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양선생님을 보며
매스컴에서 교육 뉴스 중에 어휘력 관련 소식이 많다. 사건의 시발점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욕을 한다고 했다거나, 두발 자유화를 말하니 두 다리로 알아들었다는 등. 현장에서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과 다름을 실감한다. 수업 시간에 어휘 설명에 많은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아이들이 문장제에서 문장이 조금만 길어도 읽는 것을 포기한다.
‘토마토 3개가 빨갛게 익었다. 남은 2개도 빨리 익었으면 좋겠다. 드디어 토마토 5개가 모두 익었다.…’ 몇 개의 문장이 이어지면 결국은 이해를 못 하거나 읽는 것을 포기한다. 스마트폰, 디지털 매체, 짧은 영상(쇼트폼) 중심의 콘텐츠를 과도하게 접한 것도 원인이라 하고, 독서력 부족도 원인이라 한다. 일기는 하루 한 번 글쓰기다. 어휘력 부족을 메꿔줄 훌륭한 학습이다. 기억의 측면에서도 일기가 주는 효과가 크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르면 오늘 기억한 것이 7일 후에는 0이 된다. 일기가 있다면? 7일 아니라 7년, 70년 일도 고스란히 기억할 수 있다. 듀어링고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어휘력을 늘리고 싶거든, 문법을 익히고 싶거든 일기를 쓰라!
‘왜 일기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글쓰기가 어려워서 일기 쓰기를 힘들어하는 것도 있지만,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힘들어한다. 일기를 써서 눈에 띄는 변화도 큰 이익도 없는 것 같다. 학교, 학원 숙제하기도 빠듯한데 일기까지 쓰라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밥을 왜 먹지? 공기처럼 중요한 것이 없는데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잖니 하면서 뜬구름 잡기의 비유를 하면 더 멀리 도망간다. 일기를 쓰면 글솜씨가 늘어난다. 계획성 있는 생활을 한다. 삶이 나아진다 하는 말은 아이들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다.
1. 수업할 때 동기 유발로 시작한다. 수학에서 합동과 대칭을 배울 때 이렇게 시작하곤 한다.
“지금부터 선생님이 문을 곰으로 만드는 마술을 부릴 거예요.”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몰입도 100%다.
잠시 공기를 읽은 다음 전날 만들어 놓은 글자 하나를 칠판에 붙인다.
‘문’
“이제부터 이 문이 곰이 될 거야.”
짠~하면서 글자를 회전시킨다. 곰이 됐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하면서 들어오는 항의? 곧이어 도형을 회전시키면서 사그라진다.
2. 먼저 일기 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일기는 잘못을 찾아내는 반성문, 각오를 새롭게 하는 다짐문도 아니다. 하루를 보내고 자신에게 보상을 주는 일이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뭘 써요?’, ‘쓸 말이 없어요’다. 이때 육하원칙을 활용하는 것, 육하원칙 중에서 세 가지 정도, 어디서, 무엇을, 왜만 사용해도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 자세히 관찰하는 것, 질문과 형식을 정해서 써 보는 것, 여러 가지 형식으로 써 보는 것도 있음을 알려준다. 당연히 정서적, 공간적, 시간적 지원은 부모의 몫이다.
3. 같은 상황을 좀 길게 표현해 본다.
‘오늘은 친구를 만나서 재미있게 놀았다’
→ ‘오늘은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네도 타고 방방도 탔다. 방방을 탈 때는 너무 높이 뛰어넘어질 뻔했다.’
‘기뻤다’
→ ‘즐겁고 신났다’, ‘가슴이 벅차다.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
4. 매일 써야 한다. 습관이 될 때까지 날마다 써야 한다. 습관이 되는 걸 언제 아냐고? 일기를 쓰지 않고 잤을 때 허전함이 온다면 습관이 된 거다. 학교에서 국어, 수학 등 주지 교과가 매일 같은 시간에 들어 있는 것처럼, 일기도 날마다 같은 시간에 써 보기 바란다. 그 시간이 되면 몸과 마음이 일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조건반사의 법칙이든 습관의 법칙이든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911 테러 당시 수많은 인명을 구한 릭 레스콜라는 ‘뇌를 움직이는 최상의 방법은 훈련이다. 똑같은 훈련의 반복이다.’라고 했다.
5. 일기 쓰기는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에 1~2학년 쓰기 성취기준이 다음과 같이 설정되어 있다. ‘글자와 단어를 바르게 쓴다. 쓰기에 흥미를 느끼며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문장으로 표현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많은 아이들 1.2학년 때 일기가 훨씬 좋다. 보석 같은 글이다. 순수한 감정을 쓰기 때문이다.
1학년 아이의 일기다.
‘아침에 내가 엄마를 오해했다. 왜냐하면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서 엄마한테 나를 싫어한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오해했다. 실수~’
친구하고 놀고 싶은데 공부하라는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고 오해했다. 엄마가 나를 미워하다니? 그래서 따졌다. (?) 오해가 풀렸다.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행복으로 가득 찼을까? 글씨는 삐뚤삐뚤하지만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일기를 언제부터 시작하는 시기는 없다. 스무 살에 쓸 수도 있고. 아이를 낳고 육아일기를 쓰면서 서른 살, 마흔 살에 쓸 수도 있다. 마음먹은 지금이 일기를 쓰는 시작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옆자리 양 선생님이 그런다.
“저 일기 쓰기 시작했어요. 꽃 일기요.”
“왜 꽃 일기예요?”
마당에 (전원주택 사신다) 화단에 꽃을 가꾸신단다. 작년 꽃 사진은 있는데 그때 감정과 기억은 생각나지 않는단다. 그분 올해 61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