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퀄라이저
가끔 액션이 땡길! 때가 있다. 카타르시스? 대신 때려줘서 욕해줘서 부셔줘서 고맙다. 영화 내용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속은 시원하다. 망설임 없이 악을 응징할 때,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정의를 실현할 때의 통쾌함이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더 이퀄라이저, 이퀄라이저 1.2.3가 아니라 그냥 이퀄라이저다. 줄거리가 탄탄하고 깔끔하게 연기하는 인물들이 좋다. 절제미? 그런 것을 느낀다. 덴젤 워싱턴이 주연이지만 마르톤 초카시도, 그레이스 머레츠도 주연 같다. 머레츠는 어린 나이에 어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주연이 셋 넷이다. 멀리사 리오의 표정 연기는 진심으로 가득 차 있다. 얼굴 죽은깨가 이쁜 헤일리 베넷의 눈물은 따라 울게 만든다. 아마 열 번은 봤을 거다. 신기한 것은,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인다. 이번엔 맥콜 아저씨가 랄피와 점심을 먹는 장면이다. 경비직 취업을 꿈꾸는 랄피는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우선 과제다. 무거운 타이어를 끌게 하고 식단 관리(?)도 한다.
“랄피, 샌드위치에 뭐가 들어 있지?”
“음, 채소하고…참치요.”
와자작 소리가 난다.
“이리 줘봐.”
감자칩이다. 맥콜의 표정이 변한다.
“저 아삭한 것 좋아해요. 토끼 아니란 말이예요.”
맥콜이 조용히 말한다.
“랄피, 고통 없는 변화는 없어.”
조용한 것은 힘이 있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랄피 경비직에 붙었다.
모임에 가면 먼저 다가가 인사하지 못한다. 이 좌석 저 좌석 인사하고 다니는 것이 쑥스럽다. 한 사람에게 하면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해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얼굴만 아는 사인데 굳이 알은 체 하는 것도 멋쩍다. 낯을 가린다.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으니 성격이다. 이런 성격은 사회생활에서 스트레스가 많다. 어제 연수가 있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동기 선후배들이 왔다. 오가며 눈인사만 하는 얼굴도 있고, 반가운 얼굴도 있다. 300명이 넘다 보니 좌석 배치를 해 놨다. 지정 좌석에 앉으며 둘러 보니 아는 얼굴이 있다. 멀리서 빨리 왔네? 막힐까 봐 미리 왔지. 그동안 잘 지냈어? 더 젊어졌네? 다가가 악수 청하고 안부 물은 사람은 몇 안 된다. 동기 서너 명, 후배 몇 명. 선배인지 후배인지 모르는 몇. 같은 지역에 근무한 인연 몇… 나에게 와 악수를 청한 사람은 조금 더 많다. 물론 목에 힘주고 있는 것 아니다. 수줍어 그런 것뿐이다. 이런 성격 고치고 싶다.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가고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 왔는데, 이제 와서 뭐하러 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 뭐 먹을까? 중국 음식? 고깃집 가자. 냉면. 순댓국. 추어탕… 시내 음식점 다 나온다. 알았어 내가 정할게. 응…추어탕이다. 한 입 뜨는데, 아~ 순댓국이 좋은데...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우물쭈물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받아 들인다. 이런 성격 나도 싫다. 똑 부러지게 말하고 싶다. 흑이면 흑, 백이면 백이고 싶다. 이런 걸 결정 장애라나 미흡이라나 의존성 성격 장애라나 여러 가지 진단은 있다. 타고난 걸, 이제 와서 고친다고 뭐가 변하나 싶은 마음에 그대로 살기로 했다. 하지만 미련은 남는다.
변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오랜 세월 나와 함께 해온 생활을 부정하는 것이다. 잘못을 알면서도 살아온 타성으로 그냥 갖고 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변화에 긍정적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나름 자부했는데, 그대로다. 고통 없는 변화, 변화 없는 삶을 원했구나. 맥콜이 나에도 말한다.
고통 없는 변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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