 <망각의 역사>를 거쳤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진지하게 물었다. <왜 도대체 무가 아니라 존재인가?> 여기서 존재는 존재자가 아님을 명심하라. 2000년 동안 존재는 존재자(사물, 대상)처럼 취급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오캄의 면도날을 선호한다. 그들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그런 것처럼 간략하게 힘의 원리를 설명할 방정식을 발견하곤 하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특수 상대성 원리>는 아주 간단한 수학적 공식으로 기호화된다. 그리고 그 원리가 적용되어 새로운 문명을 창출할 생산력의 원리가 된다. 그 결과 재화는 풍부하고 인류는 상품 소비로 인한 잉여쾌락(剩餘快樂)에 중독되고 말았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모든 의미의 층위를 사유한다. 그리고 욕망의 심층적 근원을 파고든다. 효율성의 시대에서 가장 비효율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철학자들이다. 도덕경 5장을 해설한 하상공은 허용(虛用: 빈 것의 쓰임)을 설파한다. 허이불굴 동이유출(虛而不屈 動而愈出: 텅 비어있어도 고갈됨이 없고, 움직여도 더 나오게 됨), 바로 이런 사유가 과학자가 행하는 <존재자의 인식>이 아니라 철학자의 <존재사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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