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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Oct 20. 2024

공간적 전회 3

네트워크 사회의 지리 의미론

근대 초기의 유토피아 소설인 [태양의 나라]에서 저자 토마소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 1568-1639)는 매체기술, 세계의 공간과 그곳에서 전파되는 사회 질서 간의 관계를 정립한다. 그는 소설 속에서 제노바 선원으로 하여금 고도로 발달한 태양국의 시민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게 한다. "그들은 인쇄술과 화약과 나침판에 끊임없이 탄복한다. 이것들은 전 세계를 양 우리 속에 넣어 통합하는 기호이며 도구이다."


화약, 납, 활자판, 자석 나침판이 중국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발명품들은 유럽인의 손을 통해 처음으로 세계사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소설에서는 그  발명품의 결과로 인류에게는 5,000년 전보다 더 많은 역사가 일어났고, 더 많은 책이 세상에 빛을 보았다고 태양국의 학자가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근대문명을 일으킨 세 가지 핵심 문화기술에는 특정한 공간 코드화, 즉 지구 영토화의 움직임, 간단히 말해 지오코드가 각인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지오코드(Geocode)는 사회 질서를 통해 세계를 남김 없는 공간 점령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다. 오늘날 지오코딩(Geocoding)은 고유명칭(주소나 산, 호수의 이름등)을 가지고 위도와 경도의 좌표값을 얻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지오코트란 용어뿐만 아니라 더 전문적인 용어인 사회의 자기기술(Selbstbeschreibung)이란 학술적 개념을 소개한다. beschreibung이란 독일어는 기술, 서술, 묘사, 그리기란 의미를 가진다. 사회가 스스로를 묘사한다는 이 말은 도대체 공간적 전회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독자들은 바로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저자의 핵심 논점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의 지리적 특성을 이 용어가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기술이란 용어는 전체를 포괄하는 즉 시간의 차원에서는 해당 시대의 특성을 잡아내고, 공간의 차원에서는 세계 전체와 관련해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을 포착하는 용어를 뜻한다. 저자는 이 용어가 영토상으로 구별가능한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고대부터 사람들은 어느 대륙 전체를 배제하고 그곳 주민을 야만인, 이교도 혹은 식인종으로 명명하며, 헬라인, 그리스도교인, 문명인들로부터 배척했다.


이런 도식에는 '야만인은 그리스인에게만 야만인이지 야만인 자신들에게는 야만인이 아니라는" 사고가 배제되어 있다. 모든 본질적인 것은 특정한 영토 내부에 자리매김하고 경계 바깥에는 타락, 죄악, 비본질적인 것 혹은 저급한 것만을 배정하는 공간적 구분은 현대에서는 그 의미적 타당성을 상실했다. 세계사회 바깥에는 소통도 없으며 사회질서도 없고 그에 따른 갈등과 합의도 없다면, 세계사회의 자기기술은 인종이나 공간을 세계 바깥으로 내보내는 대신 체계 전체를 표현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시공간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사회의 자기기술은 모두 지구적 차원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모든 예외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위험사회나 통제사회, 정보사회나 네트워크 사회는 우리가 다른 사회로 가기 위해 건넜던 어느 강이나 산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벌어질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지역 분쟁으로 끝나지 않고 이미 네트워크화된 세계 정체 경제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새로운 전자환경'은 '우리의 신경계로 끊임없이 침투하는 유비쿼터스 에너지의 연결망'이 되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마셜 매클루언은 이미 새로운 지구촌 세계를 전자매체 안에서 '공간이 폐기'된 결과로 이해했다. 그는 "매체가 기존 사회 양식에 끼친 영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속화와 분할이며, 오늘날 가속화는 거의 총체적 현상이 되어 사회 질서의 핵심 요소인 공간에 종말을 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 질서의 <중심-주변 구조(1세계-3세계, 수도-지방)>는 매체에 기반한 동질성에 자리를 양보한다. "이제 지구의 주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형식에서 매체의 지오코드는 전통적인 지정학적 코드화의 폐기일 것이다. 한국인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통적인 지정학적 코드화의 폐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앞으로 특정 언어 전문 번역가나 AI에 의한 소통 기능이 더 발전한다면, 소위 말해서 변경(지역, 문화, 국가)란 용어 자체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설정한 <새로운 제국의 기초> 즉 새로운 정보 기반구조의 구축은 세계적인 생산과 지배의 조건을 마련한다는 사실을 새로운 민주적 모델로 제시한다. 이런 세계상의 형식은 완전히 탈영토화 되고 비위계적이며, 초지역적이면서 그들의 시각으로는 필연적으로 민주적인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이 모델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 수목형 사고에 대비되는 구근형 식물의 수평적 사고의 네트워크 모델)>으로 불렀다.


그러나 수목형 사유와 리좀적 사유는 여전히 병립하고 있다. 세계질서는 네트워크화되고 분산화되어 있으나 마치 정치질서는 근대의 국가자본주의인 제국주의의 시대처럼 다극적 중심과 주변으로 블록화 되어 있고 한국은 미국 중심의 동북아 블록에 소속되어 있으나, 네트워크 시대의 문화나 상품 경제는 주변과 중심을 가리지 않고 [천 개의 고원]으로 나타난다. 이제 공간적 전회는 리좀적 연결질서로 재편되고, 리좀들 내에서 국소적으로 강화된 에너지는 마치 중국의 계림의 산들에게서 보듯이 산맥이 아니라 땅에서 갑자기 솟아난 산과 고원들로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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