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단테, 베아트리체 그리고 지옥과 천국

#신곡, #단테 알레기에리, #가브리엘 로세티, #베아트리체

by 비루투스

* 아, 인간의 지성이 다다르지 못할 지고의 빛이시여!

당신의 조그만 부분이라도 내 마음에 다시 더하셔서,

미래의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도록

당신의 영광의 단 한순간 불티라도

포착할 정도의 힘을 나의 혀에 주소서. 1)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은 뒤 가는 세계, 소위 '내세'라고 불리는 곳에 대한 관심이 많다. 단테의 <신곡>은 이러한 내세 관념을 기독교적 입장에서 풀이하였고, 영화 <세븐>이나 <양들의 침묵> 같은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묵시록처럼 언급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닐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들 중 한 사람인 단테는 자신의 작품 속에 당시 직면하였던 사회적, 지적 문제점들을 현실적인 시각에서 시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문을 포함한 총 100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신곡>은 작가 자신의 사상과 철학, 그의 사생활 그리고 그의 시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여인의 죽음과 피렌체에서 추방되고 정치적 반역자로 기소되었던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신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테의 일생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단테는 시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너머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한 여성에 대한 열망과 경배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적이기도 하다.


두명의 단테 그리고 베아트리체


"그대가 중력에서 벗어났는데, 아래에서 머문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불빛이 세상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지요." 그리고 그녀는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2)


작품에는 '베아트리체'란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우리가 사랑의 대상을 찬미하는 시나 노래 속에 자주 인용이 되기 때문에 그리 낯설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 단테가 평생을 두고 사모했던 여인이며, 그의 작품 속에서 사랑의 표현이자 찬미의 대상으로 자주 묘사된다. 하지만 단테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랑의 대상을 상실하게 되고, 이후 10년 동안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된다.

<신곡>에서는 이를 안타깝게 여긴 베아트리체가 그의 문학적 스승인 베르길리우스에게 단테를 지옥과 연옥으로 인도하게 하고, 그녀는 천국의 비밀을 단테에게 알게 하여 그가 겪은 일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도록 이끌어주는 구원의 여신으로 나온다.


이상화된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또 다른 단테가 있다. 19세기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단테 알리기에리를 동경하며 자신의 이름에 ‘단테’를 붙였고, 그의 삶과 작품에서도 베아트리체의 흔적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로세티는 엘리자베스 시달이라는 모델이자 시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자신의 그림 속 이상적 여인으로 끊임없이 재현했다. 그러나 현실의 사랑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그것과 달랐다. 엘리자베스는 아편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았고, 그녀의 죽음 이후, 로세티는 그녀의 무덤에 자신의 시집을 묻고 7년 뒤 다시 파내는 결정을 내리는데, 이 행위는 단순한 애도의 표현을 넘어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주의적 죽음 인식과 예술가의 자기 연출 욕망이 교차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사랑을 통해 구원을 노래했고, 로세티는 사랑을 통해 상실과 집착을 기록했다. 두 단테의 사랑은 예술 속에서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그녀는 죽었지만, 나는 그녀를 그림 속에서 다시 살게 했다.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지옥과 천국에 이르는 여정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3)


이제 <신곡>의 대략적인 줄거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단테가 숲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베르길리우스는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고 단테를 지옥과 연옥으로 인도한다. 단테는 칠흑 같은 어둠의 지옥 속에서 낯이 익은 망령들이 고통받아 신음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낯익은 망령 중에서 그와 정치적 적대 관계에 있었던 망령들에 대해서는 조소하고 비웃는 냉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옥은 바다 가운데 돌출한 분화구처럼 생겼는데, 영원히 정죄될 수 없는 자들이 죄 값을 받는 지옥과 달리 지옥처럼 형벌은 있을지라도, 이곳에서 죄를 씻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의 여지가 있는 곳이다. 지옥과 연옥을 단테와 순례한 베르길리우스는 천국까지 단테와 같이하지 못하고 그를 베아트리체에게 인도하고 사라진다. <신곡>에서는 그가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천국은 낮과 밤이 없는 광명만 존재하는 곳이다. 그곳은 10개의 천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지고천은 아홉 천계가 통일되는 곳으로 축복받은 자들의 진정한 보금자리이다. 단테는 이곳에서 고귀한 영혼들과 대화하며 천국의 비밀을 알아나간다. 단테가 천국 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지식과능력으로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며 오로지 우리가 하나님의 의지를 완전히 터득했을 때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곡>은 성모 마리아가 주께 기도를 드림으로써 나타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를 직접 단테가 뵙는 것으로 그의 여행은 끝난다.


<신곡>의 내재적 의미


아, 하나님의 정의여! 제 눈 앞에 펼처진, 알지도 못했던 번민과 고통을 누가 쌓아 놓았습니까? 왜 죄악은 우리를 이처럼 파멸시킵니까 4)


다음으로 단테가 살았던 시대의 외부적 상황과 관련하여 작품의 내재적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당시 단테는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신데 어떻게 악한 사람이 왜 선한 사람보다 더 잘 살고 있으며, 국가 간의 전쟁은 계속해서 끊이지 않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바로 잡을 힘이 있으면서도 쓰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들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그는 지옥과 연옥, 천국에 이르는 정신세계의 여행을 했고, 이러한 모순되고 불합리한 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단테는 자신의 작품을 신성한 것을 표현한 것이라 말하기보다 인간적인 희곡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작품의 원제목은 <lLA COMMEDIA DI DANTE ALIGHER>이며, 직역하면 단테의 '코미디'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거칠고 사악한 면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를 원했다.


그는 사람들이 악을 계속 행할 시엔 내세가 아닌 지상이라도 지옥이 될 수 있고, 영원한 행복과 평화란 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옥 즉 인생의 고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보았고. 그리고 이러한 인생의 고통에 의해 오를 수 있는 천국은 복음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국의 복음 그리고 그림자


기도에 힘을 주었던 그 뜨거운 희망은 하느님의 의지를 움직여 그가 생명을 얻어 천국과 지옥을 선택할 자유의지를 갖도록 한 것이다. 5)


인간은 신에 의해 정해진 존재로서 부여받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목적을 향해 살아간다. 지상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윤리적, 지적 미덕의 명하는 바에 따라 살아가야 하지만 영원의 행복을 얻는 것은 신의 은총에 힘입으면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천국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가? 이것이 단테가 직면하여 고민하였던 문제점들이며 또한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가 <신곡>을 읽는 이유라고 하겠다.


이 질문은 단테 알리기에리만의 것이 아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역시 사랑과 상실, 구원과 죄책감 사이에서 같은 질문을 품었다. 그리고 두명의 단테는 모두 사랑을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통로로 삼았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베아트리체를 통해 신의 질서와 구원의 가능성을 노래하며, 사랑을 초월적 진리로 승화시켰다. 반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엘리자베스 시달과의 관계를 통해 상실과 집착, 죄책감이라는 내면의 어둠을 직면했고, 그 감정을 반복적으로 예술 속에 재현했다. 한 사람은 사랑을 통해 신의 빛에 다가갔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랑을 통해 인간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 속에서, 그들의 예술은 같은 질문을 되묻는다.


— 사랑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 두명의 단테, 베아트리체 그리고 천국과 지옥 』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Ⅰ. 서론: 인간 존재와 내세에 대한 질문
- 단테의 『신곡』은 중세 기독교적 내세관의 결정체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시적 철학서.
- 이 글은 단테와 로세티를 중심으로 사랑과 상실, 구원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한다.

Ⅱ. 단테 알리기에리와 『신곡』: 구원의 여정
- 지옥–연옥–천국을 순례하며 인간의 죄와 구원, 신의 정의를 탐구.
-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신의 빛을 인도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사랑은 구원의 통로가 된다.
- 단테는 개인적 상실과 정치적 추방을 시로 승화시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초월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Ⅲ.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상실의 예술화
- 로세티는 단테를 동경하며 자신의 예술에 베아트리체의 흔적을 반복적으로 재현.
- 엘리자베스 시달과의 사랑은 현실적 고통과 예술적 이상화 사이에서 갈등하며, 그녀의 죽음 이후 무덤에 시집을 묻고 다시 파낸 사건은 낭만주의적 죽음 인식과 예술가의 자기 연출 욕망이 교차하는 상징적 행위로 해석된다.
- 그의 그림은 라파엘 전파의 미학을 반영하면서도, 상실과 집착이라는 내면의 어둠을 담아낸다.

Ⅳ. 두 명의 단테 그리고 베아트리체: 사랑의 철학
- 단테는 사랑을 통해 신의 질서를 노래했고, 로세티는 사랑을 통해 인간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 두 사람 모두 사랑을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통로로 삼았으며, 그들의 예술은 시대와 매체를 초월해 같은 질문을 던진다.
→ “사랑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Ⅴ. 결론: 예술, 사랑, 존재의 길
- 단테와 로세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했다.
- 그들의 예술은 구원과 상실, 선택과 시간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 우리는 어떤 길을 걷고 있으며, 그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 참고도서

<『 신곡 -천국편 』, 단테 알레기에리,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13.08.08 >

1) 289-290p

2) 14p

5) 175p

4) 15p

6) 291-292p


<『 신곡 -지옥편 』, 단테 알레기에리,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13.08.08 >

3) 6p

4) 68-69p


& 단테는 피렌체 출신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백당파에 서서 교황의 지나친 간섭을 거부하고 피렌체의 자치권을 지지하다가 결국 재산을 몰수당하고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끝내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라벤나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신곡』 속에서 단테는 지옥과 연옥, 천국을 오가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지상에서는 추방당한 패배자였을지 몰라도 그의 이름과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나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다. 교회에 발길을 끊게 된 이유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전광훈이라는 인물과 그 주변 세력이 신앙을 빌미로 정치적 세력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본질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고 확신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가 진짜 이단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내가 다녔던 교회들은 개신교 장로교였고, 종교개혁을 내세우면서도 루터와는 거리가 먼 칼뱅의 교리에 치우쳐 있었다. 그 교리를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과 엮어 오직 그것만이 진리인 것처럼 가르쳤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 밖의 모든 사상과 종교는 이단이라고 배웠고, 그것을 의심 없이 믿었다. 모든 것이 예정되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가르쳤으며, 성경 말씀을 그 위에 덧붙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교리와 인도에 복종하는 것이었고, 그래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철학과 논리를 접하게 되면서, 그들의 가르침에 의문이 생겼다. 그러다 우연히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 막혀 있던 길이 뚫리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법을 신봉한다거나 장로교만을 비난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어차피 패턴은 어디서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법조문에는 분명히 형식적 한계가 있고, 그렇기에 판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법은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를 적절히 혼합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판례가 법의 영역을 위협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경전 해석이 말씀보다 더 큰 권위를 얻게 되는 현상과 유사하다. 상당히 ‘키치’스러운 모습이다.


이 시대의 위기는 균형의 붕괴때문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없던 시절, 나는 각주에 언급된 참고문헌 외에는 아무런 도움 없이 성경과 그리스 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토대로 『신곡』을 독파했다. 그때 정리한 내용을 ‘오마이뉴스’에 올렸고,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동명이인인 또 다른 단테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며 내용을 확장했다.


처음에는 자유의지와 진정한 신앙을 주제로 삼았지만, 글을 개작하면서 인간과 사랑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 이상화된 사랑과 그 왜곡까지 다루게 되면서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그것이 신앙이든 사랑이든, 단지 자신의 관점을 대상에 투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대상화’일 뿐이며, 그 어떤 미학을 덧붙인다 하여도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랑은 상호 간의 공감 속에서 오가는 것이며, 진정한 신앙은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오가며 확장되는 것이다. 그것이 특정한 것에만 국한되고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면, 결코 진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 보르헤스의 정원 >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
낮게 뜬 달이 머리 위를 비추고,
나뭇가지들은 서로 뒤엉켜 있었다.

양쪽으로 갈라진 길이 나타났고,
우뚝 솟은 녹슨 문 앞에 멈춰 섰다.
쇠창살 너머에 오솔길이 엿보였다.


나는 그 길을 끝없이 걸었다.
노오란 둥근달이 함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길로 들어섰다.
양쪽으로 갈라진 길이 나왔다.



내가 바라보던 살아있는 빛 속에 유일한 얼굴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빛은 존재했던 대로 언제나 존재하신다. 그것은 내가 나의 시각을 통해 내 안을 바라보고 더 강해지면서, 유일한 모습이 내가 변하는 대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6)


이전 18화라캉의 시선으로 하루키 문학 분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