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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Jan 17. 2024

참 난감했던 날

뒤통수가 뜨거웠던 날

분노로 시작하면 무엇이든 수치로 끝난다. (B.프랭클린)


‘고집으로 시작하면 부끄러움으로 끝날 수 있다!’


     

 퇴근 후 한 잔 하자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오늘은 시장통 먹자골목이란다. 

 ‘딱 한잔만이야.’

 ‘그래 오늘은 정말 한잔만 하자.’

골목을 들어서면 거짓말이 될 말을 주고 받으며 나섰다. 그리고 오늘도 한 잔이 석 잔까지 이어졌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이 친구가 선택하는 안주는 별미다. 맛 좋은 것 확실하다. 시장 맛집 다 알고 있다. 오늘도 그랬다. 맛있었다.

      

 묵은지에 얹어 입 안 가득 씹는 맛이 좋았다. 한 점만 얹어야 한다. 마늘 작은 쪽과 된장을 찍어 넣거나 풋풋한 미나리도 좋다. 가끔은 보쌈 추가도 하지만. 

그렇다. 오늘 안주는 홍어였다. 


굳이 찾아 다니며 먹지는 않아도 나름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먹다 보니 그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막걸리를 마시고, 술의 힘으로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마침 어머님이 올라 와 계시다. 맛있는 것 혼자 먹을 순 없지. 사가서 저녁에 함께 먹자.      

그렇게 해서 두 접시를 포장했다. 주문을 하고 나서 이걸 들고 어떻게 가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택시를 타야만 될 것 같은 망설임은 상당히 나올 택시비를 계산하고는 잠깐의 망설임으로 끝났다. 사실 더 머뭇거리지 않게 마침 버스도 왔다. 

66번.


버스를 탔다. 오늘따라 하얀 와이셔츠에 파랑 넥타이다. 두 손에 든 까만 비닐 봉지가 썩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게 되었다. 퇴근길 버스 안은 시간이 갈수록 붐벼왔다. 학교 마치고 학원가는 학생들, 퇴근하는 직장인으로 승객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로 밀리다 자리도 생겼다.      

의자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지고, 기분 좋은 졸음에 몸을 맡기고 얼마나 지났을까? 육감 중 어느 감각이 작동을 했는지 모르지만 느낌은 확실했다. 쏟아지는 시선이 있으며, 결코 우호적인 시선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원인이 무릎에 안고 있는 두 개의 비닐 봉지에서 솟는 냄새에 있다는 것도.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눈을 번쩍 떴냐고? 그렇지 않다. 몸짓은 여전히 졸되 정신은 벌써 깨었다. 그리고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흘러내렸다. 두런두런 중얼거리고 큼큼 헛기침 소리가 점점 커졌다.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잠이 깨인 듯 고개를 들었다. 애써 외면하면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척하지만 무릎 위 봉지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한 눈, 결정적으로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옷깃을 당겨 코를 막고 있는 중년의 여성을 보고는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다. 탈출해야 할 시간을 정해야 했다. 집까지 다섯 정류장 남았는데. 


다섯 정류장만 참을까? 쏟아지는 시선을 이겨낼 자신이 있나? 

싸움을 끝내야 했다. 

싸움은 너무 쉽게 끝났다. 아니다. 싸울 수가 없었다. 노년의 여성이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이게 무슨 냄새야?’

물론 무슨 냄새인지 몰라서도, 나를 바라보며 말하지도 않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다가가는 것을 보면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맨 뒤 두 번째 자리에서, 통로를 막고 서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비닐 봉지가 흩어지지 않으면서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모른다. 내리면서 카드 태그를 했는지는 더더욱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버스가 떠나갈 때까지 버스를 등지고 서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만큼 뒤통수가 뜨거웠던 경험은 그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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