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1)
당신이 언젠가는 과거를 되찾게 될 거라고 늘 생각해 왔지요.” 이번에는 그가 심각해졌고, 그 때문에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지만 이거 봐요, 기, 나는 그것이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2)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패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이 단호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서사의 출발점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와도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주인공 ‘기롤랑’은 기억상실증 환자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상태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흥신소의 사립 탐정으로 일하며 타인의 사건을 해결한다. 자신의 과거는 잃어버렸지만, 타인의 과거를 추적한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역설적이다.
그의 상황을 잘 아는 인물 ‘위트’는 잃어버린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기롤랑에게 기억의 단절은 단순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실존적 위기로 다가온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왜 살아가는지를 알 수 없기에 존재의 방향성을 잃는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혼재된 구조라고 말한다. 따라서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잊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격 전체를 잃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자아의 구조이며, 존재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적 기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우리가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라시는지도 모르겠군요. 당신은 차라리 '익명 상태'로 남아 있고 싶은가요? 3)
하이데거 철학에서 존재자(Seiendes)는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사물, 인간, 동물, 개념, 숫자, 심지어 신까지도 존재자에 포함된다. 반면 존재(Sein)는 존재자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근거, 즉 존재자의 존재 방식이다. 하이데거는 철학이 오랫동안 존재자에만 집중해 왔으며,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은 망각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를 ‘존재망각(Seinsvergessenheit)’이라 불렀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암울한 시대를 나타내는 배경이자 동시에 기롤랑의 심리적 상태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기롤랑은 존재자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저 반복적인 삶의 패턴을 영위하고 있을뿐. 존재로서의 의미는 불분명해져 간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인의 실존적 소외와도 맞닿아 있으며, 하이데거는 이러한 평균적 존재 양식을 따르는 사람들을 ‘세인(das Man)’이라 불렀다. 세인은 자율적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규범에 따라 살아가는 익명적 존재를 뜻한다.
구불구불한 어떤 길을 따라가면 큰길로부터 그곳에 이를 수 있었다. 큰길 역시 어디론가 비탈져 올라가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던 적이 없다. 4)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라고 표현했다. 이는 인간이 세계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세계 속에서 존재하며, 그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구성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 관계가 단절될 때 존재의 기반은 흔들린다. 기롤랑의 경우 기억을 잃음으로써 세계와 맺고 있던 모든 연결이 끊어졌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맥락 속에서 자신을 규정할 수 없었고, 현재의 삶 또한 방향성을 잃었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생존에 불과했다. 세계와의 관계가 무너진 삶은 반복되는 일상으로만 이어졌고, 그 반복은 점차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하이데거가 말한 불안은 특정한 대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붕괴될 때 발생하는 근원적 정서인데, 기롤랑이 느낀 공포가 바로 그것이었다.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그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고, 그 불안은 죽음보다 더 깊은 공포로 다가왔다.
기롤랑은 자기 삶이 본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한다.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 방식을 스스로 규정하지 못하고, 타인의 기억과 시선에만 의존해야만 한다. 그가 느끼는 불안은 단지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존재론적 구조의 균열이며, 세계와의 관계가 무너질 때 발생하는 실존적 고통이다.
그곳에는 지난 오십 년 동안의 각종 전화번호부들과 연감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것들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필요 불가결한 작업 도구라고 위트는 몇 번이나 내게 말하곤 했었다. 그 전화번호부들과 연감들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귀중하고 가장 감동적인 도서관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5)
소설 속 상점, 거리, 물건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기롤랑의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손안에 있음(Zuhandenheit)’의 세계로 기능한다. 그는 물건을 통해 기억을 떠올리고, 장소를 통해 과거를 추적한다. 이 도구적 세계는 그의 실존을 지탱하는 구조물이자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는 매개체다.
기롤랑의 삶은 선형적 시간 속에 있지 않다. 그의 기억은 단절되어 있고 사건은 반복된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Dasein)의 시간성, 즉 과거·현재·미래가 상호 얽힌 구조를 보여준다. 기억의 단절은 오히려 시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는 과거를 잊었지만 그 잊힌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미래의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명확히 지금 현실적으로 그렇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자신의 과거로서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기억이 단절된 존재조차도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한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종잡을 수 없고 너무나도 단편적으로 보였기에…… 어떤 것의 몇 개의 조각들, 한 귀퉁이들이 갑자기 탐색의 과정을 통하여 되살아나는 것이었어요…… 하기야 따지고 보면, 어쩌면 바로 그런 것이 인생일 테지요…… 이것이 과연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6)
괴테는 『색채론』에서 인간은 눈 속에 빛과 색채를 소유하고 있어서 외부의 빛과 색을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우리의 내면의 빛이 외부의 빛과 조응하기에 색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색은 외부 세계에 실재하지 않는다. 전자기파가 물체에 닿아 일부가 반사되어 눈에 도달하고 나서야 우리는 여러 파장이 조합된 빛을 구별할 수 있다. 따라서 색은 빛의 파장에 대한 해석으로서 인식하는 개개인의 내부에만 존재하며, 오직 우리의 머릿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자극을 감지하고 저장한 후 시간이 지나도 소환할 수 있는 정신 기능이다. 기억은 단편적으로 저장되며, 회상 시 조각들을 재조합해 하나의 이미지로 구성된다. 우리는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어둠 속에서 받아들이는 전기화학적 신호들을 각자의 신경 연결망을 통해 판단하고 있을 뿐이다.
올리버 색스는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고, 프루스트는 “삶은 파편적이며, 오로지 기억을 통해서만 연속성과 서사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반면 모디아노는 “기억의 대부분이 허구이며, 그중 일부 조각만이 진실이다”라고 말한다.
사진은 굉장히 많아요……뭐든지 다 잊어버리게 되니까 나는 사진 뒤에 이름과 날짜들을 적어두었습니다……7)
기억은 감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감정은 대뇌변연계의 활동으로 일어나며, 시상하부에서 만들어진다. 감정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과 외부 사건을 뇌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감정은 판단이 어려울 때 즉각적인 행동을 유도하며, 감정적 사건은 더 오래 기억된다. 냄새, 소리, 촉감 등 감각도 기억의 일부가 된다.
기억은 뉴런과 시냅스를 통해 전달된다. 시냅스가 많을수록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유리하며, 뇌의 저장 용량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한다. 이를 ‘뇌의 가소성’이라 한다. 해마는 기억의 단편을 만들고, 단기 기억은 해마에, 장기 기억은 대뇌피질에 저장된다. 기억은 조각나지만 회상 시 다시 구성되며 익숙한 범위 내에서 사건을 이해하게 된다.
기억은 저장이고, 학습은 그 저장된 것을 꺼내 쓰는 일이다. 중요한 사실만 골라 저장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소거하는 것도 뇌의 중요한 역할이다. 모든 것을 정확히 기억한다면 오히려 판단이 느려질 수 있다.
그런데 기억은 진정한 것이라 말할수 있는가?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겪고도 다른 기억을 가진다. 뇌는 입력된 정보를 우리가 믿고 싶은 현실에 가깝도록 해석한다. 허언증 환자들은 자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온전한 기억을 거의 하지 못하며, 다만 그렇다고 착각할 뿐이다. 2007년 콜로라도 대학의 연구는 의지로 기억의 인출을 중지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절대로 바다에서 실종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마지막 밧줄을 끊고 어느 산호초 속에 숨기로 결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끝내 그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시도해 볼 필요가 있었다. 즉 로마에 있는 나의 옛 주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에 가보는 것 말이다. 8)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삶을 본래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하는 궁극적 가능성이다.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한계이자, 동시에 인간이 자기 존재를 본래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문이다.
기롤랑은 기억을 잃음으로써 죽음을 자각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본래적으로 규정하지 못했다. 그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구성할 수 없었고, 따라서 삶은 무의미한 반복으로만 이어졌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죽음을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단순히 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기롤랑에게 죽음을 자각하는 것은 기억을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는 실존적 결단이 되었다.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이후의 행보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침묵을 통해 독자들에게 커다란 화두를 던진다. 진실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우리가 ‘자신답다’고 믿어온 정체성마저 뒤흔들 수 있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본래적 삶을 시작할 수 있다. 기억을 마주하는 용기란 곧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이며, 그 결단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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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을 때, 나는 이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철학과 문학, 그리고 과학의 측면에서 접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뇌가 기억을 받아들이는 특성을 알게 된 후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텍스트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지우고 싶은 과거의 흔적들이 있다. 하지만 벗어나려 할수록 그것은 더욱 뚜렷하게 새겨지고 나를 따라다녔다. 칸막이 책상 속에서 보냈던 시간은 기롤랑처럼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혼자서 헤매는 것과 같았다. 그러한 나에게 카를 융은 말했다. “가장 중대한 인생의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런 문제들은 절대 해결될 수 없으며, 다만 성숙하게 됨에 따라 털어낼 수 있다.”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통해 이해해야 하며, 그것은 뇌뿐만 아니라 감각, 그리고 내면과 외부의 조우와도 관련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에 의해 맥락이 파괴되는 것과 억압된 스트레스 또한 기억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회피와 망각이 오히려 기억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억을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부분적인 사건이나 감정을 되짚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맴돌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겠다는 존재의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가능성으로서의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이미 던져진 존재이면서도 그 던져진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구성해 나가는 존재다. 기억은 그 구성의 재료이며, 과거의 흔적은 미래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실존적 자원이다. 기억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후회, 상처, 기쁨, 실패, 사랑, 상실을 모두 끌어안는 것이다. 그것은 선택하지 않았던 삶의 조각들까지도 인정하고, 그 모든 가능성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용기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향한 수용의 태도이며, 죽음이라는 궁극적 가능성 앞에서 삶을 본래적으로 살아가려는 결단이다.
기억은 나를 규정하지 않지만, 내가 누구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를 열어준다. 기억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고 미래의 나를 구성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9)
나는 글을 쓸 때 하나의 문장에서 키워드를 얻으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을 경계 없이 수집한다. 주 자료는 종이책이며, 필요한 내용들은 손으로 직접 베낀다. 하나의 글이 완성되면 퇴고하게 되는데, 그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글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힘든 경우가 많다. 퇴고는 곧 숙고의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 중에서 기억은 또 다른 기억과 연관되며, 그것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낸다. 글쓰기는 기억을 정제하고 재구성하는 창조적 행위이며, 그 안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그때그때마다 뭔가 가능성을 가지며 자기 존재에서 이 가능성을 어떤 식으로든 이해한다”라고 말한다. 글쓰기는 바로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단순히 기억상실증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과 존재, 그리고 죽음을 직면하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기롤랑의 여정은 곧 우리의 여정이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존재를 구성하는 실질적 자원이며, 그것을 마주하는 용기는 곧 삶을 본래적으로 살아가려는 결단이다.
기억은 나를 규정하지 않지만, 내가 누구였는지를 보여주고,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를 열어준다. 글쓰기는 그 기억을 재구성하는 행위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금 자신을 발견한다.
불안정한 미래 앞에 서 있었지만, 그러한 불안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불안했고, 그들도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고, 결국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나 또한 기억을 마주하는 용기를 통해 불안을 견디며, 본래적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기억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롭게 인식한 것들을 토대로 그것을 여러 관점에서 재구성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언젠가는 육신과 함께 기억도 희미해져 가겠지만, 그럼에도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도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2010.05.17>
1) 9p
2) 13p
3) 20p
4) 228p
5) 10p
6) 247p
7) 43p
8) 262p
9) 183p
10) 130p
<『존재와 시간』, 마르틴 하이데거, 전양범 옮김, 동서문화사, 2019.11.01>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제레드 쿠니 호바스, 김나연 옮김, 토네이도, 2020.03.20>
<『우울할 땐 뇌과학』, 알렉스 코브, 정지인 옮김, 심심, 2018.03.12>
『 마주할수 있는 용기 』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I. 기억의 상실과 존재의 불안
기롤랑의 기억상실과 존재의 위기
하이데거의 시간론과 기억의 본질
II. 존재와 존재자
존재자(Seiendes)와 존재(Sein)의 구분
세인(das Man)으로서의 기롤랑
III. 세계-내-존재
세계와의 관계 붕괴에서 오는 불안
반복되는 일상과 실존적 고통
IV. 현존재의 시간성
기억 단절과 시간의 본질
과거·현재·미래의 얽힘 구조
V. 기억의 여러 가지 정의
괴테, 프루스트, 올리버 색스, 모디아노의 관점 비교
기억의 파편성과 재구성
VI. 기억의 과학적 접근
뇌의 가소성과 해마·대뇌피질의 역할
감정과 기억의 연결성
기억의 불완전성과 허구성
VII. 기억을 마주하는 용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진실 직면
죽음 자각과 본래적 삶의 결단
VIII. 글쓰기와 기억의 재구성
글쓰기를 통한 기억의 정제와 새로운 인식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그 깊이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다. 여기서 '어둠'은 2차대전 당시 독일 치하의 프랑스의 암울한 상황과 주인공 '기롤랑'의 기억상실을 암시하며. 한편으로는 다수의 침묵속에 묻혀진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도 보인다.
나는 이 책을 ‘시’ 모임에서 처음 소개받았다. 끝까지 읽고 난 뒤, 소설이 던지는 밀도와 질문에 압도당했다. 그 수업의 과제로 쓴 시가 바로 「추회」였다. 이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으면서 까다로운 철학적 사유를 소설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었고, 에세이를 쓰는 과정에서 그 시너지 효과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직면해야 할 아픔을 외면한 채 행복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마치 고통을 마주하면 부정적인 기운이 달라붙을 것이라 믿는 듯하다. 그러나 감정을 외면한다고 해서 과거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는 본질적인 압박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외면한 것과 다시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어떤 측면에서는 위트의 말처럼, 기롤랑이 기억을 잃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의 단절은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자아의 붕괴를 의미한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의 존재가 되어버리며, 맥락이 끊기면 자아의 구조 자체가 흔들린다. 기롤랑은 노화와 죽음의 불안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그는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과 진술에 휘둘리며,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타인의 진술은 그의 단면적인 진실을 담을 수는 있어도 본질을 정의하지는 못한다. 자기 자신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모든 것, 근원적인 불안과 고통까지 감내해야 한다. 그것을 회피하는 순간, 자아는 타인의 언어 속에 갇히고 본질은 흐려진다.
작중 기롤랑은 탐정이다. 그는 사건을 추적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추적한다. 그러나 그가 맞닥뜨려야 하는 궁극적인 고통은 단순한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진실이다. 그 과정에서 전해지는 진한 아픔은 나의 깊은 내면까지 흔들어 놓았다.
나는 언젠가 이 책을 분석적으로 접근해 보고 싶었다. 가장 큰 화두인 ‘기억의 진정성’을 여러 측면에서 탐구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의 방향성도 세울 수 있었다. .
글쓰기는 기억을 재조명하고 관점을 다각화하기 위한 도구다. 나는 창의성이 부족할지라도 텍스트를 단순히 답습하거나 우상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것을 도구화하고 재해석하여 어떤 것을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그 어떤 것은 아마도 ‘세계’ 그 자체일 것이며, 그 앞에서 나는 무한히 부딪치고 깨어지며, 다시 조립될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순환이자, 글쓰기를 통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형식이다.
< 추회(追悔) >
힘없이 여위어가는 가로등 불빛
멀리서 드리워진 여인의 그림자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멀어지네
다가갈수록, 아련해지는 슬픔
고통만이 내 삶을 붙드는 이유
남은 것은 환멸뿐이지만
난, 그것을 놓을 수 없네
거침없이 나를 깨우는 경적소리
유리창 너머, 아스라한 그 모습
바람처럼 흩날리는 기억의 파편
빛바랜 흔적들의 재를 긁어모아,
다시 어둠의 거리로 발을 내딛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흩어진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