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렸다 다시 쓰는 보이 후드
나중에 읽으면 부끄러운 글이 있다. 이 글이 그랬다. 이유가 뭘까?
‘…’
비 때문이다. 비에 젖어 축축해졌다. 글이 젖었다.
다시 읽으니 우울해진다. 발행 이틀 만에 내렸다. 1주일을 묵혔다 햇살 좋은 오늘 다시 쓴다.
한번 젖은 글 다시 뽀송뽀송해지기 어렵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말려봤다.
라이킷해 주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죄송하다. 이번에도 달아 주시면… 그저~~
이제부터 비 올 때는 글 쓰지 않기로 했다. 축축한 글은 쓴 나도 싫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일부다. 난 인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불볕더위와 소나기가 교차한다. 외출보다는 집에 있고 싶은 시간, 이럴 때는 영화다. 가슴 졸이는 긴장감도 눈물을 자극하는 감성도 아닌 무난한 영화다. 너무 많을 때 느끼는 선택의 곤란함을 이번에도 반복하며 20분째 리모컨 조작 중이다. 물론 출연 배우를 보고 선택하는 기준은 있다. 하지만 매번 공식대로 살 수 없는 것. 제목을 보고 섬머링을 훑으며 헤매는데 한 제목이 눈에 띈다.
보이 후드. 남자의 유년 시절, 유소년기, 소년 시대라고 해석한다. 가족 이야기인데 여섯 살 소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소년이 대학에 들어가는 12년 동안 지켜보면서 촬영했다고 한다. 감독도 대단하고 소년도 대단하다. 그래 오늘은 이 영화다.
여섯 살 메이슨은 두어 살 많은 누나 사만다, 싱글맘인 엄마 올리비아와 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두 아이 키우며 사는 삶은 어디서나 힘들다. 영화 내 고군분투한다. 대학을 진학하고, 교수가 되었어도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이미지가 벗겨지지 않는다. 메이슨과 사만다 또래 아이가 있는 이혼남을 만나고, 그 남자의 폭력으로부터 도망가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는데 그 남자 역시 알코올 중독에 폭력적이다. 좀 나은 남자를 만나지. 차라리 생부와 다시 결합하면 안 되나? 어쩌면 감독의 치밀한 계산, 올리비아를 채찍질하는 조건으로 설정한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낳는 법! 올리비아 상대가 에단 호크인 것도, 메이슨에게 여동생이 아닌 누나를 둔 것도 감독의 설정이다! 왜? 올리비아는 더 올리비아처럼 만들고, 메이슨은 메이슨다워야 하므로.
메이슨이 대학을 진학하면서 집을 떠난다. 짐을 챙기는 아들의 보따리에 액자 사진을 넣어 준다. 메이슨은 싫다고 한다. 엄마는 가져가라고 한다. 그러다 울부짖는다.
“난 열심히 살아왔어. 그러면 뭐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메이슨에게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한 말로 들렸다. 아들은 커서 독립한다. 올리비아는 제자리에 있다. 아주 많이 달려온 줄 알았는데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런 엄마에게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사진을 두고 가는 거다. 메이슨은 과거를 놓고 가고 싶은데 엄마는 추억으로 인식한다. 낡은 차에 아이들 태우고 다른 도시로, 친구 집을 떠돌며 악착같이 살아 냈다. 그리고 이루었다. 이루고 나면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줄 알았다. 어제와 다른 삶일 줄 알았다. 어떤 삶을 바랐을까? 올리비아는 무엇을 놓쳤을까? 넓은 집이 생기고, 반듯한 직업을 갖고, 자동차가 바뀌고 옷차림이 바뀌었지만 무엇을 잃었을까? 야무진 면은 없지만, 방식은 거칠지만, 아빠 역할을 열심히 해내는 메이슨 시니어는 아들에게 과거를 갖고 가라고 하지 않는다. 철저하지 않지만 아빠는 아이들의 성장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사춘기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도, 혹시 관계를 갖더라도 엄마 아빠처럼 실수하면 안 된다면서 성교육을 한다.
영화는 한 소년의 성장 일기다.
메이슨 역의 엘라 콜트 레인의 눈빛 연기 끝내 준다. 눈으로 하고 싶은 말 다 한다.
에단 호크는 언제나 감성 만점이다. 그러니까 가끔 만나는 아이들 커가는 모습이 보이겠지.
패트리샤 아쿼트. 웃을 때는 맘 푸근한 동네 아주머니지만 살짝 찌푸려도 순식간에 전사가 된다.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로렐라이 링크레이터. 치아 교정기 끼고 사춘기 소녀 역할을 열심히 한다. 엄마와 아빠, 동생 사이에서 가족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역이 쉽지 않았을 건데, 연기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글이 좀 가벼워졌는지 모르겠다. 글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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