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paper In Education
벌써 4년이나 되었다. 우리 집에는 신문이 두 부 들어 온다. 일부러 신청한 신문 하나, 덤으로 주는 것 하나. 두 신문을 한꺼번에 놓고 갈 때도 있고, 오늘은 A신문, 다음날은 B신문이 놓여질 때가 있다. 예전에 그러니까 30여년 전 쯤에는 줄곧 B를 봤다. 아마 꽤 오랫동안 공짜로 보다 구독료를 냈던 것 같다. 그때는 서비스가 많았다. 어쨌든 오랜 기간 봤다. 그러다 수원으로 일산으로 이사 몇 번 다니면서 끊어졌다. 신문이 주는 감성이 좋다. 다시 신문을 찾았다. 영업소 검색을 하니 옆 동네란다. 여기도 배달해 주나요? A 넣어 주세요.
A와 B는 한식과 양식처럼, 여름과 겨울처럼, 남과 여처럼 다르다. 뭐랄까? 피자 먹는데, 김치랑 올라왔을 때의 조화?
신문 읽는 것을 좋아한다. 종이로 된 읽을 것 다 좋아한다. 거실 바닥에 앉아 읽는다. 햇빛이 들어오는 베란다 가까이가 좋다. 뒤에서부터 읽는다. 정확히 말하면 논설이나 칼럼이 있는 마지막과 그다음 장만 읽는다. 다른 면은 대충, 1초도 안되어 넘긴다. 사회적 이슈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좋고, 내 생각과 비교할 수 있어 좋다. 내 생각과 같으면 동의 받았다는 느낌이 있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분이 들어 신나게 읽는다.
쓴 말은 귀에 거슬린다. 이건 진리다. 아무리 친하고 가깝고, 무촌지간이라도 충고 좋다는 사람 없다! 누군가와 싸우고 싶거든, 사이가 틀어지고 싶거든 충고 한마디면 된다. 나 역시 그렇다. 특히 알고 있는데 거기에 충고랍시고 거들면…, 역린이다. 나이들수록 더 해 간다. 조상들의 지혜 중 틀린(?) 것이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그래야 하거늘 아니다. 더 고집스러워지고, 목소리 커지고 고개 빳빳이 든다. 나도 많이 익었다. 갈수록 고개가 빳빳해진다. 충고? 서운한 감정이 오고 그다음에 네가 감히가 오고 그리고 상대의 잘못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간다. 즉, 무슨 말이냐면 좋아하는 것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naver say naver!
금요일은 괜히 좋다. 집에 가는 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간다. 밥 안 해서 좋고, 세수 안 하고 있어도 된다. 옷 아무렇게나 입어도 상관없고 늦게까지 TV봐도 된다. 일단 다양한 반찬에 배가 불록하도록 먹고, 커피 한 잔 타서 베란다 가까이 다가가 앉는다. 그리고 가위와 펜 준비해 신문 더미를 끌어 당긴다. 좋은 글 스크랩을 하기에 가위는 필수다.
신문 두 부가 일주일이 쌓이고 한 달이 쌓이면 산더미가 된다. 하나만 넣어 달라고 했는데 왜 두 부가 오지? 그렇다고 두 부 값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 지금도 하는구나. 영업소에 전화했다. A신청했는데 왜 B가 오나요? 며칠 A만 오더니 슬그머니 B가 들어오고, 하루 교차로 들어오고 한꺼번에 들어오고 한다. 규칙이 없다. 물론 금요일에 와서 현관 앞에 잘 쌓여 있는 모양을 보고 추측한 거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여 쌓인 양이 줄어들었다. 시간은 같은데 봐야 할 양이 줄어들면 보게 된다. 그래서 둘 다 읽는다. A와 B는 같으면서 다르다.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은 학교급을 떠나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허용과 제한의 주장이 현장에서도 맞선다. 그 문제에 A와 B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찾아봤다. 지난주 하루 차이로 기사화된 내용이다.
☆지난 10년간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전면 제한’을 학생인권침해라고 판단해온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일 기존 입장을 180도 바꾼 배경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학생의 휴대전화를 수거해야 한다는 고등학교 교칙은 인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4년 이후부터 인권위는 관련 진정 307건에 대해 일관되게 인권침해 결정을 내려왔다.
★2014년부터 인권위는 학교가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판단을 유지해 왔다.
☆이번 기각 결정이 ‘휴대전화 전면 사용 제한은 인권 침해’라는 인권위의 오랜 판단을 뒤집는 결정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인권위 측은 이번 결정이 다른 학교에도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진석 교수는 ‘생각하는 훈련이 충분하지 않으면 논리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더 믿는다. 그러면 중심이 되는 단어를 고를 때도 문법에 따르기보다는 감정에 따라 고르게 된다’고 했다. (중앙일보 2023. 2.3.)
성격이 다른 A와 B는 생각하는 훈련을 하게 한다. 나에겐 성질이 다른 두 친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