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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13. 기수

by S 재학

기수는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갔다. 형설의 지공으로 합격했기에, 당당히 합격했기에 꽤 자랑스러웠다. 친구들이 2학년일 때 합격했다. 합격증을 들고 아버지께 갔다.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보시던 기억이 선명하다. 합격증에 눌러 붙인, 다듬지 않아 긴 머리카락의 미소년 사진을 보면 지금도 애틋하고 아련하고 자랑스럽다.

40년 전에는 이 시험 나름대로 자부심 있었다. 대부분 주경야독을 의미했고, 불굴의 의지까지는 아니어도 눈물과 노력의 결과임을 상징(?)했다. 물론 내세울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굳이 감추지도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니 검고 동문 모임도 있었다. 깊은 유대감으로 어울렸다.


고집은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이끌까? 그 반대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중3. 일찌감치 공고나 상고로 결정한 친구들은 오히려 마음 편해했다. 결정은 부모님이 했다. 기수는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도 기수도 결정하지 못한 채 졸업을 맞았다.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장학금 혜택을 제시하며 진학을 권했지만 내키지 않았고, 부모님은 진학을 뒷받침할 경제력이 안 되었다. 사실은 진즉 검정고시를 마음먹었다. 아마 2학년에 올라가면서 일 거다. 집을 떠나는 것이 첫 번째였고 그러려면 지역 고등학교를 가면 안 된다. 그 학교의 평판이 어떻다는 것은 별문제였다.

고집이었다.

고집의 결과는 혹독했고, 결실은 알찼다. 과정을 통과할 의지만 있다면 고집을 부리라고 말한다.


목마름으로 검정고시 학원을 찾았다. 시장 입구 2층 건물이다. 들어가는 계단 양쪽으로 노점 할머니들이 앉아 있어 헤집듯이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가게 일은 편했다. 배달처도 익숙해지고, 이제는 짐바리도 만만하다. 일은 8시에 끝났다. 짐바리 들여놓고 불 끄고 셔터 내리는 것 보고 사장은 분홍색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다. 기수는 사장과 반대쪽으로, 학원으로 달려갔다.

학원생 나이는 다양했다. 스무 살 넘은 형들, 중년 아저씨 한 사람, 그만한 나이의 아주머니 둘. 기수 또래 여학생도 둘이나 있었다. 학원을 주름잡는 형들은 나팔바지에 쫄티를 멋지게 입고 다녔다. 파마머리 쫄티 형 패거리를 제외하고 대부분 열심히 공부했다. 중학교 때 한 권이던 사회과목이 세계사, 역사, 정치경제로 나뉘었다. 과목 수가 놀랍도록 늘어났다. 단번에 합격하자는 욕심으로 수험반을 들어갔다. 힘들었다. 이미 진도가 한참 나가 있고, 처음 만나는 과목도 많았다. 벅찼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책상에 앉으면, 선생님 설명을 집중해 들을수록 졸음에 빠져 들었다. 종일 짐바리와 씨름을 했으니 그럴만했다. 아득히 들려오는 선생님의 말소리가 달콤하게 들리고, 공책 위 글씨가 지렁이가 되어 가는 날이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취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피곤보다 더한 허기는 순댓국집 앞을 지나는 또 다른 고문이 되었다. (지금도 최애 음식 중 하나가 순댓국이다)


시험은 8월에 있다. 고등학교 3년 과정을 3개월에 끝내야 한다. 불굴의 의지 외에 갖고 있는 것이 없다. 굳건한 체력도 두뇌도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그럴수록 마음만 급해지고 자책만 늘어갔다. 한 달 남겨 놓고 모의고사 풀이가 시작되었다. 기초 없는 문제 풀이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었고, 결국 접수를 포기했다. 차라리 홀가분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몇 년 만의 폭염이라고 했다. 짐바리는 갈수록 편해졌고, 순도 100% 염산은 더 이상 손등을 태우지 않았다. 여름이 가을로 넘어가며 추석이 다가왔다. 북적이는 시장을 가로질러 학원 가는 길도 재미있고, 계절이 바뀌는 기온은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추석 연휴 시작이다. 사장이 잘 갔다 오라고 천 원짜리 두 장을 더 준다. 무슨 선물을 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두 손으로 들고 간 것은 맞다. 한창 유행이던 나팔바지를 입고 갔다. 고향이 주는 감정, 뭐라고 하지? 그냥 좋다고 하는 것밖에….


오랜만에 찾은 고향도, 집도 좋았다.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보름달이 밝게 빛나는 밤에 섭이네 작은방에 모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처럼, 중학교 때처럼, 그럴 줄 알았다. 반가워 달려간 마음이 벽에 닿음을, 밤이 얼마 깊지 않았을 때, 무언가 어색함을 느꼈다. 친구들은 친구를 나누었다. 고등학교를 간 친구와 진학하지 못한 친구로 나눴다. 8:4. 기수와 세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할 말이 없어졌다. 학교를 안 다니는데 학교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 조용히 빠져나왔다. 차가운 달빛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기수는 그 뒤로 오래도록 고향 친구들을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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