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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기 May 24. 2022

20만 원으로 세계일주 그리고 베스트셀러 출간

실패의 실력 #3

실패의 실력 

.

『실패의 실력』#3


실패의, 이유

내 입장만 생각한다


20만 원으로 세계일주 그리고 베스트셀러 출간











한숨을 쉬며 힘없이 이메일 창을 닫았다. 또 거절이구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일이다.

10년도 더 된 일이라니, 이거 마치 고대사를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대학교 3학년, 스물네 살이었던 나는 주변 모든 친구들이 취업을 준비하며 꽤 열심히 그리고 착실하게 스펙을 쌓는 동안 혼자 완전히 다른 짓을 하고 있었다.


모교가 있는 강원도 원주의 한 호수 앞 6평 남짓 작은 원룸에서 장편의 글을 하나 썼고,

그걸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매일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사진으로 최근인 2022년 1월의 모습이다)


그보다 한 해 전인 스물세 살에, 20만 원만 들고 무작정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 한인 민박집 머슴 시절

이때의 경험은 후술 하겠지만 10년 뒤 '루프탑 카페하루' 운영으로 이어진다.)




14년 전의 런던 모습





런던에서 반년 동안 한인 민박집의 머슴살이를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다른 일들도 함께 했다.


환경미화원이었던 영국인 친구의 대타로 템즈 강의 북쪽 첼시라는 지역에서 동네 청소부 일을 했고,





런던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템즈강의 남쪽 버먼지라는 지역에서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영국 정통 펍(Pub)에서 무임금으로 매니저 일을 했다.


런던 중심가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데리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깃발 돌이 일도 했다.


모두 무임금이었지만 팁(Tip)은 받을 수 있었기에 6개월 동안 꽤 큰돈을 모을 수 있었고,






이후 유럽, 북미, 중남미, 남미, 아프리카까지 6개월 간 세계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물셋. 그때 나는 생명력이 넘치고 있었다. 젊음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폭발했고, 순박하고 순수했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새로운 풍경과 낯선 이들을 한 없이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맨유의 절대 무적 챔피언 시절 (현수막 잘 보면 박지성 선수가 보인다)


현역 시절의 박지성 선수 모습



첼시 홈구장에서 맨유 유니폼을 입고... /// 젊고, 어리고 몰랐으니깐 이런 짓이 가능했다.;;;



뉴욕



미국 중부



미국 서부



시카고 불스 농구 경기 직관


(당시의 사진 파일을 거의 다 소실했다... 이 글은 여행 글이 아니므로 사진은 이 정도로.)




13년 전, 내가 쓴 글은 그 1년간의 여정을 담은 에세이였다.




23살짜리 청년이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1년 간 세계일주를 하고 왔다니.  


이 얼마나 신선하고 재미있는가?



나는 일단 책이 출간만 되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세계여행이라는 작은 성공에 취해서 뭐든지 다 해낼 자신감이 생겼고,

그만한 에너지를 가득 품은 끈기 강한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스물셋과 스물넷 사이 그 언저리에서 나는 대단한 사람인 냥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직후 내가 마주한 현실은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냉정했다.



분명히 출판사들이 앞 다퉈 책을 출간하자고 달려들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출판사들은 하나같이 난색을 표하며 아주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보내주신 내용은 편집팀 전원이 검토하고, 기획회의에서 출간 여부를 논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출간은 어렵다는 답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216번째 출판사였다.

그렇다. 나는 2년 간 꼬박 216곳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도대체 왜 책을 안 내주는 거지? 내 글쓰기 실력이 그렇게 부족한가?


그런 생각이 들자 써 놓은 글을 ‘무한 퇴고’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끝없는 투고와 퇴고의 반복이었다.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에 투고를 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원고를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내거나 원고를 프린트해서 우편으로 보내거나, 출판사로 직접 찾아가거나. 물론 나는 이 모든 루트로 투고했다.


출판사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어디든 한결같았다.


“죄송하지만, 어렵겠습니다.”


복사해서 붙여 놓은 듯해 보이는 성의 없는 문장이 담긴 거절이었다.   

아니, 그렇게 거절 의사라도 전해주는 곳은 감사한 경우였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 연락조차 없었다.



어떤 출판사는 13년이 지난 지금도 홈페이지에 ‘검토 중’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대단히 신중한 출판사가 아닐 수 없다.


투고를 한다. 답을 기다린다. 거절 의사를 듣는다.

이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꼬박 1년이 지나갔다. 그다음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나는 대한민국에 있는 거의 모든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


물론, 지금이라면 아예 직접 출판사를 차려서 출간해버리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때는 상상할 수 있는 것과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분명히 한계가 있었기에 그런 일을 꿈도 못 꿨다.




여하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내가 쓴 글이 한 권의 책이 된 상상을 하면 가슴이 터질 듯이 벅차올랐다.


어느 작은 서점의 책장 한편에 내 책이 있는 모습,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름 모를 낯선 이가 그 글을 읽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갈비뼈 안쪽이 참을 수 없이 간질거려왔다. 그 정도로 간절했고 온 마음으로 그러한 일들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8번 계절이 바뀌었다. 꼬박 2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2년, 매일 거절만 당하며 보내기엔 결코 짧지 않은 긴 암흑의 시간이었다.



2011년 8월 여름이 깊었던 무렵, ‘그 메일’이 왔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어지러워 눈앞에 놓인 돌다리들을 밟고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자신조차 없어졌을 때였다.


지도나 스마트폰 없이도 외부의 길은 잘도 찾아 지구를 한 바퀴 돌았건만 정작 내 마음의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첫 실패였다. 처참한 패배가 주는 좌절감과 무력감이 낯설기만 하던 그런 시기였다.


안녕하세요? 창비 인문사회 출판부의 박 00입니다.


당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창비 출판사의 인문사회 출판부에 전화를 걸어 원고에 대한 투고 상담이 가능할지 정중히 문의했다.


전화를 받았던 편집자는 우선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 편집자가 열흘 동안 원고를 꼼꼼히 검토해 보고 연락을 준 것이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한 청년에게 성의와 진심을 가득 담은 편지를 보내줬다.


나는 편지의 본문 텍스트를 복사해 워드프로세서로 옮기고 프린트했다.   

그리고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프린트한 편지를 천천히 정독했다.


몇 차례에 나뉘어 왔던 그 메일은 전부 합치면 A4용지로 열 장은 될 만큼 성의 가득한 장문이었다.



                    




편지를 다 읽자, 머리를 벽에 세게 부딪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책을 내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내 입장에서만 마냥 떼를 쓰고 있던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인력과 시간과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 그리고 수많은 책들 중에서 굳이 이 책을 택하고 구매하여 읽어 줄 독자의 마음 같은 건 조금도 고려를 안 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메커니즘인 ‘생산-투자-소비’의 역학관계를 간과하고 생산자인 내 입장만 내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니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할 수밖에.




처음부터 글을 다시 썼다.   


풍경이나 배경 묘사 같은 건 최대한 자제하고, 순전히 ‘만남’에만 집중했다.


글의 모든 소 챕터를 사람과의 만남과 그 일화가 나에게 줬던 ‘생각의 변화’에 대해 서술했다.














새로 쓴 초고를 국내에서 가장 큰 출판사 5곳에 보냈다.   

며칠 뒤에 원고를 보낸 출판사 5곳에서 모두 전화가 왔다. 출간을 하자는 연락이었다. 드. 디. 어.


그중에 3곳과 미팅을 가졌고,


내 글과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가장 큰 호감과 호기심을 품고 있던  

박 대표가 있는 웅진 리빙하우스와 출간 계약을 맺었다.



‘출판권 및 전자출판용 배타적 발행권 설정과 기타 저작권 사용 계약서’라는 길고도 어려운 제목의 출판 계약서 첫 줄에 있던 ‘저작권자(작가)’란에 이름을 기입하는 순간엔 콧잔등이 시큼 거려왔다.


계약서에 사인했던 그날, 출판사가 있던 대학로 거리를 기분 좋게 걷고 또 걸었다.


목덜미에 내려앉는 한여름의 햇볕이 따갑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이듬해 2012년 5월, 책은 『어쩌면 가능한 만남들-나를 키운 지구촌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출간 10년이 지난 현재, 해당 책은 '절판'했다.)









책은 수십만 부 이상의 초베스트셀러가 되는 판매부수는 아니었지만, 출판시장의 불황을 뚫고 5쇄까지 판매되었다.


그해의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들어갔고 ‘교보문고 광화문 본점’에서 저자 사인회라는 것도 했다.






“당신의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만들어줄 사람과 그것을 소비해줄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봐라.”




10여 년 전, 그때 만약 이런 조언을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끝까지 생산자로서의 내 입장만 고수했다면,


과연 그 글은 한 권의 예쁜 책으로 출간될 수 있었을까?




주변의 누군가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해보겠다고 하면,


이를테면 그게 책을 쓰는 일이든, 사업을 시작하는 일이든,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든,

그게 뭐든.


세상에 내놓을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만들어줄 사람과 그것을 소비해줄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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