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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교통경찰 아저씨

12. 기수

by S 재학

감당 못 할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원하지 않았지만 주어졌다. 기뻤냐고?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좋았다. 잠을 설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인지 알 것이다. 즐거움만큼 불안도 컸다. 균형을 맞추려는 심리 작용을 제대로 느꼈다.


짐바리를 받았고 분홍색 여성용 자전거는 사장이 가지고 갔다. 이렇게 비유하면 맞으려나? 3억짜리 스포츠카가 생겼다! (잠을 설칠 정도로 좋겠지만 감당은 안 될 것 같다)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사장은 변두리에 공장이 있었다. 경비실을 통과하고 넓은 주차장과 커다란 기계가 들어찬 멋들어진 그런 회사가 아닌, 잡초가 무성히 자란 밭 가운데 드럼통이 몇 개 있는 곳을 공장이라고 했다. (공장 가자는 말을 듣고 들떴다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작은 아궁이 위에 드럼통이 올려져 있고, 옆구리에 연결된 호스를 따라 맑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알코올을 증류한다고 했다. 그렇게 모인 것을 통에 담아 일주일에 두 번씩 실어 왔다. 당연히 짐바리가 싣고 왔고, 기수가 싣고 왔다. 가게에서 공장까지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시내를 벗어나면 순식간에 한적한 도로가 나왔다. 가로수가 도로 가운데로 모아져 있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었다. 자동차 뜸한 길에 경운기랑 달렸다. 더운 날에는 신발을 벗어 뒤에 묶고 맨발로 페달을 밟았다. 짐바리의 묵직하면서 매끄럽게 굴러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장거리 주행을 몇 번인가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수의 짐바리에 실리는 통도 늘어났다. 실력이 되었다고 인정했나 보다. 복개 상가를 갔다 오란다. 복개 상가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중앙극장 쪽으로 가다 천변을 따라 내려가는 길 하나, 로터리에서 쭉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사장은 주로 로터리 쪽을 다녔고 기수도 그 길이 익숙하다.


통 네 개를 실어 준다. 통은 손잡이만큼 바닥이 패어 있어 올려놓으면 아귀가 딱 맞았다. 사장이 손수 실어 줬다. 고무 바를 당겨 묶어진 것까지 확인해 줬다. 다 되었다는 표정으로 쳐다 본다. 기수도 말 없는 대답을 하고 핸들을 움켜쥐었다.


순간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수는 운동신경이 없다. 사장네 공장 다니면서 닦은 실력은 통 두 개다. 사장의 무표정한 얼굴이 재촉한다. 자존심이 못하겠다는 말을 삼킨다. 허리를 안장에 붙이고 지지대를 발로 찼다. 바퀴가 반동을 주며 도로에 앉는다. 뒤뚱거리다 균형을 잡는다. 두 손 가득 힘을 주고 밀었다. 흔들흔들 핸들이 요동 친다. 그러잖아도 가는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허리에 붙은 안장으로 요동을 멈췄다. 흔들림이 멈춘다. 이제부터 두 발을 믿어야 한다. 핸들을 밀며 달리다 속도가 붙으면 올라타야 한다. 그때까지 사장이 도와주면 좋겠다. 아니다. 복개 상가까지 붙잡고 달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사장이 밀어서 출발이 되었는지 내 힘으로 올라탔는지 기억은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달리고 있었다. 로터리로 갈 생각이었는지 천변길을 계획 세웠는지 생각이 안 난다. 몸이 기억하는 길이 로터리였나 보다. 다행히 신호는 초록색이다. 두 번째 신호를 건너야 로터리다. 거기까지만 가면 시내버스가 안 다니는 길이 나온다. 어서 빨리 거기까지 가야 한다. 마음이 급하면 발이 급해진다. 빵빵 소리가 난 것 같다. 어디선가 고함도 들린다. 짐바리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들이 피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로터리에 들어섰다. 저 멀리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저기까지만 가면 된다. 호루라기 소리는 인간이 발명해 낸 최고의 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큰 경적 작은 경적 모든 소리를 뚫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저절로 고개가 돌려진다. 땀으로 가려진 시야 속에 하얀 물체가 보인다. 하얗다고 생각했다.

흰 장갑을 끼고 더 하얀 제복을 입은 교통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손짓한다.

‘거기 택시 잠깐 멈춰’

‘버스 서행’

‘승용차 스톱’

‘짐바리 넌 이쪽으로 와!’


교통경찰의 수신호에 따라야 한다. 손짓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야 한다. 아, 멈추라는 거구나.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짐바리는 가야 할 곳이 있다. 우리 사장님 외에 아무도 짐바리를 통제할 수 없다.

짐바리 핸들을 돌렸다. 돌렸다고 생각했다. 교통경찰 아저씨의 말을 안 들으면 잡혀갈지도 모른다. 아저씨한테 가야 한다.


간절히 원하면 기적이 이루어질 때도 있다. 짐바리가 방향을 튼다. 오라고 하는 아저씨한테 가고 있다. 방향을 틀었다고 생각했다. 핸들이 돌아서 저절로 가고 있었다. 입을 크게 벌린 하얀 제복 아저씨가 눈에 들어오고 그 아저씨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고 돌진하는 기수가 어느 순간 딱 마주쳤다. 아저씨가 짐바리를 안고 있다. 기수와 핸들을 부등켜 안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까만 선글라스 속에 화가 잔뜩 난 눈이 보였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자전거가 너무 컸어요.’

그중 어느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수를 쳐다보는 제복 아저씨 눈이 흔들렸던 것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저씨에게 동생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기수 나이쯤 되는, 어쩌면 막내 동생이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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