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만들기
자국은 왜 흥미로운 것인가? 호크니는 자국과 자국의 관계 즉 묘사를 만들어내는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종이 위에 자국을 두세 개 정도 내 보자. 그러면 그들 사이에 관계를 생겨난다. 그 자국들이 다른 무엇인가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선을 두 개 그리면, 그것은 사람 두 명이나 나무 두 그루로 보일지도 모른다."
호크니의 이 말은 픽처의 핵심을 터치한다. 인간은 모든 종류의 사물을 자국으로 읽는다. 이 모든 것은 자국을 묘사로 파악하는 인간의 능력(상상력, 구상력, 선입견, 전이해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저 하늘에 무지개나 그것 사이로 떠오른 영롱한 구름을 보고, 7가지 숫자로 사물을 패턴화한 서양인들은 일곱 무지개로, 5가지 숫자 알고리즘에 익숙한 동아시아인들은 오색구름으로 인지할 것이다.
게이퍼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한다. "어떨 때 우리는 용처럼 생긴 구름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비행운이나 곰이나 사자처럼 보인다." 상상력이 뛰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비숫한 말을 했다. "다양한 얼룩이 묻어있는 벽이라든지, 다양한 돌들이섞여있는 벽에서도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선사시대 예술가들은 도르도뉴 지방 동굴 속 흩어진자갈 조각들을 보고 사자의 눈을 연상했으며, 갈라진 부분이나 돌출되어 나온 부분을 보고 귀나 어깨나 관절을 연상했다. 스르로베니 예배당에 있는 조토의 프레스코의 경우, 그 내부가 종교적 드라마와 역사로 채워져 있는데, 태초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묘사해 왔다. 신이나 신화 그리고 악마를.
호크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는 종이 위에 선 몇 개만 그려도 거의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드로잉을 할 때 <표현 방식의 경제성(economy of means)>이 그토록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간소할수록 더 좋다 표현 방식의 경제성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간소할수록 더 좋다." 그러면서 그는 에드바르트 뭉크의 <자화상: 시계와 침대 사이에서>란 작품을 예로 든다. 그러나복제품과 진품의 감상은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도 강조한다.
게이퍼드는 13세기 중국의 선승이자 화가인 목계의 작품 <여섯 개의 감>은 '간소할수록 더 좋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작품의 크기는 자그마하고, 거의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다. 사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다빈치 미학의 지침대로 애플 로고를만들고, 이어서 맥킨토시와 아이팟과 아이폰 그리고 아이맥과 아이패드를 만들었다. 그가 가장 사랑한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 역시 이런 미학 정신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에는 선불교의 단순함과 명상의 여백 그리고 고도의 추상화된 알고리즘이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마치 산속의 사찰에서 느끼는 고요함을 그의 작품 앞에서 느낀다.
현대의 서양회화는 점점 중국의 수묵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비록 흑백만을 사용하는 수묵화와 달리 서양 회화는 단순한 색감의 대조로 동일한 미학을 보여준다. 호크니는 렘브란트가 분명 중국의 소묘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렘브란트가 살던 암스테르담은 항구도시였고, 당시 네덜란드는 극동의 국가와 대규모로 교역을 했다. 그래서 그 근거로 램브란트의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어린아이>란 작품을 소개한다.
호크니는 더 나아가 피카소 역시 중국의 수묵화와 연결하여 그의 미학을 이해하려 한다.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뭔가를 쫓아가지 않는다. 단지 발견할 뿐이다." 위대한 화가는 나이가 들수록 느긋해졌다. 렘브란트가 그랬고, 티치아노가 그랬으며, 피카소가 그랬다. 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의그림을 보면 마치 피카소가 도달한 마지막 경지인 '남을 것만 남고 뺄 것이 없는 단순함'이 나타난다.
필자는 중국의 피카소란 별명을 가진 제백석(齐白石, 1860-1957)의 그림을 중국 북경 화원 미술관에서 직접 관람한 적이 있는 데, 그의 새우 그림 역시 궁극의 정교함을 담은 단순함으로 중국 회화의 새로운 화풍을 창조한 것 같았다. 그러나 저자들은 다시 19세기 인상주의 예술의 선구자 모네의 회화로 돌아가서 이야기한다. 사실 이들은 피카소보다 서양의 인상주의 화가에 더 감동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지루한 회화를 생생한 회화가 누른 것이다."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회화들은 아직도 현대 예술가의 작품 이상으로 생동적인 감동을 준다. 마네와 모네 그리고 반 고흐의 작품이 현대 사회의 많은 생활용품이나 복제 예술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유 역시 자연의 빛에 따라 혹은 마음의 깊은 인상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과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놀라운 포착이다.
그들은 이 황홀한 순간, 좌뇌와 우뇌가 협력하여 만드는 조화의 세계를 형상화하였다. 그러나 20세기의 팝 아트는 인위적인 기술에다가 예술적 영감을 결합하였다. 앤디 워홀은 기술로 만들어진 복제 예술 즉 사진들에게 색채를 부여함으로써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이제 사진이나 영상 제작 기술을 넘어서 AI 이미지 크리에이터와 예술가가 협력할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인상파 회화와 팝 아트를 넘어서 어떤 그림이 생성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